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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칼럼: 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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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582

[생명칼럼] 뇌사(腦死)

 

 

1. 생명 연장과 사망 판정에 관한 보고서

 

1) 사망의 정의

 

사망은 인간이 신체의 육체적, 정신적 기능을 통합하고 조정할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때를 말한다. 인간은 자연적인 심장과 호흡 기능이 분명히 멈추었을 때 그리고 뇌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다시 돌이킬 수 없음이 입증되었을 때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다.

 

논의 결과 심폐 기능의 명확한 정지는 곧바로 뇌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뇌사는 분명한 사망 기준이 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또한 뇌 기능이 확실히 정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임상적, 기계적 방법들을 분석하는데 뇌 기능이 멈추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기 위하여, 즉 뇌전도에 뇌파가 더 이상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6시간 간격으로 적어도 두 번 이상 검사하여야 한다.

 

2)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위적 생명 연장

 

뇌사에 빠진 경우, 인공호흡은 제한된 시간 동안 심장 기능을 연장할 수 있다. 이식을 위하여 장기를 떼어 내야 할 경우 이렇게 장기의 생명을 연장시켜야 한다. 모든 경우에 장기 기증 문제는 기증자의 유언이나 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가족들의 동의를 존중하여야 한다.<출처:교황청과학원 “생명 연장과 사망 판정에 관한 보고서”(1985.10.30),Health Progress, 1985년, 31면>

 

 

2. 생명 연장

 

- 언제를 ‘사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중추 마비로 무의식 상태에 있는 환자의 혈액 순환과 생명이 인공호흡기로써만 유지되고 며칠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을 때, 가톨릭 교회는 언제 그 환자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며, 또한 자연법에서는 언제 그 환자를 사망한 것으로 선고해야 하는가?”(‘사실상’문제와 ‘법률상’문제)

 

깊은 무의식 상태에 빠지고 중심 호흡 기능의 마비를 가져올 정도로 뇌에 심각한 외상이 있었지만 인공호흡기로 사망을 지연시키고 있다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의사들의 견해처럼 인공호흡으로 연장했음에도 순환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를 사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특별한 경우의 사망 판정 문제는 어떤 종교적 또는 윤리적 원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런 측면에서 교회 권한 밖의 일이다.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이 문제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연의 순리를 생각해 볼 때, 스스로 또는 인위적인 도움을 받아서라도 생명의 중요한 기능(장기의 단순한 생존과 구별되는)을 분명히 다하고 있는 한 인간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많은 문제들은 아직 확실히 해결되지 못했으며, 앞에서 말한 법률적 추정과 사실적 추정에 따라 다루어야 할 것이다.<출처:교황 비오 12세, “생명 연장”(1957.11.24), The Pope Speaks 4: 4호, 1958년, 396-398면>

 

 

3. 정리 

 

‘죽음’과 ‘죽음의 순간’에 관련된 가톨릭 교회의 최초 언급은 1957년 11월 24일 멘델 연구소가 개최한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모인 의사들에게 교황 비오 12세가 행한 담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어 가는 환자의 죽음과 죽음의 순간에 대한 분명하고도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확인하는 일은 의사들의 영역에 속하며…그것은 교회의 권한 밖에 있는 문제”라고 언급함으로써 죽음의 순간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의사들에게 유보시켰다.

 

이렇게 볼 때 엄밀한 의미에서 의학적 죽음이라든가 장기 기증자의 죽음에 대한 확인 등을 위한 기준들을 정의하는 일은 윤리 신학자들의 임무는 아니다. 이러한 임무는 의학과 그 연구 기술 분야에 속한다. 이 점에 관해서 1985년 10월 21일부터 3일간 열린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가 주최한 생명의 인위적인 연장과 죽음의 정확한 순간 결정을 다룬 세미나에서 내린 죽음의 순간에 관한 정의는 죽음의 순간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견해를 조금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 세미나에서는 뇌사, 곧 뇌 기능의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정지를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의학적 방법과 장치에 대해서 상세히 다루면서, “인간 신체의 정신적, 육체적 기능을 조절하고 통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의 불가역적인 상실, 뇌의 전 기능의 불가역적인 정지가 죽음의 순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세미나에 참석했던 E. Sgreccia 주교도 “수 시간 동안 대뇌 피질의 활동뿐만 아니라 호흡이라든가 심폐 기능, 신경 반사 작용 등과 같은 신체 기능과 연결된 뇌의 중심적 활동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될 때 의학적으로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사실 인간 개인에게는 비록 정신적 삶이 실제의 삶으로부터 방해받는다 하더라도 존재론적 행위만 있으면 살아 있다고 본다. 그러한 행위는 모든 생명적 기능, 생장 기능, 감각적 · 정신적 기능까지도 활발하게 만들어 주며, 지탱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적 생명이 존재하는 한 그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생명적 기능들이 그 기능을 멈추게 될 때, 육체적 인간 생명은 끝났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영혼과 육신이 서로 분리된다고 볼 수 있다.” 곧 뇌의 생명력이 다함으로써 인간의 생명력이 다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세미나는 뇌사를 의학적 죽음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이 세미나에 참석한 의사들에게 행한 담화에서 “의사는 생명의 주인도 아니고 또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죽음은 인간 생애의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것이므로, 이를 피하는 방법으로만 치료를 이끌고 가서는 안 된다. 그 인간 조건에 따라 신중히 생각하고 처리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함으로써 뇌사를 죽음의 순간으로 인정하는 데에 이미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1995년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가 출판한 “의료인 헌장(Charter for Health Care Workers)”에서는 공식적으로 ‘뇌사를 의학적 죽음으로 인정’하면서 거기에 따르는 장기 이식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료인 헌장”은 뇌사와 관련된 장기 기증과 장기 이식이 ‘생명에 대한 봉사’일 때 그 도덕적 가치가 드러나며 또한 그러한 의료 관행이 정당화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한의학협회에서는 이미 1983년에 뇌사에 의한 사망 기준을 선포하였으며, 2000년 2월 9일부터는 공식적으로 뇌사의 입법화에 따른 장기 이식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법률 시행에 따른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뇌사 판정에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단지 장기 이식과 관련지어서 뇌사를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뇌사 판정을 할 때 한치의 오판도 있어서는 안 되는 고도의 정확성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뇌사 판정에 대한 연구가 장기 이식을 쉽게 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 생명과 신체에 관한 성숙된 도덕적 의식이다. 뇌사가 장기 이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현실이라면 이러한 의식의 성숙을 위한 노력이 더 요구된다 하겠다.

 

어쨌든 뇌사를 죽음으로 판정하는 것은 장기 이식과 관련하여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생명으로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적인 희생과 사랑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뇌사에 따른 장기 이식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사랑의 장기 기증일 때만 가능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뇌사가 인정되어 장기 이식 수술로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오히려 더 큰 위험과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어 장기 매매로 이어질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고 하겠다.

 

실질적으로 죽음을 앞둔 많은 사람들이 장기 이식으로 생명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의료 행위들이 인간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고, 인간 삶의 순리와 본질적인 가치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는 끊임없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 삶의 참다운 가치와 본질을 가르치고, 생명 연장의 가치보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더욱더 완전하고 큰 가치임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월간빛, 2004년 7월호,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국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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