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생태 영성: 하느님 나라를 위한 녹색 순교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0-02 ㅣ No.775

[생태 영성] 하느님 나라를 위한 녹색 순교

 

 

생태계 문제와 순교 신앙

 

하느님을 세상의 창조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생태계의 위기는 곧 신앙의 위기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거처인 생태계를 함부로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스도교란 종교의 근간을 파괴하는 행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 속에 살아계시며 당신 자신을 끊임없이 계시하신다.

 

또한 세상은 우리가 추구하고 갈망하는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고 완성되어야 할 장소이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마음 놓고 마실 물과 공기가 사라지고 환경재난으로 아수라장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과연 창조주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을까? 그러한 세상을 이미 와있는 하느님 나라로 감지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살하려는 박해에 맞서 목숨을 바쳐 신앙의 위기를 극복한 순교자들을 본받고자 노력하는 순교자성월이다. 생태계와 신앙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자 우리에게 목숨을 바쳐 신앙의 유산을 전해준 순교자들의 정신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순교의 정의와 시대적 변천

 

영어의 순교자를 나타내는 ‘Martyr’는 희랍어의 ‘μαρτυ?(마르튀스)’에서 나온 말로 본래 ‘증언’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말은 예수님 생애의 사건들을 목격했던 사도들과, 그 신앙을 증언하다가 폭력으로 죽어간 이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사도 22,20). 이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거나 말씀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종교에 대한 박해가 사라지면서 순교라는 말은 더욱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목숨을 바쳐 증언하는 순교(붉은 순교)와 구분하여 백색 순교, 녹색 순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사막의 교부들과 아일랜드의 수도자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백색 순교라고 불렀다. 이들은 더 나아가 “끊임없이 속죄하며 고통을 참아내는 행위”를 녹색 순교라고 불렀다.

 

 

녹색의 의미 찾기

 

붉은 순교는 피의 색깔을 상징하고, 백색 순교는 비어있음(포기) 또는 순결을 나타내는 색깔이지만, 녹색 순교는 색깔의 상징보다는 아일랜드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다. 아일랜드는 녹색으로 뒤덮여있고, 특히 녹색 숲에서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사실로 말미암아 녹색은 가톨릭을 상징하는 색깔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녹색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의미를 찾아 녹색 순교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녹색에는 생명을 나타내는 싱싱한 녹색과 죽음을 나타내는 검푸른 녹색이 있으며, 파랑이 나타내는 하늘과 노랑이 나타내는 땅이 섞인 색으로서 생태계 전체를 대신하는 색이다.

 

녹색은 또한 지성을 나타내는 차가운 푸른색과 노란색의 태양이 가지는 정서적인 따뜻함이 섞여서, 봄, 번식, 환희, 신뢰, 자연, 낙원, 넉넉함, 번영, 평화를 뜻하는 색깔이다. 전례에서 녹색은 연중시기에 사용하는 색깔이다. 녹색이 지니는 ‘자연, 성실, 생명, 평안, 희망’ 의 이미지는 일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녹색이 지니는 일반적이고 전례적인 의미를 전통적으로 사용하여 온 녹색 순교의 의미와 결합하여 적용한다면 좀 더 의미 있게 녹색 순교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를 살리는 녹색 순교

 

세상을 녹색으로 만들려는 모든 일상의 노력을 녹색 순교라 부른다면, 붉은 순교와 백색 순교에서처럼 녹색 순교도 그 색깔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황폐해진 생태계에 대해 그것을 신앙의 위기로 여기고, 인간이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피조물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을 속죄하며, 생태적인 삶에 수반되는 고통을 참아내며 창조주 하느님을 증언하는 일상적인 모든 행위를 녹색 순교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자 신앙인의 양심으로 생명농업을 실천하여 온 가톨릭 농민회 회원들의 삶이야말로 녹색 순교의 좋은 본보기이다. 생명농업은 관행농법의 죽임의 문화에 대한 반성으로 생태계 파괴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있다.

 

또한 생명농업은 금전적 손해, 주위의 냉대,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노동의 고통을 수반한다. 실제로 가톨릭 농민회 회원들은 초창기 생명농법을 실천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냉소와 냉대를 감당해야 했다. 심지어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생명농업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는 도시인들의 삶도 그것이 단순한 웰빙주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면 녹색 순교라 부를 수 있다. 소비하는 사람이 없다면 생산자들의 열정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신앙의 발로로 창조질서를 보전하고자 생명농산물을 구입하는 금전적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는 소비도 녹색 순교이다.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 장소인 생태계의 아픔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고, 아픈 지구를 치유하여 창조질서를 보전하고자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등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자 일상적 불편을 감수하는 모든 행위를 녹색 순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창조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삶

 

일찍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태학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현대 사회는 그 생활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는 한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1990년 평화의 날 담화, 13항)고 하였다. 20년이 지난 올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담화에서도 ‘생활양식의 변화’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환경의 황폐화 문제가 사회와 환경, 나아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지속될 수 없는 우리의 생활양식과 현재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2010년 평화의 날 담화, 11항).

 

현대 사회의 생활양식을 주도하는 물질문명은 인간이 좀 더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좀 더 편리하려고 자동차와 가전제품들을 만들었고, 일회용품의 생산과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교황님들이 생태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생활양식의 변화란 곧 편리함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결단이라 할 수 있다.

 

편리함이란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편리함은 그 속성상 중독성을 지니고 있어, 편리한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남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이 없어지고, 편리한 생활 자체를 숭상하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재물과 하느님을 함께 섬길 수 없듯이(루카 16,13), 편리함의 우상에 빠지게 되면 하느님도 이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편리한 삶은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뿐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고 죽어가는 자연생명의 고통에도 무관심하게 한다.

 

새로운 생활방식은 결국 그동안 누려왔던 그 편리함을 거부하고 불편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삶을 일부러 찾아 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인은 이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고, 주변 곳곳에 쉽게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중독을 이겨내는 데에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더불어 신앙의 도움, 특히 순교신앙이 필요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은 피를 흘리는 순교뿐 아니라 동정이나 독신생활, 금욕, 자신의 뜻을 포기, 청빈의 삶으로 복음을 증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42항). 사실 붉은 순교도 일상적인 녹색 순교의 삶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녹색 순교의 결과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발로로 죽음까지 각오하는 순교 없이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지구의 고통은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통이다. 한 하느님께로부터 창조된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서로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말씀하시고 스스로 그렇게 하신 예수님의 순교 길을 따라 나설 때이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현대는 하느님과 우리의 벗이요 형제자매인 세상을 푸르게 되살리는 녹색 순교를 요구하고 있다.

 

 

녹색 순교, 다음과 같이 실천해 봅시다.

 

1) 즐거운 불편 : 즐거운 마음으로 불편한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합니다.

2) 걸어서 천국으로 : 성당 갈 때만이라도 걸어서 갑니다.

3) 유기농산물을 이용합니다.

4) 무분별한 4대강 개발을 반대합니다.

 

* 이동훈 프란치스코 - 제천 남천동성당 주임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신학을 전공하였다. 생태영성연구원 공동대표이다.

 

[경향잡지, 2010년 9월호, 이동훈 프란치스코]



66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