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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회와 사회교리: 사회교리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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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16 ㅣ No.753

[경향 돋보기 - 교회와 사회교리] 사회교리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나?

 

 

1987년 6·10항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민주화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교리는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한 시기부터 지금까지 매우 적극적 역할을 하였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이끄는 동력이었다.

 

 

한국 사회 민주화와 가톨릭교회

 

1987년 이전 사회교리에 바탕을 둔 민주화와 인간화는 교회의 기본정신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가 민주화를 강조하는 것은 인간화를 위해서입니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인간화가 되지 않는 곳에 참된 민주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개헌보다 인권문제가 더 시급하다’, 1986년 7월 21일 강론)라고 강조하였다.

 

1987년 이전 민주화와 인간화는 전반적으로는 유신체제, 인권탄압, 부정부패, 정보정치, 용공조작 등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을 기조로 하여, 구체적으로는 지학순 주교 석방운동(1974-1975년), 전국성년대회를 즈음한 사회정의 구현운동(1974년), 언론자유 쟁취운동(1975년), 시노트 신부 추방 반대와 항의운동(1974-1975년), 김지하 석방운동(1976년), 인혁당사건 진상규명과 관계 당사자 구명운동(1975년), 민주구국을 위한 3·1명동사건과 관련자 석방운동(1976-1977년), 전주교구 7·6사태 항의와 규탄, 동일방직 오물폭력사건, 함평 고구마사건, 교회주보 탄압(1978년), YH사건, 부마사태(1979년),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1982년), 개헌서명운동, 성고문사건, 이돈명 변호사 구속사건, 언론보도지침 폭로사건(1986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4·13 호헌조치, 6·10민주화 대투쟁(1987년) 등과 관련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1987년 이전 교회의 사회에 대한 입장은 전국적인 차원에서 천주교 주교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등을 통해 표출되었다. 지역적인 차원에서는 각 교구 정의구현사제단, 그리고 개별 지도자로는 주교로서 전국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서울대교구 김수환 추기경과 각 교구의 주교들, 그리고 많은 사제들이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강하게 입장을 표명하고 실천을 위해 노력하였다.

 

“교회는 부정부패 추방운동과 함께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가난한 도시 근로자들에게 노동 3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한편으로, 그들을 대신하여 인권수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처럼 현실 문제에 적극적이 된 것은 잘 아시다시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입니다.

 

이 정신에 입각하여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처럼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명동대성당은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되고, 허위와 부정과 불의에 대항하는 메카로 변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김수환, ‘한국의 복음 선교-제3천년기를 맞이하여’, 서일본 선교 사제대회 강론, 1999년).

 

 

사회교리에 입각한 민주화 · 인간화 노력

 

민주화와 인간화의 기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사회교리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주교단의 교서, “성년은 하느님, 인간, 가난한 자의 해”(1974년 7월 5일)는 그 근거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과 1971년 로마에서 개최된 주교 시노드가 채택한 “세계정의”, “민족들의 발전”을 들고 있다.

 

‘사회교의 실천은 종교의 의무’임을 강조한 주교단의 선언문(1974년 7월 25일)은 “지상의 평화”를, 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선언문, “불의의 타파를 위한 77선언”(1977년 4월 18일)에서 ‘사목헌장’ 15, 19, 74항, “어머니와 교사” 71항 등을 근거로 들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역시 결의문, “노동자의 권익보장을 위한 결의”(1982년 3월 10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채택한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개별 지도자로서는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주교회의 의장(1970년 10월부터 1975년 2월까지 1차, 1981년 5월부터 1987년 11월까지 2차)을 역임한 김수환 추기경이 교회의 사회참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 ‘고통 받는 모든 이를 위해’(1974년 12월 10일)에서 요한 23세 교황께서 회칙 “지상의 평화”를 언급하면서 민주주의적 삼권분립 원칙은 인간본성의 요구에 합치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1976년 성탄 메시지에서 서울대교구의 김수환 추기경,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 인천교구의 나길모 주교는 사회의 정의와 평화의 정신은 사회교리임을 강조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필연코 져야 할이 시대의 십자가’에서 “현대 교회가 공의회를 통하여 가르치고 교황들이 교서를 통하여 거듭 강조하는 바와 같이 정의가 구현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곳에서만, 모든 이의 생존권과 신교와 언론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 권리가 존중되는 곳에서만 참된 발전과 번영과 평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지학순 주교는 ‘구유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께’에서 “근래에 와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정된 많은 문헌이 교황님들의 회칙인 “어머니와 교사”, “지상의 평화”, “민족들의 발전” 등을 통해서 얼마나 많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정의를 가르쳐 왔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길모 주교는 ‘정의는 평화로 가는 길이다’에서 비오 12세, 요한 23세, 바오로 6세 교황과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가했던 주교들과 1971년 로마 주교 시노드에서 자주 언급된 평화와 정의와 사랑의 상호관계를 근거로 “지상의 평화는 질서가 있어야 확립될 수 있으며 이 질서는 정의와 사랑에 바탕을 둔 도덕적인 질서이어야 합니다. 이 도덕적 질서의 원리는 지성과 자유의지를 부여한 인간의 인격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은 존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존엄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이 때문에 인권이 샘솟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위에서 열거한 사건들을 통해, 주교단,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그리고 주교들뿐 아니라 사회참여 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일반 사제들의 행동 근거는 사회교리임을 알 수 있으며, 교회 지도자들의 이러한 의식과 실천이 신자들의 의식변화와 실천의 기초가 되었다. 사회교리에 입각한 민주화와 인간화의 노력은 결국 1987년 민주화 대투쟁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한편 2000년 주교회의가 발표한 한국 교회의 과거사 반성문건 ‘쇄신과 화해’에서는 “우리 교회는 광복 이후 전개된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빚어진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홀히 한 점을 반성하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마음 아파합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국내 차원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넘어서, 민족문제와 통일문제 등에서 교회의 사회참여가 갖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는 “새로운 사태”, “사십주년”, “하느님이신 구세주” 등 교회의 사회교리에서는 공산주의를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단죄하는 데 기인한다. 한국 교회는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을 분명히 원하지만, 한국 교회 안에는 자유민주주의보다는 민족과 통일이라는 가치를 우선시하는 입장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환경 분야에서의 사회교리 실천

