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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정보통신 혁명 시대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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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6 ㅣ No.275

정보통신 혁명 시대의 가정

 

 

정보통신 혁명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뉴미디어의 다양화, 성능의 확장과 보편화이다. 다양화는 종류의 증가를, 성능의 확장은 멀티미디어화하면서 다양한 기능이 하나로 수렴되는 현상을, 그리고 보편화는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 글에서는 보편화의 결과로 일상의 미디어가 된 매체들을 통하여 변화 또는 도전받는 가정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원인분석과 해결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사이버 공간과 가정

 

1) 사이버 포르노그래피 

 

사이버 공간의 확장을 촉진시킨 최고의 컨텐츠는 포르노를 포함한 사이버 섹스물이다. 사이버 섹스는 음란 정지화상, 야한 동영상, 음란 소설, 야한 농담, 버츄얼 섹스 등 사이버 공간에서 유통되는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글, 그림, 행위 전반을 가리킨다. 포르노 테이프가 비디오카세트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일등공신이었던 것과 같이 성(性)은 시각적 미디어의 양적 확대를 주도한다. 공간이 확장되면 초기에 차지하였던 비중이 약화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최대의 소비자를 거느린 영향력 있는 컨텐츠이다. 그런 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에는 사이버 포르노 중독으로 젊은 부부들이 이혼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부부생활을 거부하고, 사이버 섹스물에 과다하게 노출됨으로써 초기에는 부부싸움 별거 궁극에는 파경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혼 사유로 거의 거론되지 않고, 드물게 가십거리가 되는 정도이지만 부부싸움, 상호불신은 비교적 넓게 퍼져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2) 사이버 결혼

 

역시 보편화된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사이버 결혼이다. 미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매 사이트들이 대부분이지만, 기혼자와 미혼자, 기혼자와 기혼자의 결혼을 주선하는 곳도 드물게 존재한다. 사이버 결혼은 오프라인 이른바 현실공간에서는 만나지 않고 사이버 공간에서만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현실공간에 존재하는 아내와 남편 몰래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상대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는 것이다. 가상의 아바타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신혼살림 장만에서 아이 양육에 이르기까지 실제 살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들은 현실에서 하는 결혼은 부모의 의도, 또는 시장화된 결혼 제도에서 육체적 결합만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이런 공간을 통해서 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사이버 공간 자체가 탈육체적이기 때문에 어차피 정신적 사랑이 주를 이루지만 드물게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육체적 사랑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흥미 있는 것은 이들이 정신적 사랑만 다른 상대와 나누고, 일상적인 가정생활은 형식적으로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결혼이 부부의 인격적 결합, 성사적 일치가 되어야 하는 교회의 입장과는 거리가 먼 현상이다. 

 

3) 넘치는 사랑, 넘치는 불륜

 

사이버 공간이 인간을 개인화시킨다는 우려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맞지 않는 현상이다. 수십만 개의 카페, 동호회, 클럽, 동창회 등 공동체를 추구하는 욕구들이 이 공간 안에 넘쳐나니 말이다. 이 공동체 안에는 사랑만을 추구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 사이버 공간의 등장으로 가장 빛을 본 것이 동성애이다(동성애자들은 이성애를 가진 사람들을 1반, 자신들을 2반으로 부른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기제를 이용하여 음지에 있던 욕망들이 양지로 나온 것이다. 동성애는 가정에 도전할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동성애자들의 가정을 가정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교회를 곤혹스럽게 하는 사목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이 공간 안에서 나누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사랑이 넘치는 것만은 분명하다. 원조교제, 스와핑, 매매춘 연결, 배우자 몰래 불륜 남녀들이 이 공간을 이용하여 소통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소비자들의 수는 무수하다. 원조교제는 기혼자들도 적지 않아 발각되었을 경우에 개인의 신상을 공개당하는 통에 개인은 물론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가 흔하다. 스와핑도 한동안 가십성 기사를 통하여 회자되곤 하였지만 본질은 매매춘인 경우가 흔하다. 스와핑의 경우 부부의 동의하에 결혼상태는 지속하면서 일시적 쾌락을 위하여 배우자를 교환하는 것이어서 문제가 된다. 

 

미국에서는 스와핑 후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극소수의 일부 계층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기 때문에 가정의 지속 여부를 파악할 수는 없다. 사실 스와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가정을 포기하지 않고 성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려는 데 있다. 그들이 그렇게 유지하려는 가족이나 가정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매매춘을 조장하는 경우도 사이버 섹스만큼이나 흔하다. 오프라인에서도 도처에 널려있는 러브호텔에서 확인되듯이 과연 진정한 사랑과 결혼, 가정이 무엇인지는 적어도 우리 시대에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4) 대화의 단절

 

텔레비전은 가족끼리 대화는 못하게 해도 한자리에 모으는 힘이 있었다. 세대의 차이를 넘어 한 방향을 바라보게 만드는 텔레비전은 한 집에 여러 대가 되어도 여전히 함께 보는 미디어의 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컴퓨터는 위치부터가 사적인 공간이다. 응접실에서 개인의 방으로 들어앉는 것은 물론, 철저하게 혼자 사용하는 미디어이다. 인터넷이 현재와 같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유선 접속을 통한 채팅은 현재의 사이버 섹스만큼이나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는 게임도 문제이다. 게임 중독도 적잖이 심각한 것이다. 부모와 아이의 소통 단절을 호소하는 경우가 흔한 것을 보면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성인의 경우에는 도박 중독, 주부의 경우에는 전자 상거래 중독, 컴퓨터가 한 대일 경우에는 서로 차지하려고 가족 구성원들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여, 이래저래 문명의 이기가 갈등을 조장하는 흉기로 변한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은 가정에 새로운 갈등 요소로 등장하였다.

