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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실업자와 파산자를 위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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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06

실업자와 파산자를 위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

 

 

1. 들어가는 말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교회에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 제삼천년기를 준비하는 교회에 주어지는 물음이다. 교회는 이것을 희년의 정신에서 찾고자 한다. 희년은 기쁨의 해이다. 이 기쁨은 회개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기 자녀들의 죄과를 더욱 철저하게 의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 참으로 반증거와 추문의 형태를 보이는 사고 방식이나 행동 양식에 빠져들어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정신에서 벗어났던 역사의 모든 시대를 그 자녀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1)라고 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루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으로 말씀하셨던 것을 상기해 보자.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이는 ‘복음 정신’에서 벗어난 교회의 삶에 대한 질타이며 그렇게 살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염원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의 경이적인 발전으로 인간 생활은 신속, 안락, 풍요,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지만 사실 정신적 황폐화와 영적 빈곤에 시달릴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의 문화 건설의 필요성에 몰리고 있다.2) 따라서 암울한 역사와 경제적 위기 속에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 안에서 교회는 어떠한 삶의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말로써 예수님의 사명을 다하고, 제삼천년기를 준비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되새겨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 글은 위기에 있는 한국의 현실과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곤궁에 처한 민중들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를 주제로 기술될 것이다.

 

먼저 간략하게 현실을 진단하고자 한다. 그리고 성서와 교회 문헌에 나타난 가난의 문제를 고찰함으로써 교회의 관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끝으로는 교회의 구체적 역할과 사목적 배려에 대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2. 한국 사회의 현실 진단

 

1) 오늘의 상황

 

지난해 말 외환 위기와 이에 대한 IMF 구제 금융 신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경제 위기 상황의 초기만 해도 누구도 그 결과를 쉽게 짐작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현재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수많은 기업이 부도로 문을 닫고, 수많은 실직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노동자들의 지갑은 작년보다 더 얇아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제 위기와 IMF 개입이 가져다 준 가장 심각한 도전 중의 하나는 대량 실업의 위협과 그 치명적인 결과에서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새해 들어 1월 한 달 실업자 수는 전달보다 40%나 증가한 93만 4천 명에 달했고, 하루 평균 실업자 수를 감안할 때 2월 중에는 이미 1백만명을 넘어서 현재는 120만 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3) 문제는 이러한 대량 실업 사태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초기의 낙관론과 대조적으로 상반기 중 150만, 올해 안에 200만의 실업자가 쏟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공감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고 보면 고실업 시대는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이 확실한 것 같다.4)

 

2) 대량 실업의 파장

 

대량 실업은 국민 개개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를 공황의 상태로 빠뜨릴 위험이 있다. 이같은 예상은 현재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가정에서는 가장의 실직으로 아내가 시간제 근무와 임시직 등의 저임금 취업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자녀의 교육과 정서에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서 가정의 심각한 동요와 가정 파탄의 상황에 이르고 있다. 실업 문제와 심각한 경제적 침체로 사회 문제 또한 증가하고 있다. 실직으로 생존권을 위협당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이 급증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 이후 실직과 도산 등으로 자살5)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대량 실업의 사회적 폐해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업에 대한 사회적 안전 장치가 상당한 수준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실업자와 함께하는 연대 시위가 사회적 공감을 얻고, 실업자 수당을 받는 것이 하나의 권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유럽의 상황인데 비해, 우리 나라의 경우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 이후 몇몇 특수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전 고용에 가까운 고용 상태를 유지해 왔고, 실업 충격을 완화해 주는 것은 가족의 몫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오늘의 상황에서 이러한 가족 기능 자체도 상당히 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방어막으로서의 사회 복지 제도 - 대표적으로 실업 보험과 노동 시장 정책 등 - 는 이제 걸음마 수준에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맞이한 급작스러운 대량 실업 사태에 직면해서 개별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실업의 위협'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3) 현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오늘의 이같은 난국은 결코 정책 결정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소비 향략주의에 물들어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였던 국민에게도 있다. 아울러 경제사회적 정의 실현에 앞장서야 하는 교회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정 책임자나 경영자의 책임 역시 규명되어야 하지만 잘못된 정책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편승한 국민들 역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판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게을리한 종교인들의 책임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하는 공동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모두가 내 탓임을 자각하고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교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3. 교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교회가 가난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이 문제가 예수님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연민은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삶을 선택6)함으로써 하느님의 정의가 세상에 드러나게 하셨다. 이에 우리 교회도 예수님과 같이 가난의 문제에 동참함으로써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가난’의 문제를 살펴봄으로써 오늘의 현실에 직면한 교회 대응의 당위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성서의 가난

