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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물질주의에 맞서는 하느님 생명의 군사 돼야(이창영 신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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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727

[가톨릭 인터뷰]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창영 신부


물질주의에 맞서는 ‘하느님 생명의 군사’ 돼야

 

 

하루 평균 35명이 자살한다. 돈이 없다고, 나이 터울이 짧다고, 자아 실현에 걸림돌이 된다고 뱃속의 아기를 죽인다. 난치병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미화한다. 내 병을 고치기 위해 네 배아쯤은 실험용으로 쓰고 버려도 괜찮다고 말한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아이들을 성노리개로 취급한다. 용돈을 안 준다고 부모를 때려죽인다. 이들은 ‘인간 이하’이니 사형시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를 막아야할 최소한의 울타리인 법·정책 또한 허점투성이다.

 

사회 각계도 반생명적 문제들의 심각성을 인지하지만, 실질적인 해법 실천에 주력하진 못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도 오랜 기간 생명수호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 노력은 구호에 그친 경우도 많았다는 지적이다.

 

가톨릭신문이 창간 83주년을 맞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창영 신부를 만난 이유다. 이 신부와의 특별 인터뷰를 통해 교회와 사회 각계의 노력이 범국민적인 동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짚어본다. 최근 사회 이슈로 대두된 각종 생명 관련 문제들에 대해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창영 신부는 “생명과 물질의 전쟁”이라고 지적하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시대에 만연한 물질주의에 대응하는 부단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 신부는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제정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올바로 재개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며 “가장 첨예한 사회 이슈로 떠오른 낙태 근절을 위해서는 먼저 태아를 보호하는 법과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생명을 훼손할 수 있는 독소조항을 담은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 재개정이 독소조항의 수정 없이 졸속 추진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 현행 생명윤리법이 인간 생명(배아를 포함)을 물질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이미 생명을 물질화해 도구로서 전제하고 있기에, 본질적인 개정을 하지 못하고 겉만 맴돌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윤리법은 처음부터 생명수호를 위한 안전망으로서라기보다는 일부 생명공학연구 환경을 뒷받침해주고자 마련됐습니다. 재개정 단계에서까지 생명윤리학자들이 제외된 문제점을 해결하고 올바로 재개정 되도록 하기 위해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도 각 교구와 연대해 시급히 나설 예정입니다.

 

 

- 가톨릭교회는 생명윤리법 제정 이전 단계에서부터 재개정까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성과는 미미했다는 지적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 교회가 생명의 수호자로서 구호를 널리 내세운 반면 실질적인 행동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무엇보다 대사회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투신해야할 때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생명수호를 위한 범종교 연합이 구축돼야 할 것입니다. 범종교 연합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생명 관련 문제들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대안을 실천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법 개정 등을 위해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정부에 긍정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노력 등도 보다 전문적이고 힘 있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교회 내적으로는 각 교구 및 본당 생명위원회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생명위원회가 설치되면 각 교구와 지역 특성에 맞는 생명운동을 지원할 수 있으며, 한국교회 차원의 생명운동도 더욱 힘을 얻을 것입니다.

 

 

- 생명윤리법 재개정이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올바른 재개정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는 생명과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을 차별하고 있습니다.

 

생명윤리법은 ‘생명공학 육성법’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기본적인 생명 보호가 아닌 각종 연구 관련 조항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항들의 개정과 아울러 긍정적인 생명 보호 조항 첨부가 진행돼야 합니다. 특히 태아 보호 조항이 필요합니다. 태아 보호는 별도의 법도 제정할 필요성이 있을 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태아 보호법이 제정된다면 어린 생명은 물론 여성의 인권이 크게 신장될 것입니다. 여성의 건강과 생명, 인권 수호를 위해서도 태아 보호법은 꼭 필요합니다. 여성들 또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

 

 

- 최근 낙태 근절을 위한 범국민운동이 확산되면서, 동시에 일부 외국 국가들처럼 낙태 허용 범위를 도리어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 낙태가 어린 생명을 죽이는 일일 뿐 아니라 여성의 인권과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성들이 먼저 낙태로 인해 스스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정책과 법으로 여성의 인권을 짓밟아왔습니다. 정부에 의해 강제로, 아기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와 절대적인 기준으로 비교해 낙태를 합법화하자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이가 없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거나 ‘돈이 드니까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등의 사고 방식을 ‘행복추구권’ 혹은 여성의 ‘선택권’이라고 말하는 가치관도 즉시 개선해야할 문제점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모두 인간을 물질로 보고, 삶의 기준을 물질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 이른바 김길태 사건 등의 여파로 사형제 부활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사형제의 합헌 판결이 있기도 했습니다.

 

▲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결단입니다. 생명에 관한 문제는 국민의 정서를 고려할 부분이 아닙니다. 다시 사형을 부활시킨다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반생명적인 50여 년 전의 사회 상황으로 뒷걸음치는 것과 같습니다.

 

사형제도에 관해서는 법조인들조차 이미 폐지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보입니다. 단지 일부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 ‘시기상조’라는 것은 국민들의 정서가 아직도 사형제도 찬성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말합니다. 심각한 범죄가 발발할 때마다 사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미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됐고, OECD 의장국까지 된 상황에서 사형제도 폐지가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합헌이라는 판결이 있었지만, 실제 전문가들의 여론도 합헌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존폐를 논할 것이 아니라 대안에 대해 연구하고 확정할 때입니다. 빠른 시간 안에 국회에 사형제도 폐지안을 재상정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형 대신 절대적 종신형으로 가닥을 잡고 전문적인 연구 등이 이뤄져야 합니다.

 

 

- 각종 생명문제에 대해 ‘내 삶의 문제’라고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더해져야 하는지 조언해주신다면.

 

▲ 물론 교육이 관건입니다. 우리사회가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특히 조기 생명교육은 필수적입니다. 어릴 때부터 생명존중 가치와 의식을 심어주지 않으면, 성장해서도 생각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유치원생 혹은 초등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의무 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의사나 생명공학자로 활동할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더욱 심화된 윤리교육이 지원돼야 합니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가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활 안에서 물질이 생명을 침해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생명과 물질의 전쟁’이 진행 중인 것입니다.

 

사람도 물질로 취급하기 때문에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태아를 죽이고, 환자를 안락사 시키고, 자살하고, 타인을 죽이고 하는 직접적인 문제뿐 아니라 물질 우선으로 자녀를 교육시키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과 경쟁하고 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의 원인은 바로 물질 중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생명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응하는 사람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가톨릭신문, 2010년 4월 4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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