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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 영성: 물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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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16 ㅣ No.749

[생태 영성] 물의 영성

 

 

생명의 원천인 물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강과 바다를 찾는다. 육체의 더위를 피해 떠나는 피서(避暑)는 자연스레 세상의 삶을 피해 고요 속에 머물며 영적으로 재충전하는 피정(避靜)의 시간이기도 하다. 더위를 식혀 주는 물은 세상의 삶으로 달아오른 우리의 영혼을 식혀주어 우리의 근원으로 안내해 준다.

 

기계의 소음과 달리 비슷한 크기의 물소리는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곡이나 강, 바닷가에 앉아 물이 흐르는 소리나 파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마도 우리의 생명이 잉태된 어머니의 자궁 속이 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잉태의 그 순간부터 듣던 친숙한 소리는 우리에게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원초적 행복과 편안함을 선사한다.

 

물은 생명의 원천으로 사람도 잉태되는 순간부터 물에서 출발한다. 아버지의 체내에서 독립하는 순간도 물의 모습이고, 어머니의 몸속에서 자라는 동안도 계속 물속에 있게 된다. 실제로 양수의 성분은 바닷물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게 잉태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물을 공급받고 몸속의 70% 이상은 항상 물로 채워져 있다.

 

 

성경에 나오는 물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물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창세 1,2), 물을 바탕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시편 24,1-2). 그렇게 하느님은 물을 창조의 자궁, 창조의 원천, 생명의 원천으로 사용하셨다.

 

오늘날 외계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고자, 물이 있는 지와 얼마나 있는지를 가장 먼저 점검해 보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무수한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기 때문이다(에제 47,9).

 

성경에서 나타나는 물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 물이 단순히 물질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물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풍요와 구원을 상징한다(신명 8,7).

 

그러나 물은 또한 홍수나 기근을 통한 심판의 표징으로도 사용되었다(창세 6-9장). 물이 분노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깨끗이 씻고 불결함을 제거해 주는 능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에제 16,4-9 참조).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제의적 정결함의 상징으로도 널리 사용하였다(탈출 29,4; 레위 16,4).

 

이러한 물이 내포하는 상징적 의미는 그리스도인의 세례 안에서 충만하게 표현된다. 본래 세례에 물이 사용된 것은 물이 갖는 정화의 가치 때문이었다(마태 3,11).

 

그러나 세례는 육신이 아니고 영혼과 양심을 씻어주는 것이다(1베드 3,21). 하느님의 영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세례는 새 생명의 원리이다. 그리스도께서 물을 사용하여 여러 번 치유의 기적을 행하신 것은 이 사실을 암시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요한 9,6-7).

 

 

물의 성사성

 

시자(尸子)는 군치(君治) 편에서 물의 네 가지 덕목[水有四德]을 말한다. “물은 모든 생명을 키우며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만물을 통하여 흐르게 하니 어질다[仁]. 물은 탁한 것을 꺼리고 맑은 것을 추구하니 의롭다[義]. 물은 부드럽고 약하나 범하기 어렵고 강한 것을 능히 이기는 힘을 가졌으니 용기가 있다[勇]. 물은 순리에 따라 흐르며 이물질과 잘 융화하고 조화를 이룬다.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겸손하니 슬기롭다[智].”

 

노자(老子)는 물을 도(道)에 비유한다. “지극히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무른다. 그렇기 때문에 물은 도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 도덕경 8장).”

 

성현들이 통찰한 물의 속성은 하느님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노자는 도(道)는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것 가운데서 가장 도에 가까운 것이 바로 물이라고 하였는데, 노자가 말하는 도는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물은 지구 생태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어느 곳이나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일 것이다. 이러한 물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세상의 창조주 성부 하느님을 닮았다. 생명의 원천인 물은 생명의 원리이신 성령 하느님을 닮았다[仁].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는 성자 예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며, 그를 믿는 이들을 의롭게 하신다[義]. 하느님이신 그분은 인간으로 내려오시고, 인간에서 빵으로 자신을 다시 한 번 낮추시어 인간의 몸속으로 스며드신다[智/道].

