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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인간 게놈지도의 완성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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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11

인간 게놈지도의 완성과 문제점

 

 

미국과 영국 등 6개국의 공공자금 지원에 의해 결성된 국제컨소시엄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미국의 한 생명공학기업체인 「셀레라 제노믹스사(社)」는 지난 2월 12일 10시 동시에 인간 게놈지도가 예상보다 빨리 완성됐다고 공표했다. 대중매체들은 게놈지도의 완성은 "놀라운 일", "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등의 표제를 붙여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 두 단체들은 이해관계가 다를 뿐만 아니라 경쟁관계에 있는 탓으로 동일보조를 취하지 않고 셀레라사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싸인언스"(Science)지에,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영국에서 발간되는 "네이츄어"(Nature)지에 각각 다르게 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유전정보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된다면, 그것은 "의학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일부의 생명공학자들은 수십년 전부터 주장해 왔고, 매스컴도 덩달아 이를 보도해 왔다. 그래서 인간 게놈지도와 이를 분석한 연구결과의 진전은 많은 종류의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규명과 또 치료제의 개발, 환경적 위험요소의 규명 등을 밝혀주는 주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해주었다. 예컨대 게놈지도는 각종 난치병인 암, 알츠하미어(치매증), 에이즈, 파킨스병, 당뇨병, 심지어 마약 및 알콜 중독 등의 원인규명과 유전적인 정신질환의 치료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는 유전적 결정론자들의 꿈같은 주장만이 우리 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일부의 생명공학자들은 유전자들은 인간의 몸의 구성, 온갖 병의 발생, 인간의 행동양식과 지적 능력, 성(性)적 선호도, 범죄 성향까지도 결정한다는 과장된 유전자 결정론을 수십년전부터 주장해 왔다. 그래서 유전자 연구를 위해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 엄청난 규모의 연구비가 투자되어 왔다. 미국에서만도 3조 달러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고, 영국에서도 이미 수억 파운드가 사용되었고, 앞으로 5년 동안 2조 5천억 파운드를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도 우리 나라에서는 유전자 결정론만이 일방적으로 소개되었고, 유전자 결정론을 비판하는 내용들은 특히 대중매체에서는 소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간게놈지도완성의 주역을 맡았던 생명공학 기업체인 셀레라사(社)의 대표인 벤터(C. Venter)는 다행히도 정직하게, "우리는 쉽게 유전적 결정론의 관념이 올바르다는 것을 보여줄 만큼 충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인간 종(種)의 놀라운 다양성은 유전자 코드 안에 있는 하드웨어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천명했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게놈을 지도화하는 것은 대재앙으로 가는 길"이라는 한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영국 개방대학 생명과학 교수인 매완호(Mae-Wan Ho)는 "인간게놈 지도는 바로 유전자 결정론의 죽음"이라고 말하면서 게놈연구를 "과학적, 재정적 블랙홀"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게놈연구는 투자자와 국가의 보건을 향상시키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공적 및 사적 자원을 꿀꺽 삼켜버릴 것"이라고 혹평했고, "인간게놈연구는 사기"라는 논문에서 "영국정부가 영국 국민들에게 병을 유발하게 하는 모든 유전자를 찾아내겠다는 잘못된 시도를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적어도 2조 5천억 파운드를 투자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영국)의 국가보건의료체계는 경제적 위기에 처할 것이고 다른 보건의료서비스의 연구·개발은 무시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설사 인간게놈연구에 의한 약품생산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서민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돌아가기 어렵게 되어 있다고 하면서, 현재 유전자연구에 대한 특허가 부여되는 속도는 광란이라고 할만큼 가속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예컨대 미국에서 유전자특허신청은 1980년 후반에 15만 건에 이른 것이 현재는 27만 5천 건에 달한다고 한다. 현존하는 유전자 수보다 12배나 많은 특허가 인정된 아이러니는 동일한 DNA가닥에 대해 복수의 특허가 주어졌기 때문이며, 이러한 특허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교란할 것이라는 것이다.

 

정직한 전문가들은 인간게놈연구가 유전적 질병(극히 한정된 일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개발 등의 실용화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비용외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업화하려는 생명공학관련 기업들의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며, 우리 정부도 이를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유전자 연구의 지원에 신중을 기할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전자 결정론은 하나의 가상에 불과하다고 필자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유전자의 행동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형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유전자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유전자를 통해 질병발생을 간단히 설명할 수 없으며, 질병은 환경 및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으며 유전자 결정론자들의 주장처럼 유전자들과 질병과의 관계는 매우 희박하다.

 

둘째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우생학과 유전적 차별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체세포에 대한 유전자치료연구는 10년 이상 진행되었으나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을뿐더러 너무나도 많은 비용이 특정한 연구에 과도하게 투입되기 때문이다.

 

넷째로, 인간게놈연구의 발상은 여전히 서구과학과 전지구적 많은 과학자들의 몰가치적인 기계론적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래한 것이고, 이 연구는 장기이식에 필요한 세포들과 조직들을 제공한다는 구실로 인간배아의 복제와 인간배아 복제수정란을 다른 동물의 난자와 교잡시키려는 반인륜적인 시도를 하려고 할 것이다. 무신론적인 유전공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를 인간화된 돼지를 만들고 이것으로부터 인간에게 이식할 장기와 세포들을 얻으려고 획책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지침이나 통제로부터 벗어나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불순한 기업인들의 주구(走狗)가 되기 쉬운 호기심에 가득찬 몰가치론적 과학자들의 인간의 유전자연구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안된다.

 

대부분의 위대한 기술발명이 순기능뿐만 아니라 역기능도 초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인간게놈연구도 우리에게 이득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생명과학분야의 연구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주되, 연구결과의 잠재적 남용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유전공학연구의 보편적 지침 내지 생명윤리에 관한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미 1993년에 생명공학과 의학분야의 유전자 연구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유네스코는 관심을 가지고 「국제 생명윤리위원회」를 창설하고 이 위원회를 통해 생명윤리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수행하고 보편적인 원칙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여왔고 드디어 1997년 29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인간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뒤늦긴 했으나 1998년 한국생명윤리학회가 창설되었으며, 생명윤리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모여 학제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필자는 인간게놈연구와 이와 관련된 산업이 최소한도 다음과 같은 지침을 지켜주기를 제안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모든 사람은 유전적 특질에 관계없이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인간도 그가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질로 환원시켜서는 안되며 개인의 유일성과 인간의 다양성은 존중해야 한다.

 

둘째, 개인의 게놈에 영향을 끼치는 연구는, 예컨대 치료와 진단에서 반드시 그에 따르는 잠재적인 위험과 이익을 엄밀하게 사전에 평가한 후 시행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사전에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가 알려진 상태에서 관련당사자로부터 동의를 얻어야만 하며, 항상 당사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인간게놈연구는 국내와 국제적인 연구기준이나 지침을 따라 권위있는 기관으로부터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셋째, 그 어떤 사람도 유전적 특질로 말미암아 그의 기본적 자유와 인간 존엄성의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용과 보험 등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법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넷째, 신원이 확인되는 개인의 유전적 정보는 법이 정하는 특별한 조건 아래에서만, 가령 연구와 치료를 위해서 제한된 범위내에서 예외적으로 알려질 수도 있으나 원칙적으로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

 

다섯째, 우리 정부는 인간게놈연구의 위험과 남용을 예방하기 위해 인간게놈연구기획의 사전 심의를 공정하게 할 수 있는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와 같은 상설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우리는 왜 독일어권인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가 인간 및 동물의 배아복제는 물론, 유전자조작 식품 등에 대한 유전자 연구를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교훈(서울대 교수,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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