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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10-04-05.....부활 1 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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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0-04-04 ㅣ No.917

부활 제 1 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2,14.22-33마태 28,8-15

2010. 4. 5. 등촌3동

주제 : 부활에 대한 자세

사람은 평생 동안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그 발을 땅에 붙이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땅에서 발을 뗀 세상에 관련된 것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알거나 관심을 가진 것만큼, 그것들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달라지는 자세는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본래의 의미를 진작시키고 그와 더불어 좋은 결과를 남기려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눈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 의도하는 일과 반대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제 부활대축일을 지낸 이후,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우리는 부활을 전례 안에서 기억할 것입니다. 이 부활이라는 낱말은 우리 삶에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까요? 질문은 쉬운 것이지만, 대답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세가 다르면, 그 영향도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무엇이 얼마나 큰지는 우리가 좀 더 잘 구별해야 할 일이지만 말입니다.

  오늘 독서로 들은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는 목청을 높여,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들었을까요? 질문은 하지만 그 대답은 잘 알 수도 없고, 대답을 안다고 해도 그 내용이 우리네 삶에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질문을 내 삶에 적용하고서 만드는 대답이 중요한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머무십니까?

  삶의 변화는 실제로 아주 큰 데서 오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목청을 높여 부활을 외쳤습니다만, 초창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그 파급효과는 아주 작았고, 실제로는 박해 당하면서 이리저리 쫓기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모습은 그 당시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지만 말입니다.

  사람이 발을 땅에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현실 삶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방법을 누구나 찾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과 철학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들의 삶의 근거를 눈에 보이지 않는데서 찾고 설명합니다만, 귀로 듣는 몇마디의 말로 그것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서 보여주신 부활, 그에 대한 말씀을 듣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우리가 진정으로 부활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힘으로 실현된 그 부활에 대해서 먼저 배우고, 내 삶에 적용하게 해주시라고 청해야 할 일입니다.

  돈을 따라 움직인 경비병들과 군사들처럼, 우리가 현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면, 무엇이 제대로 되겠는지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부활이라는 선물은 넋을 놓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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