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실질적인 낙태근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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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9 ㅣ No.824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실질적인 낙태근절을 위하여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지난 1년의 활동 정리

 

‘낙태근절을 통한 여성건강과 태아생명의 보호’라는 목표로 2010년 1월 창립된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지난 한 해를 ‘낙태근절운동의 원년’으로 삼고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낙태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알렸고 낙태를 예전처럼 수월히 생각하는 악습을 개선하는 성과도 거두었으나, 반면 가장 중요한 주제인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살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국민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온갖 노력에도 국가 정부의 수수방관적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 역시 우리가 올해 더욱 분발해야 할 이유이다.

 

참여자 대부분이 저마다 종교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으나,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가급적 종교적인 색채를 지우고 순수하게 의학과 생명과학, 생명윤리와 성윤리의 차원에서 생명존중운동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시민단체로서 범국민적인 참여를 표방했지만, 실제로 참여하는 의사 수는 20명도 채 안 되었고 큰 행사를 추진하려면 외부 협력단체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프로라이프 의사회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불법낙태 시술병원 고발, 태아 살리기 범국민대회, 낙태근절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낙태법 양형기준 제정 청원, 낙태근절운동 선포 1주년 기념 심포지엄 등의 굵직한 행사와 활동을 해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말과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줄 때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불법낙태 시술병원 고발사건은 이 사회를 찬반양론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고발 건에 대한 사법부의 결정이 결국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게 되면서 ‘법정으로 가도 별 것이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었고 낙태정국도 원래의 불법낙태 개방상태로 환원하게 되었다.

 

결국 초기의 기세 좋았던 변화의 흐름이 사법당국의 무책임한 판결 때문에 끊겨버린 통탄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동료 의사 고발이라는 쇼크요법은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낙태 건수를 약 80%까지 줄일 정도로 매우 강력한 낙태억지력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1년이 지난 상태에서 남는 의문인, 우리나라의 낙태건수가 고발사건 이전과 비교하여 실제로 줄었는지, 산부인과에서 불법낙태 시술이 정말로 사라졌는지, 그리고 정부당국에서 적법한 단속이나 처벌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나의 예상은 이와 관련된 통계자료가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거의 변화가 없거나 미미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부터 우리가 나서서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논쟁보다는 실천으로, 말이나 생각만 하고 있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시점이다.

 

 

가톨릭교회 생명운동의 한계와 새로운 대안의 필요

 

가톨릭교회가 지난 30년간 이 나라의 생명운동을 견인해 온 선구자적 공로에 대해 이견을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교회가 낙태를 근절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음에도 사실상 눈에 띌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종교단체들은 낙태문제에서 생명원칙에 따른 일관된 주장을 펼쳐왔는데, 그 속에는 근본적인 생명원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주장에 대해서는 용납하지도, 타협하지도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반대편 그룹에서는 종교단체의 생명운동을 현실성이 결여된 이상적인 종교 활동의 하나로 바라보면서, 낙태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상대자로서의 당연한 위치마저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가톨릭과 함께 오래전부터 생명운동을 펼쳐온 개신교 계열의 낙태반대운동연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단체의 원칙적 주장에 대해서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낙태문제는 바로 생명이라는 최고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여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양보하게 되면 바로 태아생명의 희생으로 연결되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에 대한 원칙이 포기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생명운동 그룹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대안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생명운동세력이 바로 프로라이프 연합회라고 생각한다. 프로라이프 의사회, 변호사회, 교수회, 청년회가 참여하게 될 연합회는 소속 단체별로 각자의 전문성에 맞는 사업을 단체 간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추진해 나감으로써, 명실공히 이 나라의 생명운동의 중심에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중으로 프로라이프 여성회와 언론인회가 속속 결성이 되면, 모두가 한데 모여 한 목소리로 ‘낙태근절과 태아생명수호’를 외치게 될 것이다.

