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2008-01-20.....연중 2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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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8-01-20 ㅣ No.888

연중 제 2 주일 (가해)

이사 49,3.5-6 1코린 1,1-3 요한 1,29-34

2008. 1. 20. 무악재

주제 : 내가 할 일

찬미 예수님!!

사람이 현실에서 자신의 삶이 어떤 모양을 갖고 있는지, 내 삶의 위치가 하느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정확하게 보기란 힘든 일입니다. 그 사정을 보는 것은 내 얼굴이 얼마나 잘 생겼는지, 혹은 나에게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살피는 것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하기 쉬운 말로, 나는 객관적이고 아주 공정하게 본다고 말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보고 판단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이 소리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진리를 새삼 강조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아는 것이 힘들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을 아는 것이 힘들다는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내 삶으로는 어떻게 드러나느냐가 더 힘들다는 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일, 예수님의 세례를 기억하는 축일에 우리는 세례의 의미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햐 하겠는지, 그리고 내가 신앙인으로 살게 되는 시작점이 된 세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말씀에는 인생에서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의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는 약간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큰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잘못된 선택을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자꾸만 멀어지게 만드는 ‘죄를 뽑아내어 짊어지고 광야로 사라지는 어린양’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레위기 16장에 나오는 속죄 이야기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왜 예수님을 구약시대의 그런 의미를 현실에 실현할 어린양으로 바라보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례자요한이 따로 공부를 해서 하느님에 대한 사정을 알게 된 것일까요? 그 실제상황은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가 짐작하자면 그러한 사실은 그가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이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이라고 밝혔던 세례자 요한은 그렇게 믿음을 고백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집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 요한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헤로데의 손에 죽을 때뿐입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참 마음 편하게 역사 뒤편으로 물러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살아있으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내 존재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 일을 우리는 사랑이요, 지혜를 전수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똑같은 것을 젊은 사람들은 간섭이라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이리저리 부딪치는 파열음이 많이 들리는 것입니다.

 

어찌됐든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아내고 그대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세례자요한의 경우처럼 하느님의 지혜와 계시를 통해서 알아듣고 행동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경우처럼이 아니라면, 이사야 예언서 독서 말씀으로 들은 데서 나오는 것처럼, ‘주님의 종’으로서 세상의 만백성을 향하여 ‘빛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사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신앙의 빛을 내 몸으로 드러내면, 얻을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이고, 내 몸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만이 세상에 책임을 진 사람들은 아닙니다. 세상의 일을 구별한다면, 권리에는 반드시 의무도 따르게 돼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권리만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의무만 있는 일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나는 권리만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의무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지금 내 삶이 오로지 의무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고 여긴다면 그 사람도 권리가 선물로 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실천하고 살아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것이 됐든지, 그 사명을 실천할 첫 번째 조건은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아는 것이며, 내 몸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 준비돼야 할 일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세상의 현실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도 비슷하게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을 알려주고, 뒤로 물러설 줄 알았던 세례자 요한의 본보기를 잠시 묵상하고 우리도 삶에서 그 모습을 본받을 수 있도록 묵상하고, 도움을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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