 

 

2. 이동전화와 가정

 

1) 은밀한 만남 

 

휴대전화라 부르는 이동전화는 미디어의 진화 정도를 가늠하는 첨단의 척도이다. 무전기 크기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로 축소되고 가벼워지면서도, 그 기능은 전화, 인터넷, 카메라, 오디오로 확장되어 멀티미디어의 총아가 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동전화는 말 그대로 이동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가정의 문제가 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한 예로 유선전화는 사람을 전화통에 묶어둔다. 이보다 진화된 메모리 폰이 있지만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이동전화의 유용성에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이 불순한 유혹에 빠진다. 

 

얼마 전만 해도 전화통 역시 텔레비전처럼 가족 미디어였다. 가족 모두가 사용하는 것이어서 위치도 가족들의 공용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받지 않으면 다른 가족을 통해서, 또는 여러 가족이 있는 자리에서 메시지를 수신하였다. 자연스레 각자의 사회생활이 가족들에게 노출된다. 그나마 개인의 사적 관계가 공공화되는 속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전화는 개인의 손바닥에 놓이게 되었다. 끈이 사라지니 침대로도, 자동차로도 들어가게 된다. 이제 가족의 제약은 전화요금으로만 국한된다. 

 

주변에서 이동전화 때문에 낭패를 보는 부부들이 얼마나 흔한지 알고 있을 것이다. 우선 저장기능이 강화되면서 통화기록이 남는 것이 문제이다. 두 번째로, 위치추적이 가능하다는 디지털 기술의 속성이 문제이다. 범인을 추적할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감시할 때도 이동전화는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파탄에 이르는 가정이 흔하다. 또한 사춘기 아이들의 비밀 연락수단으로, 부정한 소식을 전하는 수단으로 이동전화는 가정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3. 미디어의 문제인가, 사람의 문제인가? 

 

사이버 공간을 연구하면서 자주 하게 되는 질문이다. 필자는 사람이 문제라고 본다. 물론 미디어에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굳이 중요한 원인을 찾자면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다. 미디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하여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사람, 받는 사람, 이를 하나의 거대한 소통체계로 만들어 운영하는 집단, 이를 조종하는 사람, 집단이 문제이기에 말이다.

 

사이버 공간은 알다시피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다. 물론 익명성의 보장은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익명성 때문에 사람들은 현실공간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자유를 누린다. 정체성을 수없이 변화시켜도 전체나 생명에 대한 위협이 아니면 허용가능한 일탈로 여겨진다. 

 

이로 인해 잠재된 욕망(주로 성적인 욕망)이 손쉽게 분출된다. 현실공간의 억압에 대한 반발로 욕설, 게임에서 보이는 공격성, 성적 탐닉에 이르기까지 책임감이 수반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속성에서 가정을 위협하는 일탈의 한 가지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도발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이버 공간의 속성보다 현실공간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동이다. 앤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에서 가정이나 결혼제도를 위협하는 가장 큰 흐름을 친밀성에 대한 이해의 변화로 해석한다. 과거의 성은 ‘사랑-결혼-성’으로 이어졌다면, 이제는 ‘사랑-성-결혼 또는 독신’으로 결혼이 선택적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성이 사회적으로 강한 제약을 받았다면 이제는 이 제약이 느슨해져 친밀성이 감지되면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바로 성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로 성적인 문제로 좁혀져 가정이나 결혼제도를 존속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보면 사이버 공간과 오프라인은 상관성을 갖는다. 문제를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조성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인화 경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어츠 호프스테드(Geerts Hofstede)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나라는 집단 구속력이 강한 집단주의 문화이다. 여전히 집단주의 속성이 위력을 떨치기는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되어 온 도시화, 산업화, 핵가족화, 민주화의 결과로 개인의 위치가 점차 커지고 있다. 자연스레 개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간섭하기가 어려워지고, 특히 국가에 의한 간섭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종교, 학교, 가정 내에서 부모의 제약도 약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는 문화의 심층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이 쉽게 동요되거나 붕괴된다. 이것이 앞서 열거한 일탈현상들이 나타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결국 개인, 구조의 변동,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변화 등이 총체적으로 문제의 배경을 이루는 것이다. 

 

 

4.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을 관찰하기도 버거운데, 이에 대한 사목적 대안을 마련하라고 하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사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조성과 앞에서 열거한 구조적 원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가정의 문제를 과거와 같은 도덕적인 요청과 윤리적 호소로만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성의 전문가인 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말할 자격이 있고, 가르칠 책임이 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모두가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앞서 열거한 사건들이 가십성 기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영향력이 커지고 지배적인 경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면에서 사목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굳이 대책을 찾아보자면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이나 현대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나타난 일탈과 그 대상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교회의 원칙적인 가르침과 태도는 이 대상자들에게 설득력이 없을 것이므로 현대사회에 대한 교회의 이해가 얼마나 더 높아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사목, 2004년 3월호, 박문수(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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