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강론자료

연중 31 주일 나해.....200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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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11-04 ㅣ No.857

 

연중 31 주일 (나해)

             신명기 6,2-6      히브리 7,23-28      마르코 12,28ㄱㄷ-34

     2006. 11. 5. 무악재

주제 :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실천

찬미 예수님.

이제는 겨울의 시작이라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11월 위령성월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하기 쉽고 편한 말로 끝이 있다는 말은 합니다만, 실제로 세상만물들 각각에 그 끝이 언제 찾아오는지 알지는 못합니다.  저마다 시작이 달랐듯이 각각 맞이하는 끝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한 내용을 말한다면, 그 삶의 길이를 평균값으로 계산해서, 내가 누릴 생명의 길이도 대충 어느 정도 남았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그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 살 것인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인(善人)이 되거나 악인(惡人)이 되는 것은 삶의 길이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양과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 판단이 나를 피해서 갈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은 위령성월의 첫 번째 주일, 연중 31 주일입니다.


사람들은 세상 삶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물론 공부만 해야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고 알지 못하면 다음 순간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에, 지금 생각한 것과 같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율법학자는 하느님의 뜻을 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던 행복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았을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느닷없는 질문을 합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어쨌든 그 마음의 방향을 읽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학자가 원하지 않은 ‘두 번째 계명’까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의 질문에 두 가지를 이야기하셨지만, 공통점은 사랑입니다. 


세상 삶에 지식은 큰 역할을 합니다.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더 낫고, 아는 것은 행동으로 연결될 때에야 진정한 결과를 맺는 법입니다.  그래서 현명한 대답을 했던 율법학자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반만 칭찬하고 맙니다.  그에게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를 가리켜 ‘너는 하느님나리에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 나리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만 하십니다.


사람의 삶에 아는 것이 더 없이 중요하기는 해도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합당한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 신명기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규정과 계명’이라고 모세는 선언합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그렇게 말했다면, 우리로서는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아니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을 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삶이 귀중한 사람, 자기 삶을 특별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은 허튼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삶에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대하는 방법에 따라 사람의 삶은 그 결과를 달리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흔히 규정과 계명을 부담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깁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삽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사람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산다면, 그 삶으로서는 특별한 결과를 이루지 못합니다.  규정과 계명은 하느님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달리 갖는 마음자세가 우리가 사는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선택된 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부족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일부로 부족하게 살려고 선택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려고하거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거부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올바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하느님 앞에서 완벽해질 수는 없어도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겠다는 제사만 갖는다면 분명 우리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합당한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잠시 삶의 준비를 위한 시간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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