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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의 구현과 여론 다양성 위한 마이너 언론 진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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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2-07 ㅣ No.904

[경향 돋보기 - 너희는 오직 정의만 따라야 한다] 정의 구현과 여론 다양성 위한 마이너 언론 진흥 필요하다


한국을 포함한 지구촌은 양극화 위기와 생태계의 위기에 처해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월가 점령 시위로 시작된 ‘1%의 탐욕에 맞선 99%의 저항’은 전 세계의 주요 도시로 퍼져 나가 지구촌은 반 신자유주의 구호로 들썩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시장과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선순환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구 온난화로 말미암아 북극의 빙하가 유실되는 모습도 텔레비전을 비롯한 영상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이상 기온과 기록적인 폭우 등 자연 재앙이 잇따르고 있다. 이제 상식과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촌을 잃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촌이 이 같은 위기에 처한 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올바로 배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올바르게 배분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말한다. 그런 사회는 구성원들을 갈등 · 불신 · 분열 · 분노에 휩싸이게 하고 공동체를 해체의 위기로 몰아간다.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의 모든 차원의 균형에 대한 존중으로 이해된다. 평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받지 못할 때,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고, 시민생활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을 때 위협을 받는다. 인권 수호와 증진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과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완전한 발전에 본질적인 것이다”(494항).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한국 언론

언론은 공론장, 공동체 형성, 공적 지식의 보루, 권력과 환경 감시의 역할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 곧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올바르게 배분하도록 하는 중요한 한 축이다. 언론은 정치 · 경제 · 교육 제도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제도의 하나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민주적 공동체로서 우리 사회의 발전과 번영은 지속되기 어렵다.

미국 신문편집인협회(ASNE : The American Society of Newspaper Editors)의 강령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대중의 복지에 공헌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스크립사(Scrips Company)에서 간행하는 신문들의 발행인란(masterhead)에는 “빛을 비추어주면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곧, 언론의 생명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공공에 대한 봉사를 도모하는 데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언론, 특히 거대 언론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언론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권력에 의해 통제를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권력보다 더 원천적 제약 세력인 자본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6월 “저널리즘은 여론에 막대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집단, 이득, 특정 이익단체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에 이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위탁되었다는 인식에서 수행하는 임무 - 어느 의미에서는 신성한 - 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은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아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등장하면서 수익 구조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언론은 공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언론은 기본적으로는 사기업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생존하는 것이 어려우면 공공성보다 상업성을 추구한다. 요즘에는 경영진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대부분 언론의 사명이나 편집권의 독립보다 자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실정이다. 광고를 따내려고 홍보성 기사를 써대면서도 부끄러움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언론산업의 수익구조가 악화될수록 더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이너 언론들이다. 우리나라의 마이너 언론 중 일부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 언론산업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광고 의존도가 높다. 신문기업은 광고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고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르면 3년, 길면 10년 안에 마이너 언론, 특히 몇몇 신문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다른 미디어에 통폐합될 것으로 예상한다. 언론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광고 의존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보수적 신문이 지배하는 독점적 구조로 변하고, 논조의 다양성도 사라지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여론 다양성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미디어랩, 곧 방송광고 판매대행 제도를 둘러싼 갈등을 살펴보자. 지난해 10월 SBS는 직접 광고영업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조선 · 중앙 · 동아 · 매일경제 등 4개 종편사가 광고주들을 초청해 채널 설명회를 갖고, 광고 영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자 SBS도 미디어랩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초 개국한 종편들이 자유롭게 광고영업을 할 수 있게 되면 SBS뿐 아니라 MBC도 직접 영업을 하겠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편사 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광고시장을 둘러싸고 약육강식의 무한 경쟁에 빠져들어 그동안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광고수입을 배분받아 온 종교방송과 지역방송은 물론 마이너 언론사들 중 상당수가 큰 어려움을 맞을 것이다. 거대언론만 살아남고 일부 마이너 언론은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경영의 위기보다 무서운 것은 신뢰의 위기

그렇다면 거대 언론 또는 보수 언론들이 한국사회의 모든 계층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난해 11월 퇴직한 박시환 전 대법관의 말 가운데 일부를 인용해 보자. 그는 대법관 시절 진보의 아이콘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수자들의 이익과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했다.

