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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박해시대 교우들의 연옥 생각 - 연옥 단련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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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8 ㅣ No.174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시대 교우들의 연옥 생각

 

연옥 단련에 대한 생각

 

 

박해시대 우리 신자들은 세상에 살면서도 윤리 도덕적으로 아무런 흠결이 없는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여러 흠결이 있게 마련이고, 이 흠결을 가진 채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가르침을 들어왔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고자 영혼의 흠집, 흠결을 정화하는 데가 연옥이며, 그 정화과정을 ‘연옥 단련’이란 말로 표현했다. 연옥은 영혼을 단련하는 공동체였으므로 이를 ‘단련의 교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연옥에서 단련을 받는 영혼이 곧 연령(煉靈)이었다.

 

 

박해시대의 교리서와 연옥에 대한 가르침

 

연옥에 관한 교리는 가톨릭 신앙의 특징적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이 죽은 뒤 가는 곳은 천당과 지옥이 있다. 천당은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며, 지옥은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데라면, 연옥은 다행히도 잠시간의 고통만을 당하고 천당에 오를 수 있는 곳으로 설명되었다.

 

연옥에 대한 교리는 1784년 교회창설 전후로 읽히던 한문 서학서를 통해서 조선에 전래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초기교회의 주요 ‘교리서’에서는 연옥에 대한 가르침이 생략되어 있다. 예를 들면 마테오 리치 신부가 지은 “천주실의”가 있다.

 

이 책은 동양의 한자 문명권 지식인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져준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조선 땅에서 천주교 신앙에 대한 연구를 촉발시켰다. 그러나 여기에는 연옥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한편 우리나라 초기 교회의 대표적 교리서인 정약종의 “주교요지”는 천당과 지옥의 존재에 관해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만 연옥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1801년 당시까지도 연옥에 관한 교리가 일반 신자뿐만 아니라 교회 지도자층에서도 그렇게 중요시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186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곧 1864년 다블뤼 주교가 간행한 일종의 교리서인 “신명초행”에서도 연옥에 관한 교리는 설명되지 않았다. 1864년에 간행된 “성교요리문답”에서도 공심판 · 사심판과 관련하여 천당과 지옥을 설명할 뿐 연옥에 관한 문답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박해시대의 기도서와 전례서에 나타난 연옥

 

초기교회 단계에서 전래된 ‘교리서’에서는 이처럼 연옥에 관한 언급을 생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같은 시대의 ‘기도서’에서는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를 수록하였다. 박해시대의 대표적 기도서는 “천주 성교 공과”가 있다. 이 책은 1784년 교회창설을 전후하여 전래되었고, 필사본으로 널리 이용되다가 1859년에 이르러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기도문 가운데는 신자들이 저녁에 바치는 기도인 ‘만과’(晩課)가 있다. 만과의 한 부분에는 새로 죽은 이가 있을 경우 “성모께 간절히 비나니 전차로 천주께 구하사, 새로 죽은 (아무)의 영혼이 연옥 형벌을 면하고 기리 평안함을 누리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게 했다. 또한 공과에서는 ‘추사이망(追思已亡) 첨례’ 곧 현재의 ‘위령의 날’에는 ‘연옥도문’을 바치게 했고, ‘죽은 부모를 위한 기도문’이나 죽은 이를 위한 ‘찬미경’을 통해서 연옥의 존재를 간접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박해시대 교회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연옥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책으로는 “성경직해”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주일과 주요 축일에 봉독하는 성경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묵상을 유도하던 일종의 전례서요 발췌본 성경이었다.

 

이 책은 1787년경부터 번역되기 시작해서 신자들의 공소 전례에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고, 1892년 이후에는 활판본으로 간행되어 널리 보급되고 있었다. 이 책의 ‘추사이망 첨례’ 부분에서는 연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제시되었다.

 

연옥의 고통은 영고옥(永苦獄) 곧 지옥의 고통과 동일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날 기한이 있음이 지옥의 고통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연옥의 고통을 피하려고 세상의 고통을 달게 참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1864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성교예규”에서는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일련의 예식과 기도를 기록하면서, 연옥과 연령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였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이처럼 교회 전례와 관련하여 연옥과 연령에 대한 교리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연옥에 관한 교리가 교리서를 통해서 신자들에게 직접 교육되기 시작한 때는 교회에 대한 공식적 박해가 끝난 18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물론 1882년에 간행된 “진교절요”와 같ㅌ은 교리서에는 종전처럼 연옥교리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1884년에 간행된 “성교 백문답”에서는 “봉교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어 그 죄를 온전히 깁지 못하였으면 죽은 후에 연옥에 가서 잠고(暫苦 : 잠시의 고통)를 받아 죄를 온전히 단련한 후에야 천당에 오르느니라.”고 연옥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1894년 르장드르 신부가 지은 “사후묵상”과 같은 교리서의 단계에 이르러 연옥은 본격적으로 설명되었다.

 

한편 박해시대 순교자들이 남긴 서한이나 조선인 성직자의 서한에서는 연옥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당시 신자들이 부르던 노래인 ‘천주가사’에서는 간혹 연옥에 대한 언급이 출현한다.

 

곧 ‘사향가’(思鄕歌)에서는 “우리 무리 봉교인도 보속죄과 다 못하면 / 심판을 받은 후에 연옥불에 들어가서 / 연옥 보속 다한 후에 천당문에 오르거든 / 하물며 세속사람 영고(永苦) 지옥 오죽하랴.”라고 노래했다.

 

천주가사 ‘피악수선가’에서는 “삼종으로 양식 삼고, 모든 성경 곳집 삼고 / 진복팔단 병풍하고 연옥도문 자리하며”라고 노래하여, 당시 신자들에게 연옥도문은 산상수훈과 함께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중요한 기도로 인식되었다.

 

 

남은 말

 

박해시대 신자들은 천당의 영원한 복락과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잘 알았다. 그들이 생각한 영원이란 시간이 존재하되 흐르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영락과 영고는 천당과 지옥의 몫이었다. 그러나 연옥은 시간이 흐르는 곳이었으며, 연옥의 단련은 한시적이었다.

 

이처럼 박해시대 신자들은 천당과 지옥 그리고 연옥을 특정한 지역에 있는 것으로 인식한 듯하다. 이 연옥불의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위주치명(爲主致命)한 순교자뿐이다.

 

순교자들은 곧바로 천당에 오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순교가 눈앞에 있던 박해시대의 신자들은 ‘직천당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개항 이후 신앙의 자유가 관철되고 바로 천당에 갈 수 있는 순교의 기회가 없어지면서 연옥의 존재가 더욱 크게 인식되었다고 본다. 그러기에 개항기 이후의 단계에 이르러 교리서나 신심 묵상서와 전례서 등에서 모두 연옥에 관한 기록이 고루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12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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