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연중 29 주간 월요일.....200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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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10-22 ㅣ No.845

 

연중 29 주간 월요일 - 짝수 해        

              에페소서 2,1-10             루카 12,13-21

      2006. 10. 23. 무악재

주제 : 하느님 앞에 필요한 자세

찬미 예수님.

세상살이에 우리는 필요로 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돈을 필요로 하기도하고, 건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내 능력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지금 말씀드린 것들은 모두 디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말 우리네 삶에 필요한 것이냐고 한 번 더 묻는다면, 우리의 대답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두 번 하는 질문에 같은 대답이 나온다면 그것들은 정말로 우리네 삶에 필요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 밭에서 농작물의 소출을 많이 거둔 어떤 부자, 그러나 그렇게 얻은 소출을 오로지 자기 몸에만 투자할 줄 알았던 부자의 자세에서 본다면, 우리가 삶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과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구별도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도 세상의 기준에 따라,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완전히 거부하고 살지는 못합니다.  판단은 달리하면서도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재물이나 물건들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물이나 일, 혹은 사람을 대하더라도 그 대상을 대하는 내 자세에 따라 수 없이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몸뿐 아니라 영혼에게도 세상에서 얻은 곡식이 필요할 것으로 알았던 부자는 ‘헛다리짚은 것’입니다.  현실을 올바로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회복할 수 있는 간단한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하는 실수는 조금만 생각을 해도 고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가 생각과 삶의 태도를 마지막 순간에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과거부터 이어져온 삶의 결정체이고. 미래는 현실의 결정체라는 것입니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사도의 편지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게 살았던 사람들이었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삶의 모양은 달라집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을 버린다면, 생명의 길에서 떠나 죽음의 길로 향할 수도 있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나와 같은 삶으로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이끌 것이냐, 아니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냥 내버려둘 것이냐 하는 것에 따라 다른 사람의 모습만이 아니라, 내 삶도 달라집니다.


세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우리가 모두 깨닫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그만 두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고, 할 수 있는 한 현실을 올바로 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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