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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군에서 만난 사회교리 - 신학생인가 군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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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4-29 ㅣ No.823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군에서 만난 사회교리 - 신학생인가 군인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남자라면 모두 가 한번쯤 생각해야 할 문제는 바로 병역문제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병역기피는 사람들 사이에서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하고 또 그와 반대로 재외 국민 가운데 유명 인사들이 현역병으로 입대하려고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참 대견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늘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제는 거의 군대 이야기이다. 분단된 국가의 상황 속에서 모든 남성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명제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남자라면 거부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신학생에게도 예외 없는 군입대

 

나 역시 현역으로 군대란 곳에 다녀왔다. 1980년대 당시만 해도 대학교 1-2학년 때 ‘문무대 입소’와 ‘전방 입소’ 군사교육 제도가 있었기에 신학생이면서 동시에 대학생이었던 나는 이러한 병역 혜택(?) 덕분에 남들보다 3개월 먼저 전역할 수 있었다.

 

제대하던 날 고참 20여 명을 제치고 먼저 군문을 나서는 나를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고참병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명감을 갖고 자원입대를 했든, 아니면 병역 의무 때문에 징집되었든 간에 과거의 군 생활은 그리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를 못한다. 규율과 통제 속에서 단체생활을 강요하는 군 조직의 성격상, 그리고 그러한 규율과 통제를 유지하려고 이용되는 암묵적인 구타와 인권 유린은 지금도 나에게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시대가 바뀌고 군대가 민주화되어 더 이상 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많은 젊은이가 군에 입대하길 꺼린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남자들에게 군이란 피할 수 없는 그러나 피하고 싶은 조직임에는 틀림없다.

 

이따금 만나는 동창 신부들과의 자리에서 기억되는 내 모습은 육군 의장대 출신이란 점이다. 남들보다 큰 키와 안경을 쓰지 않은 덕분에 난 의장대 요원으로 훈련소에서 차출되었다. 훈련소에서는 동기 신학생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훈련이 끝나고 자대에 배치를 받으려고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소임지를 향하여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군생활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나는, 그렇게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사병으로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과연 신학생으로서 군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주일미사엔 제대로 참석할 수 있을까? 신학생인 내가 군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여러 가지 질문들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어슴푸레 새벽에 도착한 곳은 군사령부가 있던 후방의 대도시였다.

 

 

훈련 첫 주부터 시작된 조교의 욕설과 구타

 

이어지는 8주간의 의장 훈련은 내 인생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로 기억한다. 조교의 혹독한 훈련에 8명의 의장 훈련 동기생들 가운데 2명이 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훈련을 가장 힘들다고 말하지만 나 역시 8주간의 의장 훈련은 너무나 힘든 경험이었다. 더군다나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훈련기간 동안 계속된 조교의 욕설과 구타는 나를 점점 더 힘들게 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왜 그리도 욕을 하고 폭력을 행사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날아오는 M16 소총 개머리판과 군홧발, 얼차려를 하면서도 이 훈련만 끝나면 성당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다.

 

그러나 훈련 첫 주간부터 나는 주일미사에 갈 수가 없었다. 부대 내에 성당이 있어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나는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없었다. 훈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선임병들이 피곤하고 귀찮다는 이유 때문에 성당에 가지 못한 것이다. 훈련병은 선임병의 인솔 없이는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었다.

 

복장실 벽 위에 붙어있던 시계를 바라보면서 ‘지금쯤 미사를 시작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미사 시간이 지나갈 때 나는 복장실 한 구석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의장 훈련 첫 주간의 주일미사! 군에 입대하고 처음으로 미사를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간절한 주일미사 참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주일미사 참례에 간절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그 이후로 그렇게 절실하게 미사에 참례하려고 애쓰고 기도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 이후, 다행히도 신자였던 하사관 형제의 도움으로 전역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근무시간이 주일미사 시간에 겹치지 않도록 고참병들이 배려해 주었고 훈련기간 동안에는 그리 열심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자 고참병의 인솔로 주일미사마다 참례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3년 가까운 기간을 신학생이면서 동시에 군인으로 살면서 많은 혼란을 느꼈던 것 같다. 저녁 점호시간에 이어지는 얼차려 시간 동안 엄청나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내가 무엇 때문에 맞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맞아야만 하는지 속으로 속으로 곱씹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맞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곤 속으로 결심했다. 내가 훗날 고참병이 되면 부대 내의 구타를 없애버리겠다고….

