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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구원의 열망, 인간에 대한 사랑 - 연옥약설(煉獄略說) 연옥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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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2 ㅣ No.352

[신앙 유산] 구원의 열망, 인간에 대한 사랑 : 연옥약설(煉獄略說) 연옥고남

 

 

머리글

 

그리스도교 신앙은 다른 어떠한 가르침보다도 인간 사이의 형제애를 강조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이 형제애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 이와 죽은 이 사이의 통공(通功)을 통해서도 지속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말하는 교회의 가르침은 형제애에 관한 이와 같은 신학적 이해와 무관하지는 않다. 한편 가톨릭의 전통과 신학에서는 연옥(煉獄)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스스로 공덕을 세워 연옥으로부터 구원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연옥 불의 고통을 통해 자기 정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했다. 그리고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이승에 살고 있는 신도들의 기도가 요청되었다. 산 사람이 드리는 이 기도는 죽은 이들과 형제애를 다지는 것이었다. 지상에서 살고 있는 어느 한 신도가 살아 있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영혼과 육신을 가진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 교회의 전통에 일찍부터 연옥에 대한 이해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가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은 오늘의 우리 교회에도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11월이면 위령성월이라 하여 연옥 영혼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드리는 일은 우리에게도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전통과 관련하여 연령에 관한 각종 기도문이나 기도서들이 번역되었고 간행되어 읽혀졌다.

 

 

연옥에 대한 인식의 전개

 

연옥이란 소죄를 풀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불에서 자신의 죄를 정화한다고 하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장소 또는 상태를 말한다. 연옥의 존재에 대해서는 구약성서(마카 12,42)나 신약성서에도 암시되어 있다(마태 12,31-32). 그러나 연옥에 대한 뚜렷한 인식은 교회 전통이 쌓이는 과정에서 형성, 강화되어 왔다. 예를 들면 성 아우구스띠노도 죽은 이들을 위한 전구(轉求)를 인정한 바 있었다.

 

연옥과 관련한 신심은 이와 같이 교회사의 초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교회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고대 교회나 중세 교회의 일각에서는 연옥의 존재를 부인하는 의견들이 제시된 바 있고, 이러한 견해들은 교회 당국으로부터 단죄되기도 했다. 연옥에 대한 믿음이 교리로 정립된 때는 대략 13세기경이었다. 즉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는 연옥에 대한 교리를 공식으로 인정했다. 또한 1439년 피렌체 공의회에서도 이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의 과정에서 마르틴 루터가 연옥에 대한 교리를 부정하였다. 이에 가톨릭 교회에서는 연옥에 관한 교리를 재정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1545년에 시작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연옥 교리를 다시금 확인했다.

 

오늘의 역사학자들은 연옥에 대한 교리가 3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오랜 기간을 거쳐 확정된 것으로 설명한다. 특히 연옥 교리를 1170년경부터 1220년경 사이에 뚜렷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옥 교리가 확정된 배경으로 그리스도교적 봉건사회의 변동 현상을 다방면에서 걸쳐 지적하기도 한다.

 

이 연옥 교리는 우선 신학자나 성직자와 같은 종교 엘리트들 사이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5세기 초엽에 이르러 연옥 신앙이 유럽 도시와 농촌의 신도들에게 전파될 수 있었다고 논한다.

 

 

한국 신도들의 연옥 인식

 

16세기 중엽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확립된 연옥 교리는 17세기 초엽 중국에 건너온 유럽의 선교사들에 의해 한문 교리서 등을 통해서 중국인들에게 전파되어 갔다. 1673년 중국에 도착한 몬테이로(Jean Monteiro, 1603~1646년) 신부는 “연옥도문”(煉獄禱文)을 지어서 중국 교회에 연옥 신심의 불을 지폈다. 그리고 라우레티(da Cruz Laureati, 1664~1727년) 신부도 1722년도 이전에 “연옥통공경”(煉獄通功經)을 간행하여 중국에서 연옥 신심을 강화시켜 주었다. 그들은 유럽에서 확립된 당대 최신의 신학을 중국에 전했던 것이다.

