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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민족화해를 위한 한국 가톨릭 교회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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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84

민족 화해를 위한 한국 가톨릭 교회의 노력

 

 

1. 시대의 징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과 정상 회담을 통한 '자주적 민족 문제 해결'의 길 개척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새로운 '시대의 징표'임이 분명하다. '자주'라는 용어에 대한 편향된 해석과 냉전적 사고에서 오는 정서적 거부감 때문에 상당한 논란을 빚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새 지평을 열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통일의 길이다. 한국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교회도 스스로의 현실을 진단하고 새로이 주어지는 '시대의 징표'를 판별하여 이에 알맞은 '통일의 길'을 새롭게 그리고 자주적으로 열어 나가야 한다.

 

대한 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국방 위원장 김정일이 서로 합의하여 서명 발표한 '6 · 15 남북 공동 선언'은 한반도 평화의 새 이정표이다. 공동 선언을 위해 남과 북이 상대방의 국호를 정식으로 인정 사용한 것은 상호 실체 인정의 명백한 표시이자 새로운 관계 정립의 새 출발을 뜻한다. 남북 관계는 이제 공존공영을 위한 파트너쉽 형성 가능성을 시험하는 새로운 실험 궤도에 접어든 것이다.

 

'6 · 15 남북 공동 선언'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삼아 앞으로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 통일을 이루어 나갈 의지를 함께 모았음을 천명하였다. 남북의 통치권자가 통치권의 차원에서 상호 이해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단독 회담과 승용차 동승 시간을 이용하여 개별적이고 사적인 시간을 만들어 인격적인 만남과 이를 통한 인간적 신뢰 형성이 가능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적인 문화 풍토에서 이런 형식의 시간과 여백을 마련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통치권자의 신뢰 여부가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남북한은 서로 통치권의 차원에서 배타적인 이익 추구를 위해 남북 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때로는 조작하며 이용해 왔다. 때문에 상호 신뢰 형성이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남북 정상들은 그 순간 개인적 차원의 신뢰 확인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과거 통치권 차원에서 빚어진 잘못과 불신의 과거사에 대해 공동 고백하며 아울러 깊은 참회의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대희년의 참 뜻이기도 하다.

 

어떻든 '6 · 15 남북 공동 선언'으로 남북 관계는 명실상부한 실용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치적 명분 싸움을 거두고, 공존공영을 위한 실용성 추구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아마도 남북 공동 선언 이후의 실용주의는 '포용적 실용주의'를 뜻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 또는 포용 정책이 실효를 거둔 것이기도 하다. 포용적 실용주의는 마치 어린이가 개울 건너편에서 물살이 센 징검다리를 건너오지 못하고 있을 때, 건너오라고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어린이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고 함께 징검다리를 건너오는 실천적 태도를 포함한다.

 

한국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역시 시대의 징표를 잘 읽어야 한다. 남북 관계가 실용주의로 변화하고 있는데 고답적인 원칙론에만 매달려 있다면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지고 만다. 한국 교회도 북한 교회에 대해 '포용적 실용주의'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북한에 교회가 있느냐 없느냐 라는 실체론적 해석이나 용어의 해명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접근을 통해 실체론적 근거를 구체화하는 현실적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뭐가 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물살이 센 징검다리를 건너오라고 마냥 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서 손을 잡고 인도해 와야 하는 것이다. 

 

 

2. '이 땅에 빛을' 

 

한국 천주교회가 민족 화해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떠올리기 시작한 것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이하면서부터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1984년에 맞이할 200주년을 준비하면서 '갈라진 땅, 또 하나의 반쪽'인 민족 공동체와 그곳에 있어야 할 북한 교회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주년 기념 사업 위원회는 '이 땅에 빛을'을 구호로 제정하고, '이 땅'이 '갈라진 땅'이라는 점과 분단 이전의 한국 교회가 공유해 온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당시 200주년 기념 사업 위원회 위원장 김남수 주교는 1983년 6월 25일에 발표한 '북한 교회에 드리는 메시지'에서 한국 교회가 북한 교회를 잊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아픔을 함께 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의 기념제를 경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소외시킨 가운데 이 기념제가 경축되고 있지 않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듯이 우리의 마음은 여러분에게 가 있습니다." 김남수 주교의 이 같은 호소는 당시의 사정에 비추어볼 때 비록 북한 교회가 '침묵의 교회'로 변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북한에 남아 있을 신자들을 북한 교회의 백성으로 보면서 200주년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한국 교회의 인식이 이처럼 변화를 가져온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교회는 북한 교회가 북한 공산 정권에게 수난을 받은 아픈 기억에 매몰되어 있었고, "북한 교우들의 영혼을 구해 줄 수 있는 계기가 속히 오기를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함흥교구장 서리였던 비테를리 이 몬시뇰은 1966년 8월에 "북한 수복의 준비를 서둘자."라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태도는 1972년 7 · 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 했었다. 이 때문에 당시 교회 언론은 7 · 4 남북 공동 성명과 같은 중대사에 대해 주교단의 입장 천명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교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남북 관계 변화에 대응하는 분명한 사목적 입장을 나타내 보일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주년을 계기로 출범한 북한 선교부는 1985년에 주교회의 북한 선교 위원회로 공식 기구화하였고, 해외 임원으로 미국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고종옥 신부의 방북(1984년) 등 직접적인 대북 접촉을 시도하여 새로운 진로 모색에 임하였다. 그 결과 1987년 6월 바티칸 대표단의 방북, 1988년 6월 조선 천주교인 협회 결성(평양), 같은 해 10월 평양 장충 성당 건립 등 빠른 변화가 이어졌다. 이와 함께 북한과 바티칸의 관계 정상화 노력이 펼쳐졌고, 1989년 서울 세계 성체 대회 이전에 평양교구장 서리인 김수환 추기경의 방북을 성사시켜 교황의 방북까지 이어 보려는 노력이 조심스럽게 진행되었지만, 문익환 목사, 서경원, 임수경, 문규현 신부 둥의 방북 충격으로 남북 관계가 위축되어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이런 가운데 주교회의 북한 선교 위원회는 1988년 5월에 통일 사목 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를 창립,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고, 학술 연구 논총을 비롯한 간행물들을 발간하여 통일 사목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는 한편 민족적 화해 협력을 위해 교회가 할 역할 규명 등 다각적인 접근 노력을 펼치게 된다. 북한 선교 위원회는 1999년에 민족 화해 위원회로 그 명칭을 변경하기까지 꾸준히 기도 운동과 계몽 운동을 전개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메시지 등을 통해 민족적 화해 협력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여 왔다. 특히 북한 선교 위원회가 1995년에 분단 50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하여]는 일종의 사목 교서로서 한국 교회의 총체적인 인식 구조를 전향적으로 집약하여 미래적인 전망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3. 민족 화해 위원회 