“소수는 서럽고 분하기도 하다. 다수는 소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구박하기도 한다.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지 않으면 소수가 사법제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회의 가치 분포가 9:1이라면 대법원 구성은 8:2 정도로 약자에 대해 플러스알파를 해주어야만 비로소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 소수를 이해하는 정도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소수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사람이 들어가서 입장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거대 언론들은 소수의 어려움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언론이 정의 실현에 기여하려면 먼저 경영진을 비롯한 언론계 종사자들의 각성과 엄격한 직업규범의 회복이 절실하다. 최근에는 특히 주요 신문들이 기업 또는 상품을 홍보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광고나 협찬을 얻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자본 권력을 감시·견제해야 할 언론이 자본에 영합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경영의 위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신뢰의 위기다. 경영의 위기는 어떻게든 회복할 수도 있지만 신뢰가 추락하면 회생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

신문기업은 사실상 신뢰로 먹고 사는 기업이다. 어느 기업보다도 높은 윤리가 요구된다. 각 신문의 최고 경영자와 편집국 기자들을 비롯한 모든 종사자들은 편집권의 자율성 확보와 윤리 경영만이 지속가능한 경영의 원천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개별 신문사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함께 자율적으로 홍보성과 광고성 기사 게재를 자제할 틀과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방송 또한 새로 진입한 종편과 치열한 광고 수주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어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수가 배려하지 않으면 소수는 제도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와 교회 언론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회교리의 확산 운동도 정의 구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천주교는 지난 50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의 준거나 실천 지침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미흡했다. 그러다 보니 현세 질서에 하느님의 정의와 그리스도의 정신을 불어넣거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각 분야의 공동선을 증진하도록 북돋우는 데 한계가 있었던 측면이 있다.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천주교 신자들의 교회 안 행동과 교회 밖 행동이 제각각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적지 않다. 그것은 신자들의 신앙이 성숙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회 차원에서 사회교리 확산에 노력을 덜 기울인 탓도 있을 것이다. 사회교리가 평신도들의 판단과 행동 지침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면 그런 괴리 가운데 일부는 메워질 수도 있다. 사회교리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 곧 모든 사람 하나하나가 존엄한 인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려고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인권은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서 출발한다(「간추린 사회교리」 107-108항, 154항 참조). 이는 정의 실현과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선거에서 확인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영향력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뉴스 공급 주체로서 현재의 주요 신문과 방송 등 거대 언론들의 영향력은 앞으로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본다. 반면 뉴스 공급자로서의 SNS의 영향력은 일정 범위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교회 언론들도 SNS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물론 언론도 사회의 양극화 위기의 심각성을 각별하게 인식해야 한다. 생태계의 위기는 범지구적인 것이지만 양극화 위기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기도 하다. 부의 편중과 양극화 심화는 분열과 폭력을 부른다. 그것은 부유층을 표적으로 하는 ‘인질산업’ ‘납치산업’이 성행하는 일부 남미 국가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우리도 남미 국가처럼 될 수도 있다. 박시환 전 대법관이 지적했듯이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지 않으면 소수는 제도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시장원리만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어려운 계층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는 자유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미덕과 좋은 삶,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하준 교수는 기회의 균등에 그쳐서는 안 되고 어느 정도 결과의 균등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핵심은 성경에서 가르치듯이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재화를 선용하도록 인도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재벌과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에 앞장서도록 하고 부자감세 철회에서 더 나아가 부자증세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마이너 언론들을 보호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간의 탐욕을 줄여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삼라만상을 당신이 보시기에 좋게 다스리도록 맡기셨을 뿐이다. 인간의 탐욕과 성장지상주의에서 비롯된 생태계의 파괴는 지구적 차원의 멸종을 부를 수 있다. 기상재해, 자연의 역습이 그 전조이다.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삶을 영위할 때 비로소 평화와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언론이 스스로 편집권과 자율성 확보와 윤리 경영, 사회교리의 확산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존폐의 기로에 서있는 언론 기업 종사자들에게 정의 실현을 해야 한다든지,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존폐의 기로에 서있는 언론 종사자들에게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광고 효과와 시장경제 원리를 따르는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도와주기를 바랄 수도 없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언론산업 진흥책, 특히 마이너 언론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독립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려면 재정적인 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공공성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특히 신문산업 회생 방안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비영리언론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2007년에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2009년에 텍사스트리뷴(Texas Tribune)과 아이와치뉴스(Iwatchnews), 2010년에는 민포스트(Minnpost)가 출범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터넷(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면서 광고가 아닌 비영리재단들의 지원으로 신문이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미디어 정치경제학 전문가 그레이엄 머독은 방송과 뉴미디어의 사적 소유를 막고 공익성과 민주주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디지털 공유지’를 구축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신문사를 비영리기구화 또는 공영화하거나, 재정자립형으로 설립하는 등 대안적 언론의 모델을 연구하는 등 공정성과 정의의 실현을 담보할 수 있는 미래 청사진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 황진선 대건 안드레아 - 법률신문 편집국장. 전 한국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 회장.

[경향잡지, 2012년 1월호, 황진선 대건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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