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08-01-27.....연중 3 주일 가해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8-01-26 ㅣ No.890

연중 3 주일 (가해)

이사야 8,23ㄴ-9,3                1고린 1,10-13.17            마태 4,12-23

2008. 1. 27. 무악재

주제 : 하느님의 선택

찬미 예수님.

새롭게 시작한 2008년도 벌써 네 번째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연초에 세운 계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물을 것은 아닙니다만, 행복하게 잘 지내고 계시지요? 현실은 다르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잘 지내고 있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암시라도 주어야 정말 우리는 삶에서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행복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행복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그리고 행복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를 안다면, 그 사정에서 도망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유행가 가사에 ‘행복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대답이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묻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아닐 듯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이고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대답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성공을 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집 없던 사람이 집을 사는 것일까요? 좁은 집을 갖고 있던 사람이 그 집의 넓이를 좀 더 늘려가는 것을 말하겠습니까? 건강하지 못하던 사람이 건강을 회복하는 것일까요? 이런 것들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계속되는 행복은 아닙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배워야 할 일입니다. 행복은 ‘작은 것을 무시하지 않는데’ 있다고 알아들을 말씀이 독서와 복음에는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생명이나 행복에 함께 하려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그 수고를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잘못 생각하면 그 일은 이론으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볼 것입니다. 하지만 이론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현실로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말도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가진 무궁무진한 능력입니다.

  이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왔다가, 역사 무대에서 뒤편으로 세례자 요한이 사라지자, 예수님은 갈릴래아로 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첫 번째 큰소리로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즈불룬과 납탈리 땅’이었다고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는 즈불룬과 납탈리를 얘기해봐야, 듣고서 잊어버리기 쉬운 이름의 하나에 불과할 것입니다. 의미를 깨닫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즈불룬과 납탈리 지역의 크기를 알아낼 재간이 없지만, 이사악의 손자요, 이스라엘의 아들들로 등장하는 즈불룬과 납탈리 후손들이 자차지한 땅은 갈릴레아 호숫가를 벗어난 서쪽과 북쪽편의 비옥하지도 못하고 넓지도 않은 땅이었습니다. 요즘의 판단으로 치면 보잘것없는 땅에 불과했다는 것인데, 그곳에서 예수님은 거기에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으로 말입니다. 그곳이 예수님의 복된 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그곳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곳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지역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듯합니다.

  내가 사는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은 곳이라고 해서 하느님이 우리를 그냥 찾아오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외형적인 조건이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하느님의 손길을 간절히 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처럼 행복한 곳이 되게 하려면, 코린토 교회공동체에게 보낸 바오로사도의 편지에서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서로 갈라지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낫다고 우기면 무엇이 달라질 것이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못하면 이 세상에서 그만 살고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크고 작음을 먼저 따지고, 권력의 많고 적음을 먼저 따지는 세상살이라면 그 조건을 채우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공동체에 살고 있다는 조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은 조건의 시작일 뿐이고, 그 조건을 이용하여, 우리가 살고, 내가 사는 곳을 하느님의 나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자세로 말입니다. 잠시 도우심을 청할 일입니다.



30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