 

서울대교구는 1995년에 민족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여 한국 교회의 통일 노력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서울대교구장인 동시에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던 김수환 추기경이 "광복 50주년을 맞는 1995년에 북한 신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라고 공식적으로 방북 희망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서울대교구는 교구장의 이와 같은 염원을 실현시키고,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교회의 노력을 가시화하기 위해 3월 1일 민족 화해 위원회를 교구 내 기구로 공식 발족시켰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민화위 초대 위원장 최창무 주교는 명동 대성당에서 매주 화요일에 민족 화해 미사를 봉헌하고, 남북한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참회와 회개 확산을 위해 단식 기도와 민족 화해 헌금 실시 방안 등을 마련하였으며, 10월 4일에는 민족 화해 학교를 개설하여 본격적인 인력 양성에 임하였다.

 

서울대교구 민화위는 1995년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뉴욕에서 북한 조선 천주교인 협회(1998년 12월부터 조선 카톨릭교 협회로 명칭이 변경됨)와 공식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되고, 이 모임으로 인해 남북한 교회는 교계적인 차원의 공식 접촉을 갖기 시작하여 실질적인 관계 모색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서울대교구 민화위는 미국 뉴욕에서의 첫 공식 만남 이후 1년 8개월 만인 1997년 6월초에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한 천주교인의 직접 대화 모임을 갖고, 1998년 5월 마침내 최창무 주교의 사목적 북한 방문의 길을 열기에 이르렀다.

 

사목 방문단은 최창무 주교를 비롯하여 오태순 신부, 이기헌 신부, 류덕희 평협 회장, 조광 교수, 이윤자, 이강렬 등 7명으로 구성되었다. 최창무 주교는 평양 도착 후 공항에서 평양교구장 서리인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받들어 오게 되었다는 내용의 도착 성명을 발표하여 사목적 방문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최창무 주교는 5월 17일에 평양 장충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여 교구장을 대리한 사목적 방문의 목적을 수행하였다. 방문단 일행은 103위 한국 순교 성인 가운데 평양 지역과 관련된 유정률(베드로, 1835-1866년) 성인의 유적지인 평양시 역포구역 대현리 평양 과수 농장 일대를 답사하여 교회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방문단은 그 동안 민화위에서 지원한 물품이 분배된 사실과 그 내용을 확인하고 농업 개발 문제 협조 등을 협의하였으며, 북측은 평양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의 방북을 요청하였다.

 

서울대교구의 민족 화해 위원회 발족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화해라는 용어를 복음적 의미로 가시화하는 동시에 북한 형제들을 향하여 손을 뻗고 발길을 옮기는 적극적 자세로의 변화가 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분단 50년 동안 사용되어 오던 '북한 선교'라는 용어 대신에 '민족 화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한국 교회 운신의 폭을 넓히고, 상호 이해와 협력이 가능한 개방적 태도로 전환하는 모습을 실증적으로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교회는 1997년 10월에 개최된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주교회의 민족 화해 특별 위원회를 설치하고, 또 다시 2년 후인 1999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는 주교회의 전국 위원회인 북한 선교 위원회의 명칭을 민족 화해 위원회로 변경하여 용어 사용에서 일관성이 이루어지도록 조치하였다. 이에 따라 모든 교구는 교구 차원의 민족 화해 위원회를 두거나 적어도 담당 신부를 두어 통일성을 갖게 되었고, 이로써 남북 관계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며, 대북 지원 활동에서도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하게 되었다. 

