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우리가 생명의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 한다(자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2 ㅣ No.860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우리가 생명의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 곧 생명의 백성, 생명을 위한 백성에게 저는 가장 긴급히 호소하고자 합니다. 이 호소는 우리가 함께 이 세상에 우리의 새로운 희망의 징표들을 제공하고, 진리와 사랑의 참된 문화를 건설할 수 있도록 정의와 연대성이 증대되고 인간 생명의 새로운 문화가 확정되리라는 것을 보장하고자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이 회칙에서 교황께서는 빈곤, 기아, 폭력과 전쟁 같은 기존의 재앙에 덧붙여 인간 생명에 대한 새로운 위협들이 위험스러울 만큼 방대한 규모로 생겨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낙태와 안락사, 집단 학살, 온갖 살인들과 더불어 고의적인 ‘자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셨다.

 

이른바 ‘죽음의 문화’라고 하는 현시대의 악을 인터넷이나 신문 지상에서 접할 때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이러한 호소가 지닌 긴박성을 다시 한 번 더 절감하게 된다.

 

특히 요즈음 거의 날마다 들려오는 자살 소식에 속수무책인 현실과 뚜렷한 정책 대안의 부재, 조직적이지 못한 예방 활동 등 여러 측면에서 미흡하기 짝이 없는 현주소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생명운동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가끔씩은 일종의 무기력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결코 멈출 수 없는 것이 바로 교회가 지닌 ‘생명 수호’의 사명이기에 그 특별한 소중함이 그리스도인들 각자의 영혼 깊은 곳에까지 가서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자살, 더 명확하게는 ‘자살 예방’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려고 한다.

 

 

자살률 1위, 자살 증가율 1위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 자살 증가율 1위라는 말은 어쩌면 더 이상 우리들에게 충격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심각성이 피부에 와닿지 않고, 심장이 떨릴 만큼 처참한 일로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심하게는 ‘또 그 소리!’ 하면서 지겨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서 37분마다 1명의 청소년이 절망적인 혼란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고, 2시간마다 60대 이상 노인 1명이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있다.

 

진정한 관심이 의미하는 바가 책임과 연대의 행동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놀라지도, 진정한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안타까워하다가 이내 잊어버리는 수많은 기사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34분마다 한 명이 자살하는데, 소리 없이 생명을 앗아가는 자살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과 처절함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이해받지도 못하고 있다.

 

그 심각성을 진심으로 절감하지 못한다면, 자살이라는 행위로써 호소하는 그들의 심정과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해 주지 못한다면, 그에 따른 대책이나 예방하는 활동들에 대한 의지가 생겨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자실이 이 사회의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자살로 생기는 피해는 자살자뿐만 아니라 목격자, 가족, 친구, 학교 선생님 등 최소한 6명 이상의 주위 사람들에게 심리 · 정서적 영향과 자살 위험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살이 더 이상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그 파급 효과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자살 시도자는 자살자의 10-20배에 이르므로 그들에 대한 조기 발견과 정신적 돌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더 큰 혼란의 국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최근 일어난 방송 ·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에 대한 각 언론들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 방식은 보도 자체가 자살의 계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살 의도를 가진 사람이 모두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아님에도 마치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처럼 표현하면서 자살 방법이나 과정에 대한 자세한 경위까지 묘사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자기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마지막 방어선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살은 한 번에 실행하지 않는다. 곧, 충동적 선택이 아니다.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 있으며, 반드시 표현을 한다. 자살을 하기까지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말한다.

 

첫 번째는 문제 발생 단계로서 당사자가 ‘주관적’으로 생각할 때 자신의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자신의 삶을 반복적으로 곱씹고 돌아보면서 그 삶에 대해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이들은 결코 긍정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지 못한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죽어야만 하는 이유들로 자신의 의식을 가득 채우게 된다.

 

바로 이 단계에서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노력으로 그들이 잘못 해석하는 것을 바로잡아 주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자신이 바로 그 희망과 구원이 되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생명의 마지막 방어선이 되어야만 한다.

 

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은 무차별적으로 무너지게 된다는 의지로 그들을 도와야만 한다. 자살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다.

 

바로, 자신들이 지닌 왜곡된 시각으로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내면화시키고, 생각만이 아닌 행동을 선택하고, 그러고는 마침내 자살을 실행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재시도하는 비율은 거의 100%라고 한다. 그러므로 첫 시도를 하지 않도록 그전에 예방해야만 한다.

 

자살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자살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자살할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린다.

 

위험한 사고가 발생할 만한 행동,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무모하게 몰고 다니거나 혼잡한 도로 또는 낭떠러지, 다리, 철길 위를 걷기도 하며 항상 흥미를 갖던 일에 흥미를 잃는다거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끊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며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는 등 갑작스런 태도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손목을 긋거나 정량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등 실제 자해행위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실제 사망할 위험이 낮다고 생각되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은 자를 위한 배려와 역할

 

자살은 분명 ‘죄’임에 틀림없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가톨릭교회 교리서”에는 “중한 정신장애나 시련, 고통 또는 고문으로 겪는 불안이나 심한 두려움에 의한 자살자의 책임을 경감시킬 수 있다.”(2282항)고 명시하고 있고, 이러한 자살자에 대한 장례미사 금지 조항을 삭제하였으며 그들을 단죄하기보다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이 회개와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자살은 죄이지만, 그들과 유가족을 위한 기도와 사목적 배려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정의의 하느님은 자비의 하느님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경계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신 하느님의 마음이 이 시대에 요구하고 있다. 당신께서 마음 아파하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전 신자가 힘을 모아 생명선을 지켜내라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가정과 본당과 지역사회에서 면역 체계를 형성하는 예방주사가 되어야 한다.

 

적극성이 곧 생명이다. 자살 시도는 고통의 절규이나 이와 동시에 도움을 청하는 절규임을 잊지 말고 그 처절한 외침을 읽어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러려면 우리는 항상 관계 속에서 깨어있어야만 한다. 가족, 친구, 누군가가 도움의 손을 뻗치지 않을 때 자살은 승리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 수가 전 인구의 10.1%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인구 10명 당 1명이 신자인 셈이다. 각자가 우리 주변 9명을 돌본다면 우리나라 생명의 미래는 밝다. 우리나라 생명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생각에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에서는 생명 존중과 자살 예방 캠페인을 각 본당마다 릴레이로 전개하며, 청년, 교사, 반장, 구역장을 대상으로 하는 케이트키퍼(gate-keeper) 교육으로 1인 1명 수호천사 되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본당의 구역, 반, 레지오 마리애, 주일학교, 청년회 등 각 단체별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활동하는 적극적인 활동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은 뒤,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자살의 위기에 있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방문하고 상황을 살피고 위험도를 검사하며, 상담 훈련을 받으신 분들이라면 초기 상담을 하고 곧이어 전문기관에 연계하면서 사람을 살려낼 것이다.

 

죽기 전에 살려야만 한다.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자살을 예방한다는 것은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혹시 지금 견딜 수 없는 고통 한 가운데서 하느님도 보이지 않을 만큼 힘겨워하는 이에게 권고한다. “손을 내미십시오. 이야기를 건네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함께 그 어려움을 지고 갈 것입니다.”

 

* 김보미 글로리아 -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수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7월호, 김보미 글로리아]



97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