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10-03-20.....사순 5 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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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0-03-21 ㅣ No.907

사순 제 5 주일 (다해)
이사 43,16-21               필리피 3,8-14                   요한 8,1-11
2010. 3. 21. 등촌3
주제 : 신앙인이 할 일(?)
우리 삶에 희망과 기쁨을 주실 손님께서 언덕 너머까지 도착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주실 분을 맞아들일 준비는 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사순절 5 번째 주일입니다. 40일간의 사순절 기간도 이제는 10일이 조금 더 남았습니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내가 어떤 준비를 했는지는 다른 사람이 알지는 못합니다.
 
오늘 사순 5 주일,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용서(容恕)’입니다. 오늘 들은 말씀에서, 용서의 주체는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내용은 사람들 사이에서 드러나야 할 용서에 대한 것입니다.
 
신앙인이든지, 신앙인이 아니든지 용서를 실천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용서라는 것은, 삶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그 상처를 만든 사람을 향해서 실천하는 것이기에 힘들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용서가 어렵고 힘든 것이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은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남에게 죄를 묻는 행동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한 여인이 붙잡혀 왔습니다. 그녀를 붙잡아 온 사람들은 그 여인이 무슨 일을 했는지, 그녀를 어떻게 처리해야 모세가 정한 법과 규정에 합치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전한 하느님의 뜻은 사람을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반대로 알아들은 사람들은 판단이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그 못된 일을 드러나게 그 여인을 그냥 놓아둘 수 없는 일이며, 나와 같은 공간에서 숨 쉴 자격이 없으니 이 세상의 목숨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죽어야 할 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그만 살아야 할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하나씩, 둘씩 모두 다른 세상으로 다 보내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게 되었을 때, 그때에 우리에게 찾아올 느낌이 어떠할 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입니다. 죽어야 할 사람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후다닥 실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세상의 정의라고 목소리를 높였을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예수님은 그곳에 몰려온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판단을 하십니다.
 
죄를 지었다고 붙잡혀온 여인에게 너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을 앞에 두고, 그녀의 삶에서 죄를 묻고 싶었던 사람들을 향하여,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 그 여인의 목숨을 거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선언이 실현된 다음, 나도 네 죄를 묻지 묻지 않을 테니, 이제부터는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떤 뜻으로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로 그렇게 살아야하느냐고 물으면서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삶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지 생각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부산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에 요즘 시끌벅적 합니다. 사형을 집행해서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법무무 장관이 말하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그렇게 나오는 소리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여러분에게 묻지 않겠습니다.
 
지난해에 개봉된 <집행자>라는 우리나라 영화가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사형집행 명령에 따라,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해야 하는 교도관들의 마음을 다룬 영화입니다. 법에 따라 일하는 교도관들도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한 마음을 갖게 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새삼스레 영화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은 찬성과 반대에 대한 개인의 생각 이전에, 생명에 대한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정신은 용서(容恕)입니다. 흔히 사랑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용서라는 말을 어떻게 알아듣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과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삶의 자세도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이 용서받을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사람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게 된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선언입니다. 사람에 대한 용서는 하느님께서 먼저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은 이렇게 귀중한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정의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옹졸한 생각과 태도가 맺는 삶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약속하신 상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올바로 알아야 우리가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느님 나라에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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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최종(最終) 사형집행일은..... 김영삼대통령의 말기. 199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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