 

그런데 1801년, 박해 당시에 한글로 번역된 서적들을 검토해 볼 때 당시의 일반 신도들이 연옥에 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미지수이다. 1801년 전주에서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의 편지들을 통해서 당시 신도들이 가지고 있던 신심의 특징이나 교리 이해상의 독특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순이의 편지에서도 아직까지 연옥이나 연옥 영혼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를 감안할 때 우리는 그 당시 연옥에 대한 교리가 그렇게 널리 보급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조선 교구 제2대 주교인 앵베르 주교는 1838년 연옥 연옥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연옥에 대한 그의 이러한 신심을 볼 때 그가 조선에서 전교 활동을 하면서 연옥에 관한 신심을 조선인 신도들에게 널리 알려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이때의 신도들은 선교사의 가르침을 통해서 연옥 교리와 같은 비교적 새로운 유럽의 신학 체계를 듣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연옥에 대한 교리는 1860년대 전반기에 간행된 “성교예규”를 비롯한 각종의 한글 교리서와 기도서들을 통해서 조선 신도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어 갔다.

 

한편 중국인 예수회원이었던 이체(李?, 1840~1911년) 신부가 1871년 상하이의 자모당(慈母堂)에서 단권으로 된 “연옥약설”(煉獄略說)을 간행했다. 이 책은 아마도 1876년 개항 이후 어느 때 우리 나라에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연옥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얻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 책에 실린 내용

 

“연옥약설”은 개항기 어느 시점에서 한문에 능통한 한 조선 사람이 한글로 옮겼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은 하느님을 받들며 사 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임을 말한다. 그리고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방도 가운데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일임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를 위해서 이승에 있는 신도들의 그침 없는 기도가 필요함을 제시하면서 망자의 구원을 전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덕을 키우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가 구원에 대한 열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극명하게 나타내 주는 가치 있는 행위라고 인식하고 있다.

 

“연옥약설”은 모두 8편 38장으로 되어 있다. 제1편은 연옥의 존재를 성경과 성전 그리고 이성으로 논증하고 있다. 그리고 제2편에서는 연옥에서 받는 형벌을 논한다. 여기에서는 연옥불이 영혼의 죄를 정화시켜 주지만 그 맹렬한 형상으로 인해서 연옥 영혼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제3편은 연옥 영혼의 경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즉 소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연옥에서 단련이 요청됨을 말하며, 연령은 스스로 공을 세울 수 없는 존재임을 밝혀 주고 있다. 제4편에서는 연령들은 연옥의 고통 속에서도 승천할 희망을 갖고 즐거워함을 논한다.

 

이에 이어서 제5편은 연옥 영혼을 구하는 일이 가장 아름다운 공덕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6편에서는 연옥 영혼의 죄를 대신 기워 주는 일에 관해서 논하고 있다. 제7편에서는 연옥 영혼을 구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사항을 제시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미사의 봉헌, 묵상 신공, 애긍시사와 극기들과 같은 방법을 서술해 주고 있다. 마지막 제8편은 연령의 구원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신심 단체인 증망회(拯亡會)의 규칙을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연령을 위한 기도가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으뜸이 되는 일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연령을 위해서 자신의 공을 사양해 줄 것을 권하고 있다. 한편, 이 책의 각 장마다 중세 이래 유럽 사회에 널리 전파되어 있던 연옥에 관한 각종 설화들이 제시되어 있다.

 

 

남은 말

 

이 책은 원래 책 이름에 따라 “련옥약설”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번역 사본에는 “련옥고남”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련옥고남”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연옥고난’의 오기(誤記)일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연옥의 형벌이 넘치고 고통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서 ‘연옥의 고람’(苦濫)이라는 뜻의 제목을 이 책의 번역자가 새롭게 구상해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고남’이라는 단어는 당시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쓰지 않던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연옥약설”과 같은 책의 수용은 우리 나라의 교회가 가톨릭의 중세적 신심에 본격적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그리고 이 신심을 통해서 당시의 교회는 우리 나라의 신도들에게 구원에 대한 열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령을 위한 선행을 강조함으로써 현세의 보상을 기대하지 아니하는 순수한 자선의 아름다운 행동을 권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교회에서 위령성월을 기념하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데에 있을 것이다.

 

[경향잡지, 1994년 11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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