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30 ㅣ No.731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지난 3월 1일 동계 올림픽이 끝났다. 그런데 경기를 텔레비전에서 보려면 숱한 상품 광고들을 먼저 보아야만 했다. 김연아의 경기를 보려면 김연아를 광고모델로 하는 상품에 대한 것들을 먼저 알아야만 했다. 김연아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타고 있는 자동차와 김연아가 우리의 심장을 향해 손가락총을 쏘듯이 유혹하는 전자제품을 구경하고 나서야 김연아의 그 아름다운 몸놀림을 볼 수 있었다.

 

김연아 또는 김연아를 김연아가 되게 하는 피겨 스케이팅보다 먼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상품들! 조금 거창하게 말해, 존재보다 먼저 있는 상품들! 이처럼 소비(또는 소유)가 존재보다 앞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직 소비하는 자만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시장자본주의(market capitalism)는 끊임없이 소비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조작하여 소비를 부추긴다. 자본주의 현대 세계에서 사람들은 그저 한 개체적 소비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은 그의 소비능력에 따라 평가되고 차별화되며, 백화점들은 최상급의 고객에 맞추어 판매 전략을 짜고, 은행들은 고액저축자와 소액저축자를 차등 대우한다.

 

소비사회에서 소비행위는 단순한 물건의 구매와 소비를 넘어선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듯이, “상품의 소비는 그 상품의 사용가치보다는 행복, 만족감, 사회적 권위 등을 소비하는 것이다.” 학술적 용어를 사용하면, 상징의 소비, 기호의 소비를 뜻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김연아가 선전하는 전자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그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사회계층과 자기를 동일시할 수 있으며, (모방적) 자기 욕망의 충족이라는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휴대전화는 그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회계층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곧, 하나의 휴대전화가 통화를 위한 기능적 사용가치에 따라 평가되기보다는 광고와 유행을 통하여 그 휴대전화가 갖는 사회적 상징에 따라 평가된다는 의미이다.

 

소비사회에서 사람의 지위는 그가 무엇을 소비하고 어떤 소비 취향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구별되기도 한다. 유명 상표의 가방을 소비하는 사람과 그저 평범한 가방을 소비하는 사람은 구별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과시소비’다. 부유층은 끊임없이 경쟁적 소비를 지향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단히 모방적 소비를 겨냥한다.

 

필요에 따라 어떤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은 자신의 부유함과 허영을 과시하고자 고가의 상품을 경쟁적으로 구입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 부유층의 욕망을 모방하고자 유사상품(짝퉁)을 구입한다. 결국, 소비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성은 재능과 생산력이 아니라, 점점 소비(소비능력)의 차별성으로 귀착된다.

 

 

소비주의의 문제점들

 

소비주의는 소비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충족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소비사회의 속성이며 일종의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는 물질주의를 강화하며 여러 가지 폐해를 낳는다.

 

소비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지위를 소비를 통해 드러내려 한다. 고급 아파트, 대형 승용차, 명품 제품들을 사용함으로써 자기만족과 신분적 우월함을 표현한다. 또한 부유층의 경쟁적 소비행태와 가난한 계층의 모방 소비행태는 소비의 과잉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결국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와 쓰레기의 양산을 초래한다. 그리고 소비주의 이데올로기가 성행하는 사회에서의 경제발전이란 더 많은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결국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파괴를 초래한다.

 

소비를 통한 사회적 지위의 구별을 겨냥하는 소비주의는 소비행위들에서 소외되는 계층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 더욱이 가난한 이들의 모방소비는 소비주의 성향을 강화시키며, 아이러니하게도 부의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또한 사회적 신분이 평등화되는 것 같은 순간적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소비의 대중화를 통해 소비주의는 간혹 평등주의의 가면을 쓰기도 하지만 그 속내는 언제나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지향할 뿐이다.

 

물질적 소유에 기초한 소비주의는 강화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낳는다. 물질의 소유(소비)가 삶의 중심이 되며 소비를 통한 욕망과 욕구의 충족이라는 쾌락적 소비가 강화된다. 이 쾌락적 소비주의의 확산은 사람들이 옳은 일, 의미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점점 무관심해지고 오직 물질적 소비에 대해서만 집착하게 하는 폐해를 낳는다. 사실, 소비주의를 통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의 확산은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큰 위협적 요소로 작동한다.

 

 

소비되는 그리스도교

 

시장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소비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괴력을 가졌다. 종교 역시 소비주의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소비사회에서는 종교적 신앙들(religious beliefs)마저도 판매되고 구매되는 상품처럼 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종교적 신앙들을 상품을 선택하고 사용하듯이 소비한다.