 

같은 물이면서도 액체, 기체, 고체 상태에서 그 모양과 쓰임새가 다른 물은 다르면서 하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았다. 우리가 먹는 물에는 순수한 물분자뿐 아니라 다양한 성분들이 녹아있다. 이는 물이 지닌 뛰어난 용해력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물질과 하나가 되는 물의 용해성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았다. 물은 지나가면서 높은 것은 깎아내고 낮은 것은 돋우어주며, 어느 곳에서든 수평을 지향한다. 이는 높고 낮음이 없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았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듯이 서로 다투지 않는 물은 선후가 없고 높고 낮음이 없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보여주는 성사이다.

 

 

모두를 위한 선물

 

우리 행정구역의 한 단위인 동(洞)이라는 한자어는 물[水]이 같은[同] 곳을 뜻한다. 같은 물을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유역 안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동이 행정조직 단위로 사용되기 이전부터 흔히 사용하는 ‘동리’나 ‘동네’라는 말은 마을이 유역 안에 위치하여 같은 물을 공유하는 단위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이도원, “전통마을 경관 요소들의 생태적 의미” 참조). 같은 우물과 샘, 개울이나 저수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동일 문화를 형성해 나간다. 판소리의 대표적인 유파로 서편제와 동편제를 나누는 기준은 섬진강임은 이를 잘 알려준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물을 분배(시편 104,6-8)하신다. 그러므로 물이 갈리고, 동네가 생기고 사람들이 함께 문화를 이루는 유역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역을 함부로 인간이 손대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도, 하느님의 법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정부의 무분별한 4대강 개발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겨난 유역을 임의로 바꾸고 파괴시켜 놓는다. 더구나 유역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로 앗아가고 있다. 또한 지역 경기 부양, 일자리 창출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 대기업과 극소수의 개발업자들에게만 그 이익이 돌아간다.

 

강은 단순히 경제를 위한 물질 자원이 아니다. 강은 대통령의 것도 정치인들의 것도 아닌 모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공적인 물자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사목헌장, 69항)고 가르친다.

 

오래 전 원주교구에서는 배론성지에 지하수 공장을 세워 생수를 판매하여 어려운 교구 살림에 충당하자는 일부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교구장 주교님께서는 “물은 그 지역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인데, 땅이 자신의 소유라고 그곳에서 나는 물을 파는 행위는 옳지 않다.”며 그 의견을 반려하셨다. 이는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한실천의 본보기이다.

 

많은 시편들과 잠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물의 풍요로운 선물과 우리가 그 선물을 나누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심지어는 원수에게도 그가 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면 물을 주라고 한다(잠언 25,21). 예수님도 하느님의 선물을 나누는 것으로 물을 예로 드신다(마태 10,42).

 

정부의 무분별한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자연 생태계뿐만이 아니다. 강과 함께 흘러가는 우리의 영성도 함께 파괴되어 갈 것이다. 언제 우리가 물에 대해 이렇게 고민하고 사랑하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위기는 위험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기회이기도 하다.

 

 

* 휴가 가서 한 번 해보세요.

 

1. 계곡에 발을 담그고 눈을 감는다. 어머니의 어두운 자궁 속에서 듣던 소리를 느껴본다.

2. 나뭇잎 하나를 강물에 띄우고 그것에 마음을 얹어 바다까지 긴 여행을 해본다.

3. 물의 특성들을 살펴보고, 그 특성을 닮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한다.

4. 물을 더럽히면 결국 내가 그 더러운 물을 먹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염을 줄인다.

5. 물은 공동의 자산이다. 물을 절약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실천해 본다.

 

* 이동훈 프란치스코 - 제천 남천동성당 주임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신학을 전공하였다. 생태영성연구원 공동대표이다.

 

[경향잡지, 2010년 7월호, 이동훈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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