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10-1128.....대림 1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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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0-12-17 ㅣ No.939

대림 제 1 주일 (가해)

이사 2,1-5 로마 13,11-14ㄱ 마태 24,37-44

2010. 11. 28. 등촌3동

주제 : 하느님이 오시는 때(?)

달력으로는 아직 12월 한 달과 11월의 며칠이 더 남았지만, 교회공동체는 오늘부터 새해를 시작합니다. ‘한 해가 다 지나갔다’고 말하고, ‘새로운 한 해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말하면, 실제로 무엇이 달라질까요? 혹시 ‘한 일도 없이, 한 살만 더 먹었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런 소리 말고 이 질문에 알맞은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전례력의 한 해의 시작은 양력이나 음력의 1월1일이 아니라, 날짜가 고정돼 있지 않은 대림절(待臨節)의 첫날입니다. 대림절을 그대로 설명하자면,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이신 예수님이 구원자로서 내 삶에 들어오시기를 기다리는 때’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말씀은 이렇게 드리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서 삶에 생기는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절의 첫 번째 날입니다. 제대 앞에 준비돼 있는 ‘4개의 대림초’ 가운데, 1개의 초에 불이 켜졌습니다. 인류역사에 하느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주시기를 기다렸던 4000년의 역사 가운데, 첫 번째 천년기를 지내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4주간으로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4주간, 28일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렸을 역사를 그 안에 요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가 물리적으로는 대림시기 4주간을 지내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4천년의 세월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리적으로는 똑같은 시간을 지내더라도, 삶의 결과는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실현되는 순간,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다시 찾아올 재림 때는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저도 그 모습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에 대하여, 복음과 독서를 좀 더 자세히 보면서 묵상할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이 우리 삶에 다시 실현되는 순간이 황홀하고, 휘황찬란하고,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내가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그 잘못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그저 하느님께서 두 팔을 활짝 펴시고 우리를 받아주시는 순간이 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정말로 그런 순간이 우리에 오는 때일까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간혹 그렇게 바라고 기대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과연 하느님은 우리가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기를 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교회의 전례력에서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 대림 첫 번째 주일에, 읽고 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렇게 넋을 놓고 시간을 보내기를 원치 않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로 머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제대로 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 참 무서운 말씀이라서 내 맘에 들지 않아!!!’ 하느님은 우리를 좀 더 편하고 부드럽게 대해주실 수 없을까....하고 불만이나 아쉬움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다시 오시는 순간은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의도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또 복권에서 몇십억 원을 상금으로 주는 1등을 이제는 내가 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45개의 숫자 가운데서 6개의 숫자를 아주 정성껏 선택하고 표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혼동하면 큰일 납니다. 내가 시험문제를 내고, 그 시험지를 이용하여 내가 100점을 받고, 그 성적을 이용하여 ‘나는 세상에서 능력있고 아주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에서 모든 일을 내 맘대로 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큰일 나는 일입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6장부터 9장까지에서 우리가 그들의 삶에 관해서 읽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 이야기도 실제 역사기록이 아니라, 원역사(原歷史)라고 해서 역사의 배경을 찾기 힘든 이야기이고, 지금부터 3천년 이상의 역사적인 배경을 갖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려움은 더 커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노아시대의 삶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갔다는 일상의 삶’에서 무엇이 문제였겠습니까?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그가 방주에 들어갔다는 순간까지 그들이 보인 일상의 삶에서 문제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의 생각만 하고 사람의 일만 정신없이 하는 그 기간 동안 다른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지 않은 것이 잘못은 아니었을까요?

 

내 삶에 특별한 일이 이루어지게 하고 싶다면, 그 일을 바라보고 대하는 내 삶이 올바르게 달라져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 삶에 이루어져야 할 올바른 원칙을 알고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시작된 연평도 사건(23일), 남과 북이 서로를 잡아먹으려고만 하는 자세가 계속된다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 삶은 하느님께 다가서는 것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규가 사라지고 칼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농기구인 보습을 만들고, 군사훈련이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날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에서 그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하느님을 맞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나고, 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올바르게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삶의 정신을 갖출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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