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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새롭게 인식되는 자연출산 조절방법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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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1-12 ㅣ No.625

[생명의 문화] 새롭게 인식되는 '자연출산 조절방법'의 가치 - 자연출산조절법 왜...

 

 

1960년대와 70년대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했던 가장 강력한 정책 중 하나가 출산억제 정책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채 안 되는 당시의 낮은 경제수준이 부부 당 평균 5-6명의 자녀를 낳는 높은 출산율과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아래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엄마가 30살이 되기까지 3년 터울로 3명의 자녀만 낳자"는 소위 '3-3-3 운동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가족계획사업은 곧 이어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로 바꾸어 사업을 추진했고 나중에는 "하나도 많다"는 구호까지 만들어 자녀 출산을 적극적으로 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위적 자녀 출산억제와 비윤리적이고 반생명적 인공 피임방법 사용이 옳지 않다고 배워 온 가톨릭신자 부부들이 겪게 된 어려움이 적지 않았던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피임 성공률이 낮은 오기노식 주기이용법 말고는 당시로서는 달리 신자들이 사용할 만한 대안적 피임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인공적 피임방법 보급이 절정에 이른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을 통해 다시 한번 인위적인 출산억제 정책의 부당함을 밝히면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부가 피임을 해야 한다면 자연적인 출산조절 방법, 즉 임신이 가능한 가임기에 부부가 금욕하는 방법을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교회 내 의사와 과학자들에게 가톨릭신자들이 좀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자연적 출산조절 방법을 연구 개발하도록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교황님의 요청에 가장 적절하게 응답한 것이 바로 1972년 호주 빌링스 박사가 개발한 점액관찰법이다. 물론 이 방법 말고도 몇 가지 배란 증상을 이용한 증상체온법 등이 추가로 개발되었지만 역시 이 점액관찰법이 여성들의 지식 수준에 관계없이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장점이 많았다.

 

임신은 여성의 난소에서 한 달에 한번 생성되는 난자와 남성의 정자가 만나 수정되면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난자와 정자의 수명은 각각 1일과 3일 정도여서 두 생식세포가 만날 수 있는 기간은 한달 중에 5일에서 7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한 달 중에 임신이 되는 기간은 임신이 안 되는 시기보다 훨씬 짧기에 부부가 가임기를 알아서 이 때만 금욕하면 얼마든지 임신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점액관찰법은 바로 이 임신가능 기간을 알려주는 신체 반응을 관찰하는 것으로 어느 여성이든지 몇 달만 자신의 자궁입구 점액상태를 관찰하면 쉽게 임신이 가능한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이 자연출산조절방법의 사용을 권장해 온 것은 다른 무엇보다 이 방법이 부부간의 대화와 협조를 바탕으로 하고 따라서 부부간의 사랑과 가정성화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3년 가을 주교회의 요청에 따라 가톨릭병원협회 내에 '행복한 가정운동위원회'를 설치하고 곧 이어 전국 가톨릭병원에 행복한 가정운동 상담실을 개설해서 빌링스박사의 점액관찰법을 교육하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착수했다. 1980년대까지 전국 모든 교구에서 활발하게 추진되던 행복한 가정운동은 그러나 이후 교회의 관심부족과 인공적 피임방법의 광범위한 보급에 밀려 제 역할을 못해 왔으며 지금은 겨우 서울대교구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정부의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과 부부들의 높은 피임사고로 인해 지금 우리나라 여성들의 합계출산율, 즉 평균 출산자녀수는 1.3명이 안 된다. 이것은 홍콩이나 대만, 그리고 싱가폴이나 일본 등과 함께 세계 평균 2.6명의 절반 수준이며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출산율이다. 이대로 가면 멀지 않아 인구의 절대수가 감소하게 될 뿐 아니라, 연령별 인구구성에 있어서도 많은 노인인구를 부양할 젊은 연령층의 감소로 국가 경제에도 큰 어려움을 주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정부는 이제 출산억제정책을 포기하고 오히려 출산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안 피임보급에 올인 했던 '대한가족계획협회'도 1999년부터는 명칭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로 바꾸고 오히려 출산장려에 나서고 있다. 국가의 맹목적 출산억제 정책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우려가 옳았다는 증거다.

 

영구적 불임이나 의학적 부작용이 많은 인공 피임방법보다 불임부부에게는 임신을 도와주고, 출산조절을 원하는 부부들에게는 일정기간 임신을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자연출산조절 방법의 가치가 이제 새롭게 인식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교회가 젊은 부부들이 건강하게 출산을 조절할 수 있는 자연출산조절방법 보급에 앞장섬으로써 끝까지 그 예언적 사명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09년 1월 4일, 맹광호(가톨릭대 명예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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