 

성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고 있다. 그들이 당하는 불의와 처절함에 대해 하느님의 정의로 그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마땅한 존중을 받고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자들은 그들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힘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러기에 시편과 잠언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두둔한다. “없어서 짓밟히고, 가난해서 신음하니 나 당장 일어서리라.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리라”(시편 12,5). “남 보살펴주는 사람, 곧 가난한 사람에게 제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잠언 22,9).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쉬운 것 없겠지만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잠언 28,2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셨지만, 당신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다(2고린 8,9).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서 영원하신 아드님의 육화 신비를 말하고 있다.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불행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죽음에 이르는 인간 본성을 취하려고 오셨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조건 안에서 가난과 빈곤의 상태를 선택하셨다(루가 2,7; 9,58 참조).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부가 무엇인지, 하느님과 생명의 친교를 이루는 부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지상의 부를 멀리하고 하늘의 부를 구하라고 가르치셨다(마태 6,19-20.24-34; 19,21 참조).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사도들 또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의 가난에 참여해야 했다(루가 5,11.28; 마태 19,27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예언자들에 의하여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갈망하는 “야훼의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들을 발견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또한 “세리들과 죄인들”처럼 세상의 재물로는 부요할지라도 공동체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과 가까이하기를 바라셨다. 바로 이러한 가난, 하느님께 대한 신뢰, 나눔의 각오, 절제와 초탈로 이루어진 가난을 예수님께서는 행복하다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2) 교회 문헌에 나타난 가난

 

교회는 공의회 문헌과 교황 회칙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남달리 관심을 기울여왔다. 교회는 노동에서 소외되어 가난해진 사람, 국가 권력 기구의 비합리성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혜택과 그들의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기를 갈망하였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하늘에서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 갖기를 촉구한다. 교회는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와 가난이 하느님 앞에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모든 사람을 인자로이 부르시어 당신께 위안을 받게 하시기 때문이다.7) 또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에 대해서도 말한다. 교회의 모든 배려가 지상의 현세적 삶에 속하는 것을 무시하면서까지 오로지 영혼의 구원에만 전적으로 쏠려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특히 노동자들이 그들의 가련한 처지에서 헤어나고 그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배려하고 있다.8) 교회의 삶이란 결국 이타적(利他的)인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에게 보호를 받을 것인가? 우선적으로는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국가 자체의 목적이 국민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의 권리를 옹호함에서, 국가는 특히 약자들과 빈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부유한 이들은 자기 방어 능력이 있으므로, 공적인 보호를 받을 필요가 덜하다. 이와는 반대로 빈곤한 대중은 든든한 재산이 없으므로, 국가의 재산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들이 빈곤한 대중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을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한다.”9)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이와 같은 교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표명은 공의회를 통해서도 국가 기관에 호소한다. “여하간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넉넉한 재화를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교부들과 교회 박사들도 이렇게 생각하였으므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줄 의무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가르치면서 쓰고 남는 것만을 주어서는 충분치 않다고 하였던 것이다. 빈곤의 극(極)을 겪고 있는 사람은 필요한 것을 타인의 재화에서 취득할 권리를 가진다. 세계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기아(飢餓)에 신음하고 있으므로 이 공의회는 모든 개인과 정부에 호소하는 바이다.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그대가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그라시아노 교령 21장 86절) 하신 교부들의 말씀을 상기하여 각자의 능력대로 자기 재화를 나누어 주고 특히 개인이나 국가가 받은바 원조로써 자조 자립(自助自立)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기 바란다.”10) 물론 교회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국가 기관에 의탁할 수만은 없다. 그들이 가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종교가 종교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면 이들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11) 이어서 회칙 [어머니요 스승]은 사도 요한의 말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책임을 강조한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1요한 3,16-17).”12) 

