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08-03-02.....사순 4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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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8-03-02 ㅣ No.896

사순 4 주일(가해)

1사무엘 16.1ㄴ.6-7.10-13ㄱ          에페 5,8-14         요한 9.1-41

2008. 3. 2. 무악재

주제 : 육안(肉眼)과 심안(心眼)

우리는 보통 눈을 두 개 갖는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특별히 어려운 조건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당연히 이루어지는 일을 생물학에서는 유전자에 기록된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은 세상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합니다. 자기 삶을 잘 살펴서 손해를 입는 일을 피하는 것은 기본이고, 가끔씩은 힘겹게 사는 이웃들을 보고 그가 세상에서 지쳐서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본다는 말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학문으로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겠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설명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삶의 조건이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비슷한 신체조건으로 이 세상의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같거나 비슷한 조건이 모두 같은 결과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하더라도, 삶의 결과로 드러날 때는 다른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태생소경을 만난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길을 가다가 만난 사람, 소경으로 태아난 사람에 대한 판단부터 다른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누구의 죄 때문에 그런 현상이 생겼느냐고 물을 수는 있지만, 같은 상황을 대하면서 죄를 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야 한다고 판단하신 예수님은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 사건을 만드십니다. 제자들이 가졌던 육체의 눈과 예수님이 보셨던 마음의 눈이 달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쳐주신 예수님은 당신의 일이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셨다고 판단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일을 바라보고 있었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예수님’의 행동에 대하여, 그가 말로는 하느님을 들먹이지만 그는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까지 가차 없이 몰아 부칩니다.

  같은 사실을 바라보는 판단이 달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 세상을 통제하고 있던 법칙에 따르면, 잘못을 저지른 쪽은 분명히 예수님입니다.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백성을 지도한다고 생각했던 바리사이들은 현실안주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육안(肉眼)을 가졌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육안을 가진 사람이 영안을 가진 사람에게 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람의 힘은 하느님의 힘보다 강합니다. 둘 사이에 싸움을 붙여 그 강약을 측정해 본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자기 힘을 더 강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힘이 강하다는 것이 항상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의 눈이 떠졌다는 것에서 시작한 문제는 의외로 결론이 간단합니다. 그 사건을 일으킨 예수님을 바리사이들은 눈총과 질시(嫉視)로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기억해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더 중요한 것은 본 것을 제대로 정리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눈은 때때로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보고도 평가를 다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육체의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바라보는 특징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게 다르게 본 것이 자기 삶을 잘못 이끄는 일은 자기 책임으로 끝낼 수 있지만, 다르게 한 판단이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목숨에 해를 가할 때 생기는 잘못은 치유할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본다고 말하는 육체의 눈을 잘 가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심안의 능력도 키워야 할 일입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을 처음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선택했다고, 취소하신 하느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새로운 후계자를 선택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명을 띠고 이사이의 집안을 방문한 사무엘이었지만, 그도 육체의 눈을 앞세웠다가 오류를 법합니다.

  우리 삶에 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통하여 우리가 올바른 삶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우리가 하느님께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면 참 좋을 일입니다. 피조물로서 당연히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육체의 눈을 넘어, 심안의 능력도 키울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함께 기도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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