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11-0105.....공현 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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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1-04 ㅣ No.968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1요한 4,11-18 마르코 6,45-52
2011 1. 5. 등촌3
주제 : 세상을 사는 자세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따로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저마다 일가견(一家見, 어떤 분야에서 독자적인 경지나 체계를 이룬 견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이렇게 생각하는 것들과 그것들이 삶에 실현될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헌데, 정말로 그럴까요?
 
세상에 그 누구도 두 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끔씩, 내가 세상을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표현을 써서 한번 범한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기는 합니다만, 사실 이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두 번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 세상에 태어나서 산다고 해도, 두 번째 삶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첫 번째의 그 기억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내가 하느님을 알고 살든 모르고 살든, 내가 지금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기억하든 아니면 하느님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격렬하게 거부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지금 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시간이 지난 다음에, 내가 좀 더 젊었을 때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하는 소리를 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습니다.
 
세상을 두 번 살 수 없다는 이야기처럼 확실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도요한은 자기의 편지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만, 그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이 다를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에 따라 하느님은 전혀 모습을 달리하는 분으로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가 표현해야할 하느님의 올바른 모습을 과연 누가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자기들이 갖고 있던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게 한 기적을 베풀게 했던 제자들이 갈릴레아 호수에서 만난 유령사건으로 호들갑을 떠는 내용입니다. 유령이라고 말하면서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헌데, 마르코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서 빵의 기적이 드러내려고 했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고, 오히려 그들의 마음이 완고해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어떤 사람이 올바른 길을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내가 올바로 살아가는데 아무런 빛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본보기를 쳐다보는 내 눈이 아니라, 삶에서 행동으로 표현할 바탕이 되는 자세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으로 살고 있나요?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함께 모시는 성체가 바로 그분이지만, 우리는 그분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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