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연중 34 주간 월요일.....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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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11-26 ㅣ No.875

 

연중 34 주간 월요일 - 짝수 해       

              묵시록 14,1-3.4ㄴ-5                루카 21,1-4

      2006. 11. 27. 무악재

주제 : 하느님 찬미

찬미예수님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기고 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개인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드러난 조건을 그렇게 만족시킬 수 있다면, 사람은 그 태도를 쉽게 바꿀 것입니다.  모든 것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에 비교하여, 우리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는 사람들이 쉽사리 마음을 바꾸지 않는 분야에 속합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서 상처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하느님을 향하여 한번 묶인 마음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종로에서 뺨을 맞고 한강에 가서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인데, 말로 그 과정을 풀려고 해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를 굳이 말한다면, 하느님 때문에 현재의 일이 실제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지만, 신앙을 뒷전으로 밀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독서에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들의 숫자로 십사만사천 명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겉만 바라본다면, 중요하지 않은 숫자에 관심을 갖고 말 것이겠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그 숫자의 크기나 내가 그 숫자에 포함될 것인지 여부가 아니라, 그렇게 하느님을 기리고 찬미할 수 자세를 갖추는 삶을 지금 현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바라보셨던 예수님이 판단하신 내용을 전하는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다익선이라고 돈이 많은 것을 좋게 보고 중요한 일로 취급하는 것은 세상의 시각이나 판단인데 비해서, 예수님은 그 과부가 자기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는 차원에서 그녀의 삶이 남다른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자세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판단해서 할 일을 다 한 다음에, 그렇게 하고 난 남는 시간에 하느님을 위한 시간을 내겠다고 하는 것은 인간중심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람의 일을 앞세우고 그 다음에 하느님의 일을 하느냐, 아니면 그 순서를 바꾸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봉헌한 물리적인 시간이 같다고 하더라도 행동의 순서에 따라, 하느님을 대하는 자세나 삶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치는 때에 생각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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