 

 

4. 실업자와 파산자를 위한 사목적 배려

 

1) 교회의 요망

 

“공의회는 인류의 대부분을 아직도 괴롭히고 있는 재앙(災殃)이 많음을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을 가는 곳마다 장려하기 위하여 전 교회의 한 기관(機關)을 설립하는 것이 대단히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기관의 목적은 빈곤한 지역들의 발전과 민족들간의 사회 정의(社會正義)를 촉진하도록 가톨릭 공동체를 격려하는 것이 될 것이다.”13) 사목헌장의 이러한 천명은 교회 안에 많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관 설립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한국 교회도 미흡하지만 사회 안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매우 헌신적인 노력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에게 공의회의 요청이 새로운 모습으로 더욱 요청되는 것은 오늘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교회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미룰 것도 없다. 공의회의 정신으로 새로워져서 이 위기를 극복할 희망을 백성들에게 빛으로 드러내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에서 선언14)하고 나선 실업자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분명한 것은 정부의 역할과 교회의 역할이 구분되어야 하지만 목적만은 같은 것이라고 본다. 그 목적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가정이 만신창이가 되는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며, 이는 공동체적 삶의 동참이다. 이 동참을 통해 그리스도의 참 정신이 구현되리라고 본다. 이와 같이 “교회는 인간의 약성으로 고민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또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교회 창립자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의 결핍을 덜어주기로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께 봉사하기로 마음을 써야 하는 것이다.”15)

 

2) 교회의 대응

 

IMF 시대를 맞이하면서 교회는 미흡하나마 다양한 방법으로 실업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그들이 처한 환경을 생각한다면 더욱 적극적인 노력들이 요청되지만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국립사회복지연수원의 이태수 교수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직자들을 위한 교회의 대응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현재의 실직자를 위한 본당 차원의 다양한 행사에 대한 효과를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이 염려된다. ① 실직 대상자의 자괴감, 낙인감으로 인해 실태 파악 및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② 고용에 관한 정보 제공 및 상담 등은 전문가가 행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성당에는 이와 관련된 전문 인력이 없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16)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자신을 세상에 내어놓으신 예수님처럼 우리의 많은 것들을 세상에 내놓고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분명히 직무 유기를 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정신을 철저히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교회의 노력들이 있음을 알지만 부연하여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교구의 대응

 

먼저, 교구의 대응이 있어야 한다. 교구의 사목적 배려는 무엇인가. 신자들로써 유지되고 확장된 교회는 이제 다시 고통당하는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야 한다. 따라서 이제 교구는 일정 부분 자신의 재산을 매각하여 사회에 환원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한 정신을 갖지 못한다면 누가 어떤 모범을 보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의 삶을 살 것인가? 둘째, 실업 시대 극복을 위한 정신 운동, 신앙으로는 영성 생활을 강조하는 사목 지침이 있어야겠다. 한 연구 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IMF 시대의 사회 심리적 동향을 10가지로 분석했는데 “실직에 대한 불안 및 공포 심리 확산과 자존심 상실에 따른 패배주의와 열등 의식 팽배, 그리고 불신의 증대와 부화뇌동 심리가 극대화한다.”17)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의 정신적, 영성적 건강을 위해 교회가 많은 것 - 영성 프로그램, 상담실과 상담팀 운영, 심리 강좌 개설 등 - 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단기적(시혜적)인 도움과 장기적인 도움에 대한 구분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단기적인 도움으로는 행려자나 노숙자에 대한 지원이다. 이는 이들에 대한 급식과 쉼터, 의료 지원을 하는데 서울대교구 내에서는 대략 20여 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18) 장기적인 도움으로는 위기감에서 발생하는 가정의 문제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전문적인 상담 운영 팀을 조직하여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가정의 문제는 청소년 문제, 범죄 문제를 포함하여 사회 문제 전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구는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많은 청소년들이 소외감을 안고 있다. 더군다나 실직자 자녀들의 문제는 또다른 교회의 소외층을 양산할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은 이들이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이들의 학자금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본당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기존의 장학 사업이 확산되고, 장학금 수여자의 원칙도 이들을 배려할 수 있도록 교구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2) 본당의 대응

