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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 소 브뤼기에르 주교 - 한 선교사가 남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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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07 ㅣ No.142

한국교회사 열두 장면 -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 소 브뤼기에르 주교

 

한 선교사가 남긴 감동의 편지

 

 

조선교회는 1801년 박해를 당한 이후 얼마 아니 가서 교회재건 운동을 일으켰다. 살아남은 몇몇 신자들은 다시 모여서 북경 주교와 교황에게 조선의 사정을 보고하고,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다. 그들은 1811년에 이와 같은 편지를 보냈고, 1825년에는 유진길의 이름으로 된 간절한 편지를 보냈다. 한문으로 작성된 조선 신자들의 편지는 라틴어로 번역되어 1827년에야 로마 교황청의 포교성에 전달되었다.

 

이 편지를 받은 교황과 포교성의 추기경들은 몹시 감동했다. 조선 신자들이 보낸 이 편지를 읽고 감격한 또 한 명의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조선 신자들의 편지에 벅찬 감동을 느꼈고, 자신이 스스로 조선 선교사를 자원하기까지 했다.

 

조선 신자와 그 선교사는 서로 영혼이 통할 수 있었던 한 형제였기 때문이다. 그 선교사의 이름은 브뤼기에르였다. 그는 1829년 5월 19일 아래와 같은 편지를 썼다.

 

 

한 선교사의 편지

 

“조선에 파견되었던 신부가 순교한 뒤에는 저 나라의 신자들이 천주교의 구원을 도무지 못 받고 있습니다. 저 열심한 신입교우들의 사절이 해마다 북경 주교를 찾아와서는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간청합니다. … 그들은 이런 사정을 로마에도 호소하였습니다. 내가 들은 것이 틀림없다면 이번 편지는 두 번째 편지입니다. 어째서 유럽 전체에 이 불운한 신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신부 한 사람이 아직도 나서지 않는단 말입니까?

 

… 다른 포교지에도 급한 일은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저 불쌍한 조선 사람들이 요청하는 것만큼 급한 일은 없습니다. 도움이 없이는 그 불쌍한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없는 불행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것까지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애덕의 요구입니다. … 다른 선교지에서 신부 한두 명 쯤 줄어든다 하더라도 우리 포교지 전체로 볼 때에는 그리 큰 공백상태를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림받은 포교지에서 볼 때에는 신부 두 명이 말할 수 없는 은혜가 될 것입니다.

 

… 신덕의 빛이 한 순간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이 그들을 그전보다도 더 캄캄한 암흑 속에 몰아넣기 위한 것뿐이었습니까. 말하자면 자기의 힘으로 이루어져서 시초부터 용감한 순교자와 순결한 동정녀들을 그렇게도 많이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 사도시대에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한 것을 바쳤던 것과 비길 만한 일을 한 저 새로운 교회, 귀양살이와 종살이를 하고 재산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도 망나니들의 도끼날 밑에서 아직 복음을 전하고 신입교우의 수효를 끝없이 불려가는 용감한 증거자들을 아직도 수많이 가지고 있는 저 교회, 그래 저 교회가 버림을 받아야 합니까.

 

… 여러분이 포교성의 제안을 받아들이시면 우리의 관심을 끄는 저 교회가 살 것이고 어쩌면 거기서부터 만주의 넓은 지역에 신앙이 번져나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선이 일본과 이웃하여 있고 이 두 나라 사이에 행하여지는 교류라든지 풍속과 성격이 같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조선 교우들이 불운한 일본 사람들 및 북해도나 기타 지방 사람들의 의지가 되고 새로운 사도가 될 희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교구의 설정과 파리외방전교회

 

브뤼기에르가 이 편지를 쓰던 당시 조선 교회는 북경교구 관할이었다. 그러나 북경교구의 재정상황은 상당히 궁핍했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놓여있었다. 이에 교황청에서는 조선에 별도의 교구를 설정하여 적절한 선교단체에 위임하고자 했다. 먼저 교황청에서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교황청의 이 제안에 대해 파리외방전교회 지도자들은 분명히 수락하지를 않았다. 그들은 선교사 부족과 재정상 어렵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조선이라는 새로운 선교지를 맡기에 여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포교성에 설명하였다.

