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08-02-06.....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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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8-02-06 ㅣ No.892

재의 수요일

요엘 2,12-182코린토 5,20-6,2마태오 6,1-6.16-18

2008. 2. 6. 무악재 (오전 6시)

주제 :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기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는 세상에 살던 존재들이 그 생명을 다 마친 다음에 남길 수 있는 부산물입니다. 그 재에는 아무런 영양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늘 재의 수요일에는 이 재를 우리의 이마에 얹는 예절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영양가가 조금도 없는 바로 그것을 우리 신앙에서는 이마에 얹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70년 혹은 80년이나 90년을 삽니다. 반드시 평균수명대로만 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남기고 갈 것은 참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남기면 우리는 인생에서 성공했다는 소리를 스스로 하거나 남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정답을 남들이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그렇게 알려주는 것들이 내 삶에 정말로 대답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정확한 대답이 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신앙에서 그 의미를 찾아봐야 할 일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습니다. 하느님은 세상 창조 때에 인간을 흙에서 만들었다고 창세기는 적습니다. 그리고 집회서에는 그 첫 인간이었던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강조의 표현도 나옵니다. 흙에서 온 인간이 세상을 다 산 뒤에 남기는 재를 이마에 얹는다는 것은 삶의 시작과 끝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에서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세상에 사는 우리가 좀처럼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설명을 가만히 듣다보면,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냐고 쉽게 반발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소중한 목숨을 자꾸만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재에 비교하여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느냐고 반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반발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구별하고 살아야 할 것은 있습니다.

 

목숨보다는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혹시 목숨이나 생명이나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그 어떤 말을 동원하더라도 우리 삶의 의미를 깨닫지는 못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 의미를 깨닫고 기를 바랄 일은 아닙니다. 이 자리에 와 앉아 있는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을 것이냐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것도 별 의미 없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느님에게서 축복을 받는데 그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구경했다고 해서 나에게도 그 축복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축복은 다른 사람의 것이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시는 축복은 내 삶에 도움이 될 뿐입니다.

 

우리가 축복에 다가서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는 ‘자선(charity)과 기도(prayer) 그리고 단식(fast)의 세 가지 실천방법이 나옵니다만, 이 내용을 대하면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선 세 가지 삶의 방법을 실천했다고 해서 하느님의 축복에 저절로 다가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따로 있는 것이고,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는 실천 몇 가지로 하느님의 자비나 사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얻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로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는 일이 필요합니다.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내 잘못을 돌이키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서는 지름길이라고 요엘예언서는 말씀하십니다. 요엘 예언자께서 그렇게 말씀하신지 2400년이 지난 다음에 사는 우리는 지나치게 똑똑해져서 하느님의 뜻을 우리 생각대로 재단하려고 합니다. 그렇게만 살지 않는다면 참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에 참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 시작은 다음 순간에 이어질........예식이고, 재를 우리의 이마에 얹으며 삶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알아야한다’는 말씀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잠시 우리의 영혼에 새길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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