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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주식과 부동산 투자 또는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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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5-24 ㅣ No.735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주식과 부동산 투자 또는 투기?

 

 

금융 자본주의의 타락 : 카지노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이윤추구의 체제다. 사람들이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당연한 일이며, 자기가 가진 돈을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투자하여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행위이다. 금융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은행 저축을 통해 얻는 이자율보다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투자함으로써 얻는 이자율이 높은 경우가 많으므로 사람들은 안정적인 저축보다는 투기적 성향이 강한 주식과 부동산에 더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의 창출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였지만,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는 더 높은 이자율을 보장하는 투기적 거래를 통해 이윤의 확대를 추구한다. 상품을 생산하고 시장을 확장하는 데 자본을 투자하기보다는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재투자하여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일에 더 몰두한다.

 

금융 자본주의가 타락하게 되면 카지노화한다. (카지노 자본주의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국제 금융시장이 통합되면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투기 자본이 세계 경제를 교란시키는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다.) 속된 말로 하면, 돈 놓고 돈 먹는 도박판이 되는 것이다. 통제력을 상실할 만큼 돈 투기에 전 세계가 광기에 사로잡히고 이를 담보로 다시 사기를 친 사건이 작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다.

 

 

돈벌이(재테크)에 대한 열광

 

오늘날에는 어원상 ‘살림살이(household management)’라는 뜻이 있는 ‘경제(economy)’라는 용어가 ‘돈벌이’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경제’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말의 내용은 결국 돈벌이를 의미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자본주의 시대에 사람들의 이윤추구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를 바란다. 돈벌이 기술(재테크)에 대한 현대사회의 열광은 끝없는 이윤추구를 겨냥하는 사람들의 열망에서 비롯된다.

 

최근의 한국 사회는 온통 돈과 부자 열풍의 일종의 집단 광기로 가득 차있다. 주식, 채권, 부동산 투자 등 여러 형태의 돈 불리는 법을 가르치는 경제 교육 캠프가 성행하고,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로 한탕주의식 떼돈 벌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빈번하게 유포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부자가 되고 싶어 안달한다. 성실하게 노력하여 부자가 되기보다 도박판에서 일확천금을 획득한 부자를 꿈꾼다.

 

많은 경우 오늘날 성행하는 돈벌이 방법은 결국 한탕주의와 투기적 성향을 지닌다. 강수돌 교수가 지적하듯 “사람들은 그동안 ‘재테크’니 ‘휴먼테크’니 온갖 현란한 말과 기술로 잔치판을 벌였지만 그 핵심은 한마디로 ‘투기를 잘 해 큰돈을 벌자.’였다.”

 

국제 금융 차원에서 국제 투기적 자본들이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도박적 성격의 투자를 의미하는 카지노 자본주의가 개인적 차원에서 재현되는 방식이 투기적 돈벌이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투자와 투기를 경계 짓는 것은 무엇일까? 합법적이고 정당한 이윤추구와 불법적 이윤추구의 차이일까? 일반적으로 투자행위의 의도(목적)와 합법성에 따라 투자와 투기를 구분한다. 의도의 측면에서 보면, 통상적으로 투자는 그 결과로서 또 다른 경제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고, 투기는 단기차익을 얻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구분한다.

 

예를 들어, 주식 시장에서 배당수익을 노려 자금을 투여하는 것은 투자, 시세차익을 노려 주식을 사는 것은 투기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실제 입주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면 투자, 단기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구입하면 투기가 된다.

 

한편으로 투자인지 투기인지는 거래의 합법성이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탈루했는지의 여부로도 판단할 수 있다. 부동산 거래나 주식 거래에서 단기 시세차익을 얻었다 할지라도 소득세나 증여세를 정상적으로 냈다면 합법적 투자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물론 부동산 투자와 주식 투자에서 거래가 합법적이고 세금 탈루가 없었다 할지라도 오직 시세차익만을 위해 투자했다면, 사회적 문맥에서는 투기가 아닐지 몰라도, 신앙적 문맥에서 보면 투기일 수 있다. 윤리는 언제나 의도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둔다.)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투기적 성격

 

노동을 통한 이윤(잉여가치)추구가 아닌 화폐자본(돈)을 통한 이윤추구는 그 본성상 투기적 성격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서는 정당한 노동에 따른 합당한 이윤추구라는 성실성의 논리가 아니라 일종의 대박 논리(비정상적 이윤추구 또는 불로소득의 극대화)가 성행한다.