 

이 상황에서 포교성은 중국 마카오에 있던 포교성 대표부에 편지를 보내어 조선 선교의 가능성을 거듭 확인했다. 그리고 포교지 설치를 돕고자 필요한 초기비용을 부담하겠노라고 제안하였다. 이에 파리외방전교회 지도자들은 각처에 있던 선교사들에게 교황청의 뜻을 알리며 조선 선교에 관한 문제를 협의했다.

 

바로 이와 같은 전교회 본부의 편지에 가장 적극 응답한 인물이 브뤼기에르 신부였다. 그는 당시 오늘날 타일랜드로 불리는 샴 왕국에서 선교하고 있었고, 보좌주교로 성성(成聖)될 참이었다. 원래 그는 샴 교구의 보좌주교로 선임된 일을 마뜩치 않게 생각하고 주교서품을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주교로 서품되어 조선에 나가야 조선교구가 설립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주교품을 수락했다. 그는 조선신자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였다.

 

교황청에서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지원에 힘입어 1831년 9월 9일자 교황 친서를 통해서 조선을 교구로 설정했다. 그리고 같은 날짜로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감목대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는 자신들이 조선 선교를 하기에는 힘이 부친다는 판단을 유지하였다. 외방전교회 회원이었던 그는 전교회 본부의 공식결정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교황청의 결정에 따라 조선에 가기로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전교회 본부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 처지에 잠시 놓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브뤼기에르 주교는 곧 자신의 새로운 선교지인 조선에 입국하고자 ‘돈 한 푼도 없이 중국인 청년 한 명을 데리고’ 원래 있던 샴 왕국을 떠났다. 그는 마닐라를 거쳐 일단은 중국 선교의 중심지인 마카오로 갔다. 이때 마카오에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선교에 관한 전교회의 최종 결정이 내리기 전이었으므로 조선 선교지를 향해 가던 그는 마카오에서도 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가 마카오에서 머물던 곳은 교황청 포교성 대표부 건물이었다.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는 중국 대륙을 곧추 질러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에까지 접근해 갈 수 있었다. 그의 여정 앞에는 모든 어려움이 가로 놓여 있었지만, 그는 이를 조선인의 영혼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극복해 갔다.

 

그러나 장기간의 무리한 여행에 지친 그는 자신의 선교지를 눈앞에 두고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해야 했다. 그는 1835년 10월 20일 마가자(馬架子), 곧 펠리구(Pelikeou)로 불리는 서부 만주의 한 교우촌에 도착했지만, 누적된 과로로 갑자기 병을 얻었다. 그는 그를 맞으러 온 조선 신자들을 미처 만나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당시 그는 43세의 한창나이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조선교구의 설정은 아마도 한참 더 늦어졌을 것이다.

 

 

남은 말

 

파리외방전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수습하고자 했고, 조선 선교에 대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열망을 인정하여 조선 교구를 직접 맡아 선교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그리고 샤스땅 신부가 조선 선교를 자원했다. 그들은 선임자인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지를 이어받아 조선에서 열정적으로 포교에 종사했다. 그리고 1839년의 박해 때에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이 조선에서 선교할 수 있는 기틀을 놓은 사람은 바로 브뤼기에르였다. 그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교구에 입국조차 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모든 소망은 다 채워져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미처 이루지 못한 꿈도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가 못 이룬 조선 선교의 꿈은 그의 정신적 후예들이 이어받았다. 그 꿈은 지금도 계속될 수 있으니, 브뤼기에르가 그것을 완성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감동의 편지는 아직도 살아서 우리에게 많은 말을 전해주고 있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7년 8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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