 

종교적 신앙들이 선택되는 과정은 상징의 소비 또는 기호의 소비라는 현대적 소비형태의 양상을 띤다. 하나의 종교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종교적 신앙들의 실제적 내용물보다는 그 종교가 한 사회에서 갖는 상징적 위치와 의미를 고려해서 결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가톨릭 신앙의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가톨릭이 그 사회에서 갖는 사회적 위치와 상징적 자본 때문에 가톨릭에 입교하는 경향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가톨릭이 사회적으로 중산층과 상류계층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들의 욕망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가톨릭을 선택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상품으로 소비되는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교 영성 역시 상품화되어 소비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영성을 말하고 영성을 찾는다. 오늘날 영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일종의 문화적 중독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세계에서 하나의 화려한 문화적 수사가 되어버린 영성은 상업주의 소비문화가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많이 침투해 버린 영역이 되었다.

 

모든 종교가 저마다 ‘영성(spirituality)’이라는 이름의 상품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특히, 현대세계의 한 문화적 특징인 심리학과 영성의 결합은 영성의 상품화를 더욱 촉진한다. 불안한 현대세계에서 영성은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성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한다.

 

 

윤리적 소비

 

현대 소비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과잉소비와 과시소비에 대한 대안으로 합리적 소비와 소비윤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소비주의 사회 안의 수동적, 종속적 소비자가 아닌 소비행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능동적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윤리적 소비’ 개념이 등장했다.

 

가톨릭교회 역시 윤리적 소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구매는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인 행위”이며, “소비자들은 구매활동의 본질인 경제적 합리성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도덕 원칙을 존중하며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역할”(“진리 안의 사랑”, 66항)을 수행해야 한다.

 

가톨릭교회에서 윤리적 소비란 “구매품의 가격과 품질뿐만 아니라 생산회사의 노동조건과 자연환경 보호 차원까지 고려하면서, 개인으로든 단체로든 어떤 회사의 상품들을 다른 회사의 상품들보다 더욱 선호함으로써 생산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간추린 사회교리”, 359항) 하는 소비행위를 뜻한다. 이러한 윤리적 소비는 “경제 민주주의를 이루는 바람직한 요소”(“진리 안의 사랑”, 66항)로 작동할 것이다. (윤리적 소비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참조 : 천경희 외,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시그마프레스, 2010년; 켈시 팀머맨, “윤리적 소비를 말한다”, 소울메이트, 2010년.)

 

 

소비주의에 맞서는 신앙 또는 영성

 

윤리적 소비행위만으로 현대 소비주의의 문화적 폐해를 극복할 수는 없다. 소비주의가 야기하는 문화적 도전에 맞서려면 더 깊은 문화적, 영성적 차원의 움직임을 요구한다. ‘존재’보다 ‘소유’를 꾸준히 지향하는 소비주의 현상은 “새롭고 더욱 고차원적인 형태의 인간 욕구와, 성숙한 인격 형성을 방해하는 인위적으로 조장된 새로운 욕구들을 올바로 구별하는 기준을”(“간추린 사회교리”, 360항) 흐리기 때문이다.

 

소비주의를 극복하려면 생활양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단순히 소비운동이라는 경제적 차원에서의 움직임으로 소비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전방위적 차원에서의 움직임을 통해서만 소비주의의 깊은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통제되지 않는 탐욕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소비주의라는 괴물과 삶의 상품화를 초래하는 소비주의 문화의 폐해를 극복하려면 종교 또는 신앙이 갖고 있는 그 근본적 힘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교의 힘은 영성의 힘이며 교육의 힘이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에 오직 종교적 신념(신앙)만이 사회의 참된 변화와 변혁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탐욕과 쾌락의 소비주의에 맞서 이타성과 자기희생의 미덕을 키우는 일은 오직 종교적 신앙과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상업주의에 물들어있는 영성을 그 원래의 의미로 복구해야 할 것이다. 곧 삶의 양식으로서의 영성과 영성의 사회적 차원을 다시 살려내야 할 것이다.

 

상업주의 소비문화에 왜곡되어 있는 신앙과 영성의 그 본래적 의미와 힘을 되찾는 것, 그것이 동시에 상업주의 소비문화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사실이 참 역설적이다.

 

* 정희완 요한 - 안동교구 신부. 문경 모전동성당 주임이다.

 

[경향잡지, 2010년 4월호, 정희완 요한]



51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