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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 영성: 성체성사의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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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06 ㅣ No.746

[생태 영성] 성체성사의 지구

 

 

예수님의 마음

 

6월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예수 성심 성월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바오로 사도가 바라본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똑같은 신적 존재이지만,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시어 신성을 감추신 하느님은, 빵과 포도주로 인성마저 숨기시며 다시 한 번 자신을 낮추셨다. 그리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날마다 자신의 생명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시어 먹히신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시는 겸손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세주가 되셨다(필리 2, 3-11 참조).

 

이러한 겸손과 희생의 예수님 마음은 성체성사에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음을 닮으려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성체성사야말로 모든 성사 가운데 으뜸이다.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절정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겠다(교회헌장, 11항 참조).

 

예수님 마음의 재현이요, 그분 자신을 받아 모시는 성체성사는 단지 현재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인간만을 위한 성사가 아니다. 하느님과 모든 인류와 우리보다 앞서간 이들과 모든 창조물의 일치의 제사인 성찬례는 우주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체성사에 참여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복락을 위해서만 기도하기가 일쑤이다. 그 안에 담겨진 우주적 특성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성찬례(Eucharist)는 ‘감사’라는 뜻의 그리스말에서 온 것처럼 ‘감사’가 주요 주제이다.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께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의 재료들 모두에 대한 감사를 함께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때, 세상의 성화를 열망하고 이 목적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면서 모든 피조물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사랑의 성사”, 92항)고 권고한다.

 

그러므로 미사에 참여하면서 자신만의 안일을 위해 기도하고, 다른 나머지 창조물들에 대한 감사를 잊는다면 진정한 성체성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일을 한다면 우린 성체성사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사의 재료인 물질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당신의 신성을 세상 창조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듯이(로마 1,20 참조) 성사는 물질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성사의 재료인 물, 빵, 포도주, 기름 등은 그 모두가 물질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성사들은 하느님이 실제적인 물질들을 통해 경험될 수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육화야말로 물질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의 전형이며 근본적인 성사[원성사(原聖事)]인 것이다.

 

온 세상이 하느님께서 현존하는 성사가 될 수 있고 하느님과 친교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성체성사야말로 최고의 성사이다. 빵과 포도주의 창조적 변화를 기본으로 하여 성체성사는 물질세계의 심오한 변화를 보여준다.

 

 

성체성사의 우주적 특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체성사의 우주적 특성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성찬례는 어떤 면에서는 늘 세상의 제대에서 거행된다. 성찬례는 하늘과 땅을 결합시킨다. 성찬례는 모든 피조물을 끌어안고 그 속에 충만히 스며든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 아버지께 되돌려 드리신다. 성체성사는 창조주 하느님의 손에서 비롯된 세상이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아 하느님께로 되돌려짐을 기념하는 것이다”(“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8항).

 

교황의 이러한 통찰을 떼이야르 신부도 일찍이 체험한 바 있다. 떼이야르 신부는 지질학 탐사를 위해 아시아의 대초원에 들어가 있으면서, 빵과 포도주와 제단도 없는 곳에서 미사를 드렸다.

 

그는 하느님의 사제로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봉헌하였다(떼이야르 드 샤르뎅, “세상 위에서 드리는 미사”).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는 예물을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친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포도)을 일구어(가꾸어) 얻은 이 빵(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구원)의 양식(음료)이 되게 하소서.”

 

곧 사제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물은 빵과 포도주, 그리고 인간이 수고(노동)이다. 사제가 인간의 수고로 얻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함으로써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

 

그 변화는 제단 위에 있는 빵과 포도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단에 바쳐진 빵과 포도주는 밀과 포도로 만들어졌으며, 밀과 포도가 결실을 맺으려면 땅 속의 여러 영양소들과 햇빛과 바람 등의 여러 자연적 요소들과 인간의 노동이 일구어낸 공동 작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물은 성체성사에 참여하게 된다. 성체성사의 실체 변화는 하느님께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시기까지(1코린 15,28 참조)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인 것이다(“사랑의 성사”, 11항). 이 과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피가 된다. 이렇게 성체성사는 우주적 의미를 지닌다.

 

 

성체성사의 지구

 

생태학의 발견은 모든 생명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 곧 상호연관성과 의존성을 알려준다. 세상의 어떤 생명도 먹기만 하거나, 먹히기만 하는 존재는 없다. 다른 창조물들을 먹이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또는 언젠가는 다른 창조물들의 먹이가 되어 다른 창조물을 살린다. 우주 전체의 생명은 우주의 모든 부분이 자신을 서로에게 음식으로 내어주기 때문에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의 모습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음식(빵)으로 내어주는 실천을 통해 제정하신 성체성사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다.

 

 

성체성사의 삶

 

미사는 미사가 끝나면서 다시 시작된다. 미사 끝에 우리는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권고를 받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 곧 예수님의 겸손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Human)이 흙(Humus)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창세 2,7)은 바로 예수님의 겸손(Humility)한 마음을 닮을 때 비로소 인간의 참존재가 실현됨을 의미한다. 인간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다른 창조물들(창세 2,19)은 생태계 속에서 스스로 그렇게[自然] 살아간다.

 

인간은 땅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것에 밟히지만, 모든 것을 품어 기르고 생명을 싹틔우며 지탱해 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 사명의 수행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창세 1,26-27)을 실현하는 길이다. 그렇게 흙처럼 겸손하게, 흙처럼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라고 예수님은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시며 갈망하신다(요한 6,51 참조).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도 그분이 주님이신 줄 몰랐다. 식탁에서 그분이 빵을 떼어 나누어줄 때 비로소 그분이 예수님인 줄 알게 되었다(루카 24,30; 요한 21,12 참조). 가진 것을 나누지 못해 세상의 한 편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인간만의 탐욕을 채우려고 세상의 뭇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자비한 생태파괴를 자행하는 한, 우리의 성체성사는 완성될 수 없다.

 

성체성사는 또한 미래와도 관계가 있다. 고대 전례들은 하늘나라의 잔치를 갈망하였으며,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요청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미래 세대의 희망과 기대에 공동체가 깨어있도록 촉구한다.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우리는 단지 올바르게 사는 것뿐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해 지구의 결실에 해가 되지 않고, 창조물들의 삶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으로 사는 생태영성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 이동훈 프란치스코 - 제천 남천동성당 주임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신학을 전공하였다. 생태영성연구원 공동대표이다.

 

[경향잡지, 2010년 6월호, 이동훈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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