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축일.....2006.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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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11-09 ㅣ No.861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축일 [1109]

             에제키엘 47,1-2.8-9.12        요한 2,13-22

     2006. 11. 09. (목)  무악재

주제 : 성전으로서 내 삶....

찬미 예수님!     오늘은 로마에 있는 라떼라노 성전의 봉헌축일입니다.  이 성전에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셨던 식탁이 보관돼있는 교황개인의 소유물이라고 합니다.  로마도 아닌 지역에 사는 우리가, 교황님의 개인궁전을 구경도 본 일도 없을 우리가 이 축일을 지내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고민하기 보다는 새로운 성전으로 말할 수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혹은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우리의 몸을 단장합니다.  얼굴이 푸석푸석해 보인다고 걱정하기도 뭔가를 자꾸 바르기도 합니다.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 정말로 우리들 자신에 대하여 신경을 쓰는가 하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표현을 쓸 때, ‘형상과 질료’라는 말을 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대상, 시간이 가면 그 모습이 변할 수도 있는 것을 가리킬 때 그것을 질료라고 합니다.  흔히 이 질료는 눈에 보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편 형상이라는 말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질료를 통해서 자신의 사명을 실현하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사람을 사람이게끔 만들어주는 존재를 가리켜서 세상에서는 ‘이성(理性)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말하거나 여자가 남자를 말할 때 사용하는 이성(異性)은 아닙니다.  소리로 내는 것에도 별 차이 없는 말입니다.  우리몸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지도 감독하는 이 이성을 가리켜서 형상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몸은 질료에 해당합니다.  복잡하게 여길지도 모를 철학표현을 언급하는 것은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몸으로 하느님의 뜻을 드러냅니다.  한 번 내 입에서 나온 다음에 사라져버리는 말도 우리의 몸이 하는 일이고, 남들이 감사의 표현을 남기는 일을 하는 것도 이성의 움직임도 있겠습니다만, 우리의 몸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몸이 하느님의 성령이 머무시는 궁전이라고 표현한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아는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이냐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에서 나오는 힘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 물이 흘러가는 강 양쪽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할 결과를 맺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성령의 궁전인 우리 몸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실천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귀중합니다.  성전정화에 나서셨던 예수님의 그 판단이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의 몸에 그대로 적용되는 사건이 일어나서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살았다는 이야기외에 다른 뜻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도구가 될 우리 몸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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