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08-02-07.....설날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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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8-02-07 ㅣ No.893

설 날 [0101-2]

민수기 6,22-27          야고보 4,13ㄴ-15        루카 12,35-40

2008. 2. 7. (목) 무악재

주제 : 우리 삶의 목적

오늘은 설날입니다. 한해의 시작으로 기억하는 날입니다.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한 해의 시작을 두 번 한다고 해서 문제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 문화의 풍습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공격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자연의 여러 가지 사물들을 쥐어짜는 서양식의 산업화와 힘을 먼저 생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오늘 기억하는 설날은 이중과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느끼는 것이 모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설날은 음력을 따라갑니다. 언제부턴가 정말 신기하게 느낀 것의 하나가, 하늘의 조화는 음력을 따라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날씨가 덥거나 차가움도 지구에서 꽤나 많이 떨어져있는 달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표현은 바닷물의 높이를 말하는 ‘사리<음력 매달 보름과 그믐날, 조수가 가장 높이 들어오는 때. [준말]사리>와 조금<음력 매달 초여드레와 스무사흘《조수가 가장 낮을 때를 일컬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에서 38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고 하는 것과 우리 삶의 관련이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농경민족에서 바라본 세상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주변의 몇몇 나라만 기억하는 것이 이 설날입니다. 공격적인 본성을 강조하는 서양이나 일본은 이러한 설날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일들 가운데 우리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은 남들이 알려주지 않아도 정확하게 찾아서 잘합니다. 그러나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세상의 삶을 보람 있게 살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목숨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상의 다른 의미 있는 일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시작하고 나서, 평상시에는 하지 않는 특별한 예절을 한 가지 했습니다. 분향예절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나눌 준비를 하는 제대 앞에 우리의 방식대로 따로 차려진 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오늘 기억하는 분들, 우리보다 세상을 먼저 살았고 이제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다리고 있을, 우리와 관련된 분들의 영혼을 기억하면서 분향을 했습니다. 우리 신앙에서 사용하는 분향은, 우리의 기도를 담아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먼저 사셨던 분들이 세상 삶을 통하여 하느님 앞에 다가설 수 있는 자격을 준비하는데, 혹시라도 하느님의 축복에 참여하기에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삶에서 만들어낼 덕행을 그분들에게 양보하여,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해달라는 청원과 다짐도 있습니다.

 

이러한 청원을 우리 신앙의 용어로는 ‘통공(通功)’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맺는 좋은 열매가 우리의 기도와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영혼들에게 전달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사람은 역경에서 서로 돕고 삽니다. 사람을 뺀 동물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도움이 얼마나 힘이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되는지는 실제로 체험하고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오늘 미사에서 함께 기억하는 영혼들에게 우리의 도움이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로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는 믿고 삽니다. 바로 그 믿음이 우리 삶을 바꾸는 것이고, 우리가 기억하는 영혼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말씀으로 들은 내용도 통공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인과 종을 이야기하는 표현이 맘에 들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사람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매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의 한계를 구별해서 산다면 분명히 도움은 될 것입니다. 문지기의 역할은 문을 열고 닫는데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한계를 분명히 생각하고 산다면, 민수기 독서에 나온 것처럼, 합당한 축복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실 축복에 참여하겠다는 의도로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러한 기쁨과 행복은 우리가 삶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당연한 결실이라는 말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농경민족의 축제인 설날,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의 첫 순간부터도 하느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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