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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 영성: 자연은 또 하나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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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30 ㅣ No.732

[생태 영성] 자연은 또 하나의 성경

 

 

성경과 함께한 교우의 죽음

 

얼마 전 본당 교우 한 분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연도를 하러 빈소를 찾았는데 한쪽 편에 책 꾸러미들이 놓여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고인이 평소에 성경을 필사한 노트들이었다. 줄쳐진 백지를 복사해 묶은 손수 만든 노트에 신·구약 모두를 필사하고, 언제부터인가는 매일의 독서와 복음을 필사하셨다. 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근 들어 고인은 미사에 올 때에도 자신이 필사한 성경을 들고 왔다고 했다.

 

작년 가을 본당에 부임한 뒤 교우들에게 성경 읽기를 강조했다. 그리고 올해 본당사목 목표도 “성경을 통하여, 성경과 함께, 성경 안에서”로 정하면서 수차례 성경 읽기와 필사를 권고하였던 터인데, 묵묵히 실천했던 형제의 성경 사랑은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교우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토록 늘 성경과 함께했던 분이셨기에 갑작스런 죽음이었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하느님과 함께했을 것이고, 곧바로 천국으로 향해 하느님의 품에 안겼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수님과 함께 늘 깨어있는 삶”(마태 26,40)을 고인은 성경과 함께하는 삶으로 실천한 것이다.

 

 

자연, 또 하나의 성경

 

예수님과 함께 늘 깨어있는 삶을 사는 데 성경은 분명 좋은 방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음을 일깨워주는 또 하나의 성경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전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책을 주셨다. 하나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인간에 의해 글자로 기록된 성경이고, 또 하나는 하느님께서 손수 창조하신 창조물(자연)이다. 자연은 하느님 말씀을 간직한 또 하나의 성경인 셈이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 13,5).

 

“짐승들에게 물어보게나, 그것들이 자네를 가르칠 걸세. 하늘의 새들에게 물어보게나, 그것들이 자네에게 알려줄 걸세”(욥 12,7-8).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로마 1,20).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6).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보이는 창조물들을 통해 당신을 알려주셨는데 우리는 하느님을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다. 글로 쓰인 성경은 책을 손에 넣을 기회가 없다거나, 문맹이어서 글을 읽을 줄 모른다거나,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설사 시각장애인이라 할지라도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니 창조물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분을 모른다고 변명할여지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사막의 교부 성 안토니오(250-356년)는 문맹이었으나 사물들 자체의 특성을 연구함으로써 영적인 지혜를 얻었다. 그가 사막에서 은수자로 사는 동안 철학자들이 다가와 책을 읽는 즐거움 없이 그 고독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내 책은 창조물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싶을 때면 언제나 가까이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엠마오,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우리는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려고 산과 강과 바다를 찾아가 생기를 얻는다. 지쳐있는 심신을 회복하는 데 자연만큼 좋은 것이 없음을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경험적으로 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 속에 담겨있는 도심보다 높은 용존 산소량, 오존의 수치 때문만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하느님을 호흡한다. 피정을 위한 집들이나 수도원들이 산속이나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이러한 치유능력은 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라는 지역이 상징하는 역할과 비길 수 있겠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는 리시아스의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유다 마카베오가 맞서 싸워 큰 승리를 거둔 장소이다(1마카 3,8-4,61). 엠마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유다 형제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봉헌하였다. 따라서 유다 형제가 엠마오 전투에서 거둔 승리는 이교주의를 이긴 ‘유다이즘의 승리와 부활의 상징’(2마카 8,36)이 되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장소이다(루카 24,13-35).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다시 고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예루살렘을 벗어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낯선 이와 동행을 하게 되는데, 그 낯선 분은 제자들에게 구약성경을 풀이해 주신다. 그들은 성경 해석을 듣고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엠마오에 다다랐을 때 어느덧 서산에는 노을이 물들고 그 낯선 분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한다. 함께 묵기를 허락하신 그 낯선 분은 저녁 식탁에서 빵을 쪼개어 나누어주신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그 낯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알아차리고 고향으로 향하던 절망의 길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걸음을 옮겨 용감하고 기쁘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처럼 엠마오는 유다인에게서 그리스도인에게 이르기까지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가는 장소의 상징인 것이다.

 

 

자연, 우리의 엠마오

 

자연을 돈을 만들어주는 도구인 자원(資源)으로만 여기는 자본주의 경제적 동물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다른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인간중심적 사고 안에서 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책을 통해 공부하는 데 익숙해 있는 우리들에게 창조물에서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은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그 낯선 자연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연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온다. 들에 핀 작은 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작지만 그 속엔 완벽한 조화로움이 들어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을 만드신 분은 얼마나 더 완벽하고 조화롭고 아름다우실까?

 

겨우내 아무것도 없이 죽은 듯 보였던 대지 위에 봄의 아지랑이와 함께 새록새록 솟아나는 들풀들과 마른 나무 가지에서 움트는 새싹들을 보고 있노라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핏줄을 타고 오는 찌릿한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죽은 듯 고요했던 것이 결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자연은 그 속에서 숨죽이며 부활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우리는 만물과 화해하여 그들과 하나 됨을 체험함으로써 부활의 신비에 다가간다.

 

그 낯선 분이 성경을 해석해 줄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듯이, 낯선 자연의 신비를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은 그대로 벅찬 감동이다. 그 감동은 일상의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살아갈 힘을 준다. 자연은 그대로 우리들의 엠마오인 것이다.

 

서두에 소개한 고인의 유해는 평소 유언대로 화장하여 나무 밑에 묻는 수목장으로 장사를 지냈다. 나무 밑에는 역시 그의 유언대로 그가 필사한 성경 노트 한 권도 함께 묻어드렸다. 평소 성경과 함께했던 그분은 이제 자연이란 성경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 모습만 바뀌었을 뿐 하느님과 함께했던 그분의 삶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자연 속에서 엠마오를 체험하는 3단계

 

1. 정화 : 자연을 도구적 존재로만 바라 보던 마음에서 자연 속의 신성함에 마음을 연다.

2. 조명 : 자연에 대한 명상. 하느님의 지혜, 선, 미, 전능과 같은 특성을 발견.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 보아라…”(마태 6,16-28).

3. 일치 :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관상적 일치. 하느님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 이동훈 프란치스코 - 제천 남천동성당 주임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신학을 전공하였다. 생태영성연구원 공동대표이다.

 

[경향잡지, 2010년 4월호, 이동훈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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