 

대박을 향한 투자는 언제나 사기와 반칙이 난무하는 한탕주의 투기 경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특히 실물 생산 경제의 발전이 아닌 투자자의 이익추구만을 위한 투자는 그 탐욕적 특성 때문에 늘 문제를 낳는다. 실제로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는 도박이나 경마처럼 전체 가치는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소유만 바뀌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 같은 형상을 띤다.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서는 실제가치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만 증가하는 일종의 거품 현상만 가득하다. 결국 주식 투자와 부동산 투자는 “남의 눈물은 나의 웃음이 되고, 나의 눈물은 남의 웃음이 되는 도박 같은 게임에 불과하다.”

 

거칠게 말해, 오늘날의 주식 시장은 합법적 투기가 조장되는 공간이다. 주식 투자의 핵심은 사고파는 시점의 선택이라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말한다. 주식 투자는 결국 시세차익을 겨냥한다는 뜻이다. 또한 오늘날 주식의 가격은 기업의 자산과 실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투기성 거래로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에서 돈벌이의 핵심은 부동산 투기다. 한국에서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공공연히 신봉된다. 이정우 교수가 지적하듯이, “이 신화를 만들어낸 것은 역대 정부의 무소신과 단기 실적주의, 경기 부양에 대한 집착, 졸부들의 치부 행진, 정보를 미리 빼내 투기하는 기득권층, 건설회사 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언론 등의 총체적 합작품이다.” 더욱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낮은 토지 관련 세금도 국민들이 부동산 투기에 관심을 갖는 데 한몫한다. 사실 부동산 투자(투기)는 철저하게 시세차익을 겨냥하는 것이기에, 사회적으로는 합법성을 지닐 수도 있지만, 신앙적(윤리적) 측면에서는 반드시 지양해야 할 경제행위다.

 

 

이윤추구에 대한 교회의 입장

 

정당하고 합법적인 이윤추구에 대해 교회는 용인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40, 341항). 하지만 교회는 “이윤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등가 교환 논리나 이윤 자체가 목적인 논리를 뛰어넘는 숭고한 목적을 지닌 그러한 유형의 경제활동”(“진리 안의 사랑”, 38항)을 요구한다. 또한 금융자본의 투기적 사용을 반대하며 투자의 도덕성을 강조한다(“진리 안의 사랑”, 40항). 교회는 합법적 투자라 할지라도 그 목적에 투기적 성격을 지닌 경제행위들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이다. 결국, 교회는 이윤추구 행동에 대한 윤리적 판단에서 그 경제행위 과정의 합법성뿐만 아니라 그 행위의 목적성도 고려한다.

 

이처럼 교회가 경제적 투기 행위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우리 신앙인들은 별다른 의식 없이 부동산(투자가 아닌) 투기와 주식 투기에 대해 서슴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신앙과 삶의 분리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곳이 아마도 신앙인들의 경제행위의 자리일 것이다.

 

 

경제행위에서 신앙과 삶의 분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교회는 그저 윤리적 원칙만을 천명함으로써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일까? 실제 경제적 삶 안에서 교회의 경제 윤리적 원칙들이 설득력이 있고 구체적 효과를 내고 있는가? 신앙인들이 교회의 윤리적 원칙에 따라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며 투기적 행위를 삼갈 수 있게 하고자 교회는 어떤 방식으로 윤리적 종교적 차원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킬 수 있을까? 또한 교회의 경제적 가치관과 윤리가 신앙인들과 사회 안에서 구현되도록 교회는 어떤 교육적 문화적 활동을 해야 하는가?(“간추린 사회교리”, 376항)

 

독일 신학자 울리히 두크로의 주장처럼, 신앙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자 교회 자신이 먼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 행위들을 포기해야 하는가? (두크로는 교회가 투자를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모두 매각해야 하고, 또한 교회 용도를 위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제외한, 투자만을 목적으로 한 모든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카지노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신자들이(사람들이) 과정과 목적 모두에서 합법적이고 정당한 투자를 제외한 투기적 주식 투자와 투기적 부동산 투자를 포기할 수 있을까? 교회의 요청은 너무도 이상적이고 원칙적인 요구는 아닐까? 청빈론보다 청부론이 더 성행하는 신앙 현실 속에서 이윤추구(궁극적 의미에서 결국 물질적 부의 추구)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신앙인의 태도는 늘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럼에도 교회는 설교(담론)와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신앙인들에게 신앙적 원칙들을 환기시켜야 한다. 많은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교회는 신앙의 핵심적 경제원칙인 성체성사(Eucharist, 나눔과 섬김)에 대한 담론이 신앙인들의 몸에 배일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 자신이 그 성체성사적 경제행위의 장(polis 또는 oikos)이 되어야 하리라.

 

* 정희완 요한 - 안동교구 신부. 문경 모전동성당 주임이다.

 

[경향잡지, 2010년 5월호, 정희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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