 

현재 몇몇 본당에서는 실직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내용은 본당별로 차이가 나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실직자 고용 촉진, 생계 구호, 쉼터 운영, 정서적 지지 등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10여 개 본당에 불과하다.19) 서울대교구 전체 195개 본당에 비한다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본당에서 사목적 배려로 확산되기를 바랄 뿐이다. 

 

 

5. 마감하는 글

 

현재 교회가 파산자들을 위해 실천하고 있는 사목적 배려에 많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교회가 지금까지 받은 많은 것들을 다시금 세상으로 돌려주는 것은 희년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 시대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절망 안에서 솟구치는 희망의 복음적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고통에 신음하는 이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로마 8,22-24). 날마다 그들의 마음 안에서, 그들이 속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인 사회 환경 안에서, 역사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도록20) 그리스도인들은 요청받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2천년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한 ‘성령의 해’에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이 IMF 구제 금융을, 성령께서 주시는 희망의 빛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절망을 넘어 실의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교회의 몫이며 아울러 구체적인 실천 계획과 행동으로 옮기는 노력 또한 교회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그렇게 할 때 이러한 국난에 부분적 책임이 있는 교회로서 최소한의 사명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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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삼천년기], 33항. 

2) [제삼천년기], 52항. 

3) 그러나, 현실에서의 실업자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통계청의 공식적인 실업 통계는 경제 활동 인구에다 실업자를 나눈 것이다. 이 때 실업자란 ‘취업하지 못한 사람’으로 정부 통계는 1주일에 1시간 이상만 일하면 모두 취업자로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에 실제적인 의미에서 실업자나 마찬가지인 사람은 이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실업률은 공식 통계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4)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IMF 시대 실업의 현실과 대안], 43면에서 재인용. 

5) 서울 강남경찰서의 경우 지난 1-2월 12건의 자살 사건을 처리, 월 평균 2건이던 지난해보다 자살이 3배 늘었고, 서울 영등포 수상구조대가 관할하는 한강 지역에서 투신 자살을 기도하는 사례도 1월 5건, 2월 8건으로 작년의 월 2-3건에 비해 급증했다. 이같은 자살 사건은 생활고나 부도에 따른 처지 비관자가 대부분이며, 특히 가족의 동반 자살이 늘어 충격을 주고 있다.-세계일보 3월 3일. 

6) 홀리오 로이스, [해방신학의 구조와 논리], 김수복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1990, 85면. 

7) [새로운 사태], 17항. 

8) [새로운 사태], 21항. 

9) [새로운 사태], 27항. 

10) 사목헌장, 69항. 

11) [어머니요 스승], 121항 참조. 

12) [어머니요 스승], 159항. 

13) 사목헌장, 90항. 

14) 가톨릭신문, 1998. 4. 26일자, 1?3면. 

15) 교회헌장, 8항. 

16) 이태수, “경제 난국과 가톨릭 사회 복지”, [IMF 시대의 본당 사회 복지 사업의 방향], 1998년도 1차 본당 사회 복지 분과위원 연수회 교육 자료집, 서울대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서울대교구 사회복지회, 15면. 

17) [IMF 시대 실업의 현실과 대안], 사제단 자료 98-4, 74-75면. 

18) 이태수, 앞의 책, 52면. 

19) 같은 책, 14면. 

20) [제삼천년기], 46항 참조.

 

[사목, 1998년 6월호, 정진호(서울대교구 평신도 사목국 차장, 직장사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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