 

 

‘낙태를 줄이자!’라는 명제 하에 대화합 제안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수의 국민들이 우리의 반대편 세력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반대세력이 더 많다고 하여 그들의 주장이 더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반대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올바른 주장이라도 쉽사리 펼치기도 힘들고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도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 30여 년간 각자의 진영에서 자기논리에 갇힌 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오는 동안 이 사회 곳곳으로 침투한 낙태의 만연으로 말미암아 생명경시, 물질만능, 개인-이기주의, 생명현상의 인공조작, 가정 붕괴 등과 같은 어둠의 문화가 또아리를 틀고 자리 잡게 되었다. 더 이상 이런 대치상태를 지속할 까닭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런 상태에서는 양측 누구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점점 더 나쁜 상황으로 빠져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결구도를 깨고 나와 각자의 기본 입장 차이는 인정하되, 상대방 의견에 귀 기울이고 함께 공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와 반대 입장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 단체와 진보여성계도 최종목표는 달라도, 지금은 하나같이 낙태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에는 이런 ‘프로 초이스’ 단체들과 함께 대화하고 화합하여 반드시 공조의 장을 열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이 두 단체와의 공조여부가 낙태를 실제로 줄일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서로 간의 기본 입장은 다를지라도 공통분모가 되는 의견들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생명운동에서의 단계별 접근 원칙과 방법 - 유연성의 테크닉

 

다음은 교회와 프로라이프그룹이 ‘적과의 동침’을 위해 지켜야 할 원칙에 관한 나의 제안이다.

 

1. 양측 주장 중 의견이 서로 다른 부분을 굳이 꺼내서 논쟁하지 않는다.

2. 양측 주장 중에 공통된 의견을 찾아서 논의한다.

3. 논의는 국가 정부와 기업의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또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고통의 시간에 대비하여 국민을 계도한다.

 

이와 동시에 인내와 확신을 갖고 다음의 단계별 접근법을 시도한다.

 

1단계 : 사회 경제적 사유로 말미암은 낙태

? 영유아 보육시설, 임신 · 출산 지원금, 다자녀가정 지원, 워킹맘 권익보호 등

? 산모구명 - 임신 20주까지* / 허용 한계 - 임신 12주 이내 ; 현 모자보건법 유지

(*산모구명을 위한 의학적 사유로 인한 낙태 가능 주수)

 

2단계 : 미성년임신, 미혼임신, 기형아임신, 혼외임신으로 말미암은 낙태

? 미혼모 시설, 미혼모와 기형 - 장애아 가정 지원, 무상교육과 양육비, 친부양육 의무법

? 산모구명 - 임신 16주까지 / 허용 한계 - 임신 10주 이내 ; 허용 한계의 축소

 

3단계 : 강간, 근친간으로 말미암은 낙태

? 강간, 근친간의 사실 확인 절차 규정, 강간, 근친간 사실을 본인이 입증하는 법

? 산모구명 - 임신 12주 이내 / 허용 한계 - 임신 8주 이내 ; 모자보건법 폐지

 

다시 말해서 큰 결실을 얻고자 작은 것은 일시적으로 유보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단계별로 목표를 설정하여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한 부분에만 집중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입장이 백번 옳다고 하더라도 ‘모든 임신은 예외 없이 무조건 낳아야 하며 낙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천편일률적인 주장은 아무래도 전체주의적 냄새가 나며 상대방에게 말이 안 통하는 외골수의 느낌을 주기 십상이다.

 

이런 부분에서 국민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앞으로는 국민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찌 보면 편법으로 보이겠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진정으로 이땅에서 낙태가 줄어들 수 있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생명원칙의 훼손 없이 낙태근절이라는 목표를 향해 단계별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는 노력을 통해 실질적인 결실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 차희제 토마스 - 산부인과 전문의로 프로라이프 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운영위원이며 하늘스포츠의학연구소 소장이다. 성균관의대 삼성의료원 외래교수를 역임하였다.

 

[경향잡지, 2011년 2월호, 차희제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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