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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헌법재판소 배아 소송 결정을 보면서: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를 물건으로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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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6-20 ㅣ No.740

[특별기고] 헌법재판소 배아 소송 결정을 보면서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를 물건으로 취급

 

 

2010년 5월 27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일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구)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중 일부 규정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시작된 소송은 그간 5년 동안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숙고한 대상이었다.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공개변론은 2009년 10월에 한 차례 열렸다.

 

그런데 5년 동안 고민(?)한 끝에 재판관 9명 전원은 만장일치로 '인간 배아는 인간이 아니므로 연구나 실험에 사용할 수 있으며, 정해진 보관 기일이 지나면 폐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일부 언론의 논평들은 이 결정에 대해 환영을 표시했다. 이구동성으로 장차 대한민국의 생명공학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거리낌 없이 첨단과학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현재 우리나라 법제도상 최종 판단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법률의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 필자는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에도 참여했고, 그 심리과정 전체를 직ㆍ간접적으로 보면서 최종 결정이 어떻게 소수 의견조차 없이 내려졌는지 궁금했다. 물론 처음부터 헌법재판소가 이 사안에 대해 위헌을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전원일치의 합헌결정을 하는 것이라면 좀 더 일찍 결과가 나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처음 사건을 접수한 2005년 3월 31일 이후 즉시 당사자 적격이 없음을 이유로 각하를 했어야 타당했을 것이다. 5년 이상 심리와 분석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은 보건복지부의 주장을 재차 언급하기만 해서 다소 옹색하게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는 다음과 같다. "… 기본권 주체성이 인정되는지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생물학적 인식을 비롯한 자연과학ㆍ기술 발전의 성과와 그에 터잡은 헌법의 해석으로부터 도출되는 규범적 요청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수정되어 냉동보관된 인간 배아는 기본권 주체성이 없으므로 이에 대한 연구와 5년 기간을 정해 폐기결정을 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해당 조항들은 헌법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논증이다. 그런데 법학자로서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헌법재판소가 정말 "규범적 요청을 고려하여 판단"했다면, 오히려 반대 결론에 전부 또는 일부 도달했어야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법학은 '사실'과 '규범'을 다루는 분야인데, 엄밀히 말하면 '사실'은 '규범'에 부합되는지 해석될 뿐이고 '사실 자체'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완전하거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법학에서 중요한 결정은 '규범적 평가'뿐이다. 사실은 재구성된다.

 

흔히 법과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일 먼저 훈련시키는 것은 사실을 '법적으로 이해하는 방법'(legal mind)이다. 즉, 사실학과 다른 규범학으로서의 법학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감각이다. 이런 측면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 근거는 주로 현대 생물학과 자연과학의 기술 발전 성과에 따라 내려진 사실인식이다.

 

필자 생각에 헌법재판소는 좀 더 나아가야 했다. 현대 생물학과 자연과학 기술의 발전을 반추하되 그 기술의 결과가 규범적으로 어떤 의미와 위험을 초래하는지를 평가하는 규범판단에까지 이르렀어야 했다.

 

세계 어떤 국가의 법률이나 국제협약도 인간 배아가 인간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인간 배아가 기본권 주체라고 명시하는 법률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 배아를 인간 생명보호와 존엄성 보장과 분리하여 다루는 법인식은 없다. 쉽게 말해서 수정 이후부터 법률은 보호해야 하고, 국가는 인간 배아가 인간과 같은 종(種)으로 존중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 법원칙이라는 점을 우리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법률이며 국제협약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으로 인간 배아를 물건으로 취급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선례를 남겨주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처음부터 인간 잔여 배아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즉, 체외수정을 통한 인간 배아는 임신 목적 이외에는 생성될 수 없으며, 체외 수정된 수정란은 임신 시도를 위해 모두 착상에 제공되어야 한다. 반면에 우리 경우는 아무런 제한 없이 체외 수정시킨 후 남는 배아는 냉동 보관하여 임신의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폐기물로 취급될 수 있다.

 

현재 대략 20만개 이상의 인간 배아가 냉동 보관되어 있으며, 이를 연구용으로 이용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의도였다. 이 법률은 2000년 12월 최초 발의되었다가 반대에 부딪혀 4년간 표류하다가, 2004년 12월 말 소위 '규제개혁조치'의 일환으로 국회 내에서 논의 없이 무더기로 통과됐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와 기독교 생명윤리협회의 공동 제기로 시작된 위헌 심판 청구는 이 법률의 일부 규정이 생명권 존중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라는 헌법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5년 이상 지속된 심리를 통해 생물학과 자연과학 기술 발전의 성과에 따른 일부 이론이 인간 배아를 인간으로 볼 수 없으므로 기본권의 주체로서 인간 배아의 소송적격을 부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5년 동안 교양 생물학의 기본 지식을 배우는 것에 그쳤고, 이로 인해 20만개가 넘는 냉동 잔여 배아들은 마음대로 연구에 사용되고 폐기될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결정에 대해서 '유구무언'(有口無言)일 수밖에 없다.

 

[평화신문, 2010년 6월 20일, 신동일 교수(국립 한경대학교 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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