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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전통문화와 동양생명관 (5) 축제와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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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30 ㅣ No.943

[생명의 문화] 전통문화와 동양생명관 (5) 축제와 생명

사회적 생명성 깨닫는 삶의 마당


인간이 신에게 예를 갖추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회적 존재로서 공동체의 안녕과 결속을 도모해 미래를 향한 진로에 장애가 없기를 기원하는 공동체 행위를 축제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축제가 ‘시경’에 보이는 대로 제정일치시대부터 민간의 계절 축제와 종교 제례를 통해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 부족국가 시대부터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과 같이 지역마다 일정한 절기에 고유한 축제를 발전시켜왔다. 축제는 나라마다 문화적 다양성을 나타내면서도 공통적으로 사회적, 종교적, 예술적 의미를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이러한 축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바로 생명성이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나타나는 역동적 생명성은 서로 공동의 운명체임을 확인하게 하고, 공동체 갈등을 해소하며, 생명을 위협하는 역경을 극복할 힘을 얻어,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축제 가운데 생명성을 고무하는 세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가 축제의 사회성이다. 축제는 홀로 진행될 수 없다. 우리나의 대동굿과 마찬가지로 축제는 서로 어우러지며 한 운명체임을 확인하는 자리다. 함께 준비하는 가운데 누구도 소외됨 없이 고유한 역할을 확인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된다. 열린 공간과 시간에서 서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격려한다. 무질서한 가운데 질서를 창조하고 생명성을 열어간다. 그러므로 축제는 공동의 여가로서 이상적 생활세계를 창조하는 자리이다.

장자의 말처럼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관계적 존재이다. 개인 삶은 궁극적으로 사회를 지향하고 사회 안에서 완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내는 전통 명절과 관혼상제 의례는 모두 특정한 사회적 관계와 역할을 확인하고 새롭게 하는 축제일이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각자는 사회적 생명성의 의미를 깨닫고 고양시킬 계기를 갖는다.

두 번째가 축제의 종교성이다. 축제는 또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근본적 원동력을 경험하는 자리다. 의례에서 시작되는 축제는 종교적 경험을 심화시키고 공동체의 진로와 난제들을 구체화시킨다. 고통의 상호적 원인을 인정하고, 그 의미를 깨닫고, 나아가 수용할 수 있는 삶의 자세를 갖게 한다. 이 과정에서 축제는 삶의 정황을 연극적 행위로 극대화한다. 이것이 바로 의례적 행위 안에 나타나는 축제의 연행성(演行性)이다.

연행을 통해 나타내려는 것은 인간의 실존성이다. 연행의식 가운데 개인은 불합리한 운명을 이해하고 실존적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한 개인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위기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각자 고유한 운명 앞으로 걸어 나아가는 거룩한 여정을 시작하게 한다. 이 여정이 홀로 걷는 여정이 아님을 알 때 신비한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된다. 감동의 축제가 끝난 뒤에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 다가온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세 번째가 축제의 예술성이다. 축제는 우리 삶을 압축하고 있는 한편의 드라마이며 행위예술이다. 우리의 삶처럼 반복할 수 없는 고유한 삶의 예술성을 재현한다. 축제를 구성하는 음악과 미술과 서사와 행위 예술적 요소는 모두 삶의 진실을 표현하는 방편이며 나아가 인격의 표현이 된다.

축제가 절정에 이르면 개개인은 고유한 소리와 춤사위로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마침내 혼돈의 몰아경으로 들어서게 된다. 함께 내는 소리와 움직임은 진실로 일치를 향한 삶의 고백이며 염원이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동하는 생명의 역동성 안에서 나타나는 창조적 질서의 아름다움이다. 이때 축제는 공자가 이상적 문화에 대해 “지극히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지극히 선하다”고 언급한 대로 아름다움과 도덕의 일치를 지향한다. 그리고 축제는 우리에게 진실된 삶으로 향하는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현대의 축제는 일시적 사회성에 그치고, 신비성이 없는 열정에만 몰입하며, 삶과 유리된 예술을 지향한다. 모임은 있으나 연대가 없고, 환호가 있으나 사려가 없고, 아름다우나 간직할 마음의 여백이 없으므로 삶의 정황을 반영할 수 없다. 따라서 축제는 사회적 생명성을 고무하지 못하고 일시적 즐거움으로 그치고 만다.

사람은 축제 없이 살 수 없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축제는 전통 축제에서 보듯 개인의 생명성이 드러날 삶의 마당이며, 일치와 사랑을 체험하는 거룩한 자리이자 공동의 생명성이 드높여질 창조적 물결이 돼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2년 6월 3일, 이향만 교수(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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