 

 

4. 실천적 과제 

 

2천 년 대희년이 '은총의 해'임을 보여 주듯이 올해 6월에 남북 관계 개선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룰 남북 정상 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됨에 따라 우리 사회는 각 분야별로 새로운 상황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서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 글 앞머리에서도 지적했듯이 한국 교회 역시 스스로 현실을 진단하고 새로이 주어지는 '시대의 징표'를 판별하여 이에 알맞은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신자들에게 명확한 인식의 틀을 제공하기 위해 공식적인 입장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남북 정상 회담과 '6 · 15 남북 공동 선언'으로 일어날 새로운 변화에 대한 복음적 이해를 돕고, 남북 평화 공존 시대의 전개에 따른 대안 모색의 방향을 담은 주교단 사목 교서의 발표가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다. 민족 화해를 향한 사목 지침의 내용을 총괄적으로 담아야 할 이 공식 문헌은 2천 년 대희년 정신에 입각하여 남북 관계의 새로운 진로와 조화를 이룰 통일 사목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아울러 민족 화해를 향한 노력의 실천적 지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 사목 교서는 1995년에 주교회의 북한 선교 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하여]의 내용과 연관성을 지니면서 시기적으로도 올해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발표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진다.

 

1999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주교회의 북한 선교 위원회의 명칭이 민족 화해 위원회로 변경됨에 따라 각 교구별로 민족 화해 위원회를 구성하여 주교회의 민족 화해 위원회와 유기적 연관을 맺으며 통일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변화되는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유기적인 협조 체제 아래 대북 지원을 포함한 민족 화해 노력을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미 1998년부터 각 교구와 수도 단체를 포괄하여 형성된 '민족 화해 가톨릭 network'를 한층 더 발전시켜 한국 교회 전체를 망라하는 유기적 공조 체제를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 교회는 분단으로 갈라진 형제들과 하나 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펼쳐 나가야 한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통일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실질적인 변화가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환상만 키워 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삶의 준비 단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주교단이 1998년 10월 15일자 담화에서 제기한 '새날 새삶'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와 우리 신자들 모두가 2천 년 대희년의 정신에 따라 분단으로 빚어진 모든 잘못에 대해 참회하고 회개하며, 남북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기 위하여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일치의 실현에 앞장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북 정상 회담 과정이 투명하게 비쳐짐에 따라 우리 사회에 갑작스런 충격이 가해져 혼돈을 빚는 이 기막힌 현실에서 한국 교회는 무엇이 과연 정의며 평화인지 그리고 참된 형제애로 이루어지는 일치인지를 증거하고, 자신의 삶에서 그 모습을 열어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날 새삶' 운동이다. '새날 새삶' 운동의 실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구호, 곧 "나부터 새롭게", "참된 가정 이루기", "좋은 이웃 되어 주기", "함께 가요, 우리" 등을 민족 화해의 실천적 지표로 삼아 한국 천주교회 통일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로 구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당위성과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적, 물적 토대를 구축하고 이를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출 때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제 한국 천주교회는 21세기 새 천년을 새롭게 열어 나갈 총체적인 준비 태세를 점검하고, 남북 관계에서도 시대 변화에 맞게 '포용적 실용주의' 노선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전략적 실행 기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인적 물적 토대 구축을 위한 중장단기 실천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교회 전체 차원의 마스터 플랜을 제시하고, 그 역할을 각 교구, 수도 단체, 사도직 단체들에 배정하여 통일 과정과 통일 후를 대비하는 총체적인 준비가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전략적 실행 기구'(task force)는 주교회의 민족 화해 위원회 또는 주교단 민족 화해 특별 위원회에 설치되어야 통합적인 조정 기능과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략적 실행 기구에는 전담 전문 인력이 배치되어야 한다. 결국 이 기구는 그 동안 교회 내외에서 이루어진 모든 과정을 종합 정리하고, 교회 내 전문 인력을 가동하는 실행 계획을 수립하며, 바티칸을 비롯한 국제 기구들과 공조 체제를 형성하고, 정부 정책과의 조화를 이루는 문제 등 포괄적인 문제 해결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구 가동을 위해 시급한 것은 재정적인 문제의 해결이다. 우선 당장이라도 전략적 실행 기구를 구성하고 운영해 나가려면, 최소한 주교회의 상임 위원회 차원의 결의를 거쳐 각 교구별로 축적해 나가고 있는 통일 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주교회의 총회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총괄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모여진 통일 기금이 약 100억 원을 상회하는 정도라고 볼 때, 바람직한 것은 이 통일 기금을 교구 차원의 명분 축적용으로 덮어 둘 것이 아니라 모든 교구의 힘을 모아 한국 천주교회의 미래를 공동으로 열어 나간다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투자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교회 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주님께서는 우선 당장 필요한 일에 합당하게 기금을 사용할 경우 그 다음에 더욱더 큰 갚음으로 새롭게 마련해 주신다는 믿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통일을 내다보고, 민족 화해의 실천적 과제를 놓고 볼 때 그 믿음은 더 이상 시간을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한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목, 2000년 8월호, 변진홍(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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