 

그리고 나는 고참병이 되어서 단 한 차례도 후임병을 때리거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군인이었지만 나는 신학생이었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병장이 되어서는 점호시간 이후에 암암리에 행해지던 집합시간을 없앴다. 당시 군대 내에서도 구타 근절이란 화두 속에서 잘못된 악습들을 끊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내무반 내의 불의한 폭력들은 거의 없어졌다.

 

지금도 나는 의장대 요원으로서 군 복무를 한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군 생활 기간 동안 신학생으로서 단 한 차례도 후임병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군사 행위는 오로지 평화를 목적으로 해야

 

사제가 된 뒤 떠난 이탈리아 유학시절, 내가 살았던 이탈리아 공동체에도 신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처럼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

 

12개월이란 짧은 기간의 의무 복무 기간이 있었지만 사제직을 지망하는 그들은 그야말로 ‘신의 아들’이었다. 군대를 가지 않는 이들을 ‘신의 아들’이라고 농담하던 한국 상황과는 달리 서구의 여러 국가들에는 실제로 ‘신의 아들’이 있었다.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신학생들은 당연히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하는 것에서 제외되었고 사회 여러 기관에서 대체 복무 프로그램을 하였다.

 

그들은 군대를 다녀온 나를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했다. 군종신부로서 군인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신학생이 현역병으로 총을 잡고 군 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신학생으로 살아야 할지, 아니면 군인으로 살아야 할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수행했던 나의 군 복무 생활은 지금도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져준다. ‘과연 신학생이 일반사병으로 군 복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평화를 이 세상에 전파할 사람으로서 적군에게 총을 쏴야만 하는 군 복무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러한 나의 의문은 사회교리를 공부하면서 서서히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따르면 교회는 그 어떤 종류의 폭력도 인정하지 않는다. 폭력은 결코 적절한 대응이 아니며 그 자체로 악이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96항). 그래서 교도권은 전쟁의 야만성을 비난하고 전쟁에 대하여 새롭게 여기도록 요구한다. 다만 무력 사용의 정당성에 대하여서도 엄격한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제한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500항). 물론 한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 정당방위에 대한 요구는 국가 안에서 군대의 존재를 정당화시킨다.

 

그러므로 군대의 존재나 군 복무가 의무로 정해지는 것은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신중하게 결정함으로써 정당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군사 행위가 오로지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02항).

 

 

진정한 평화와 선교활동을 위해

 

군인들은 개인과 민족의 권리나 국제 인도주의 법의 규범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전적인 책임이 있으며, 한 국가의 안전과 자유를 수호하는 사람들로서 평화의 참된 가치에 기여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더군다나 교회는 “군 복무가 의무인 경우에도 양심에 따라 모든 종류의 무력 사용을 거부하거나 특정한 전쟁에 참가하는 것에 반대하여 원칙적으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대안적 형태의 복무를 받아들여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503항)고 주장함으로써 대안적 형태의 복무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으며, 양심적인 병역 거부자까지도 사회 통합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통해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 상황 속에서 신학생으로서 군대에 가는 것은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가르치고자 선교활동을 위해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학생은 군인이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신학생을 일반 사병으로만 군 복무를 시킨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군인이지만 동시에 군 복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신학생이기 때문이다. 군인이었지만 동시에 신학생이었던 나는 이렇게 군대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존재인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처럼 군대 안에서도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인 ‘사회교리’와 만났다.

 

* 황창희 알베르토 - 인천교구 신부. 인천 가톨릭 대학교 교수. 1997년에 사제품을 받고, 로마 알폰소 신학원에서 석사,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에서 사회교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인천 가톨릭 대학교 교학처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2월호, 황창희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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