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연중 제 28 주일 나해.....20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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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10-14 ㅣ No.838

 

연중 제 28 주일 - 나해

            지혜서 7,7-11               히브리 4,12-13      마르코 10,17-27

    2006. 10. 15. 무악재 

주제 :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찬미 예수님.

우리의 삶에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물론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기에, 절대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어폐(語弊)가 있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그 사정을 조금 배려한다고 하더라도, 돈이 우리들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하찮게 여기며 무시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느닷없이 첫머리에 돈과 우리 삶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오늘 우리 삶에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인지 묵상할 것을 권하는 오늘의 성경말씀과 연결된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돈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습니까?.....하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 질문은 아닙니다만, 그 대답은 별로 다양하게 나올 성격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분이 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개도 안 먹는 것,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싸우고 큰소리칠까?’ 라고 말입니다.  스쳐지나버릴 수도 있는 말인데, 그것 참 색다른 표현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개는 사람들처럼 삶에서 약속으로 정하고 사는 것들이 없기 때문에, 신앙인들을 포함하는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것과 같은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이 소리는 우리가 개와 같은 정신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가치를 낮추어보는 동물들에게서도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선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자비의 영역에 속하는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가졌던 부자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청년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상살이에서 포기할 수 없는 재산을 많이 가졌는데도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과정은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인생살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부자청년은 하느님의 자비를 얻고 찾으려는 쪽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더 확실한 보장(!)으로 보이는 돈과 세속의 재물로 돌아갑니다.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의 재물과 하느님께서 주실 ‘영원한 생명’과 관련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얻기 위해서 많은 애를 씁니다.  삶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얻고자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하고, 때로는 내 삶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들을 과감하게(?) 내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일곱 개의 복이 있다는 유행가 가사’도 있습니다만, 한번 잘못 선택하고, 두 번 올바르지 못하게 선택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우리 삶에서 뒤로 물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회는 항상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네 삶을 힘겹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내가 옳은 길을 알고 있고, 내가 옳은 길을 간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 삶을 삽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복음에 등장하는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가졌던 청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방법은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실천하고 사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청년에 가르쳐주신 것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하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십계명 가운데서, 사람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아무런 불만 없이 잘 지켰다고 자신했던 청년은 인간의 조건에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하느님이 주실 자비에서 스스로 멀어집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의 고집을 더 크게 생각했던 청년이 살았던 때보다, 100년 쯤 먼저 쓰인 지혜서는 ‘우리가 삶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현실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청하고 그 지혜를 정성껏 받아들였더니, 그 지혜가 자기 손에 값진 재산을 들고 왔다고 전합니다.  지혜가 정말로 우리가 요즘 생각할 수 있는 재산을 가지고 오는지 그 말씀에 나오는 뜻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질 일입니다.


지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선물로서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은 다릅니다.  하느님의 지혜와 인간 세상의 지식은 분명히 그 품격을 달리한다는 것이 히브리서 독서의 뜻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것과 세상의 것 사이를 우리가 구별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것을 대하면서도 세상의 것처럼 소홀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구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소리는, 우리를 찾아온 하느님의 축복을 우리가 무시하고 소홀하게 건너뛸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야만 우리가 하느님의 것을 합당하게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에 관한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오늘, 하느님의 지혜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으려면, 그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함께 청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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