 

1987년 민주 항쟁 이후 ‘나라의 민주화, 사회의 인간화’는 외형적으로는 틀을 갖추었으나, 실질적으로 내실을 다져가야 하는 많은 과제를 아직도 갖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화의 결실을 위해 생명과 환경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사회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백주년”, “진리 안의 사랑” 뿐 아니라 그간의 사회교리 문헌을 간략하게 정리한 “간추린 사회교리” 등 사회교리 문헌에 입각하여, 교회의 사회참여도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1987년 이전에 이룬 민주화와 인간화의 큰 틀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가는 미시적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생명정의의 실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환경정의의 실현을 위해 교회는 계속해서 발언하고 시정을 촉구하고 있다. 생명윤리에 입각하여 올바른 줄기세포의 연구, 산아조절, 장기기증을 강조하고, 낙태, 자살, 사형제를 반대하며, 이를 위한 법률의 제정과 잘못된 법률, 정책을 비판한다.

 

환경윤리의 확립을 위한 노력은 기후변화 등 환경위기가 심각해짐에 따라 더욱 밀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는 해마다 환경과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 교회도 최근에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서 친환경적인 개발을 강조한 바 있으며, 특히 올해 들어 4대강 개발에 대해 매우 강력하고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4대강 개발 반대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교회 안 가르침을 교회 밖에서 실천해야

 

사회교리는 ‘말씀’에 바탕을 둔 교회 안의 가르침을 교회 밖에서 실천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교회 공동체 밖에 있는 가정공동체, 사회공동체, 국가공동체, 민족공동체, 국제공동체, 하물며 환경공동체까지도 복음의 가치로 젖어들게 하는 것이 사회교리이다. 모든 공동체는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첫 사회교리 문헌인 1891년의 “새로운 사태”도 산업화와 개발로 피폐해진 세속 공동체를 구원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이며, 이 노력이 1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축적되고 있다. 다른 종교에는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정교분리 원칙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는 세속과 독립적일 수 없으며, 신자들의 개인적 신심 함양에만 만족할 수 없다.

 

세속도 교회의 비판을 수용해야 하며, 신자들도 교회 안의 가르침을 교회 밖에서 실천해야 성속을 겸비한 완전한 신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극소수의 사제나 신자들이,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교회를 비판하는 일은 표현의 자유문제를 넘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 된다. 이들은 교회의 실천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실천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들을 비판해야 한다. 비판보다는 침묵이, 침묵보다는 기도가 실천을 돕는 일이다. 이들에게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주님의 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회교리의 반포자이신 교황님들께서는 말씀하신다. “평신도들이 교회의 봉사와 임무에 지나치게 강렬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전문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분야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커다란 유혹이자 잘못이다.” “평신도들은 현세적 질서의 쇄신을 자신들의 의무로 알아서 행동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교회 밖 세상에도 책임을 져야한다.”

 

 

사회교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에서 사제나 신자들의 사회교리에 대한 인식은 아직 매우부족한 편이다. 사제들도 사회교리라는 표현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고, 표현은 알고 있어도 잘못 알고 있거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어떤 신학교에서는 사회교리가 필수과목이었다가 이제는 선택과목으로 바뀌어 수강생이 전혀 없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2010년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사회교리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교구는 서울대교구, 광주대교구, 인천, 대전, 마산 교구 등 5개 교구뿐이다.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도 아직까지 대부분의 교구에서 ‘사회교리’는 공식적으로 보급되고 있지 않다. 보급되고 있는 경우도 서울대교구를 제외하고는 연륜도 짧고, 피교육자의 수도 적다.

 

사회교리는 세속 공동체를 복음화하고자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계속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제공될 것이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준이 ‘말씀’에 따라, 120년간의 축적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이념의 문제, 곧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인 발상의 갈등, 자유와 평등의 문제, 성장과 분배의 문제, 또한 이것과 연결된 민족통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기준, 지혜, 실천은 사회교리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차원의 공동체에서 공동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대성과 보조성의 원리가 ‘말씀’을 시대 상황에 맞게 구체화한 사회교리 안에 들어있다. 한국 사회에 사회교리가 널리 확산되어야 한다. 다른 종교에도 우리 교회의 자산을 전해줄 필요가 있다. 먼저 사제들이 사회교리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신자들을 교육시켜야 하며, 신자들은 사회교리를 실천해야 한다. 사제나 신자는 영혼의 구원이나 개인의 구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제들은 교회 밖 세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평신도들은 교회 밖 세상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 나정원 아우구스티노 -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회정의시민행동 사회정의연구소장. 한국가톨릭사회과학연구회 회장. 주요 관심분야는 사회교리, 정치사상, 환경정치 등이며, 저서로는 “한국정치와 환경정치”(집문당, 2009), “플라톤의 정치사상”(법문사, 1989)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0년 7월호, 나정원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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