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08-02-03.....연중 4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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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8-02-03 ㅣ No.891

연중 제 4 주일 ( 가해 )

스바니야 2,3; 3,12-13 1고린 1,26-31 마태 5,1-12ㄱ

2008. 2. 3. 무악재

주제 : 행복을 친구로 삼기

엊그제 시작한 듯한데, 어느새 한 달을 훌쩍 보내고, 두 번째 달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느냐고 물어보아도 들을 대답은 없지만,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은 누구나 비슷한 느낌일 것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공통적인 목표를 이야기하라면, 행복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얻거나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고 아니면 영원히 꿈으로만 머물고 말 것인지 그 길이 달라질 것입니다.

 

어제까지 보름간에 걸쳐, 초등학교 어린이들 첫영성체를 위한 교리를 했습니다. 교리를 하면서 느낀 것 한 가지는 애들이 참 대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참여한 초등학생들이 기특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3시간씩, 거의 보름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평소에 다니던 학원시간도 옮기면서까지, 그 시간을 채우려고 결정한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크게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바로 이런 자세들이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옵니다. 세상살이에 그 정도로 순수한 마음일 수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행복에 우리는 한걸음 더 가까이 머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모습이나 모양을 행복으로 생각할까요?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건강일 것입니다. 모두가 건강하다면 우리는 더 바랄 것 없는 행복에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건강에 대한 것이 바라는 만큼 충족됐다면 우리의 바람은 다른 쪽으로 좀 더 크게 움직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살고 있는 집의 크기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6평짜리 무허가건물에 사는 할머니보다 32평이나 48평 혹은 그보다 더 넓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행복의 기준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는 행복은 그 상태로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자세가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바라보는 세상의 기준으로만 행복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행복에 영원히 도착하지도 못하고, 행복이라고 여길 녀석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어서 빈 공간을 휘젓다가 끝내고 말 거라는 얘기입니다.

 

행복이라는 말은 추상명사(抽象名詞, an abstract noun, 실질 명사 중,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명사, )로 사전을 설명합니다. 추상명사라는 말은, 사람이 보는 세상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행복을 이루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참 멋있게 그 행복을 표현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을 포함하여, 여덟 가지 자세를 말씀하시면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기준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행복으로 봐 줄 수도 없고, 절대로 행복에 가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그것은 행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행복이나 행복한 사람에 대한 구별은 세상에서 우리가 대하는 모습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은 우리가 많이 갖고 큰 것을 갖는데서 시작한다고 말하기 쉽습니다만, 하느님의 기준을 따르는 행복에 참여하려면 ‘겸손한 것, 세상의 비천한 것들과 천대받는 것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서 시작한다고 독서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렇게 행복을 찾아가는 기준은 2500년 전이나, 2000년 전부터 우리에게 들려오기 시작한 삶의 지혜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기준을 처음 들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내 것으로 삼느냐에 따라 내 삶에 이루어질 축복은 달라지는 법입니다. 올바른 자세가 어떤 것이겠는지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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