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10-04-23.....부활 3 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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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0-04-22 ㅣ No.924

부활 3 주간 금요일
사도 9,1-20                                        요한 6,52-59
2010. 4. 23. 등촌 3
주제 : 하느님의 부르심
신앙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성실한 사람들의 비율이 전체 신앙인들 가운데서 얼마나 되는지 비율을 계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지만, 가끔씩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질문한다면 얼마나 될까요?
 
전체 신자 비율 가운데, 냉담자라고 구별되는 사람들을 제외한 만큼을 다 계산해준다면, 그 본당공동체의 모습은 대단히 활기차고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우리 본당 공동체는 아직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애석하고도 안타까운 일이지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초대하는 소리를 언제 들을까요? 이 역시 아주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기에 그 대답을 말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 상황을 상상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독서의 말씀은 사울이라는 청년, 훗날 더 많이 부르게 될 이름으로는 바오로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 이야기입니다.
 
바오로가 바뀐 사울이 하느님의 초대를 들은 것은 자기 일에 아주 열심히 움직인 모습 가운데였습니다. 우리가 읽는 사도행전에는 정말 안타깝게도 교회공동체를 박해하던 때로 나옵니다만, 이 바오로를 부르는 상황은 복음서에 나오는 그 어떤 제자들을 선택하는 이야기보다도 극적입니다. 극적인 요소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희한하게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같은 자리에 여러 사람이 있었다고 하지만, 하느님의 초대를 귀로 들은 사람은 오직 사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쏟아지는 빛 가운데 눈이 멀게 되고, 환시 가운데서 하나니아스를 만납니다.
 
우리도 내 삶에 적용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귀중한 체험을 전해들은 바가 없으니, 하느님의 초대이야기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 독서와 비교해서 말한다면, 우리가 삶에서 대충 산다고 할 때는 하느님의 초대를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산다면, 이게 그 소리 같고, 저게 이 소리 같은 애매모호함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열성이었던 사울은 훗날, 교회공동체의 성장을 위해서 무지막지한 고생을 해야 했던 사람으로 변합니다. 무슨 힘이 바오로로 하여금 그렇게 살면서도 자기 생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는지 쉽사리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 자리에 모여서, 예수님의 몸을 음식으로 먹는 우리에게도 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있는 그대로, 의도하시는 그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사셨던 때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 뒤에 사는 우리도 그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루어질 행복한 순간은 과연 언제이겠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행복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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