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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조선 순교자를 기리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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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1 ㅣ No.69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조선 순교자를 기리는 노래들

 

 

교회사는 보통 글로 기록되지만, 음악으로 남기도 한다. 교회음악은 하느님에 대한 찬미의 기도이며,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다짐이다. 이 기도와 다짐은 시대의 특성을 포함한다. 시대의 특성을 찾으려는 이는 당대의 음악을 통해서도 교회사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박해시대 우리 나라에 입국했던 선교사들도 교회음악 안에서 살아 숨쉬었다. 그들은 선배 순교자를 노래하며 순교의 정신을 키워나갔다. 이 노래들은 순교자가 되어야 할 미래의 자신을 향한 스스로의 격려였고 다짐이었다. 이러한 다짐으로 그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며 순교의 행렬에 동참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음악으로 남아서 후배 선교사들을 격려해 주었다. 박해시대 우리 교회사에 등장하는 선교사들은 스스로 순교의 시를 쓰고 노래를 지었으며, 그들 자신이 순교자가 되어 노래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태어났다. 푸치니가 작곡한 ‘나비부인’이 프랑스와 전세계에 일본 문화를 전했던 것처럼, 조선의 선교사들이 남긴 아름다운 순교의 사실은 음악으로 남아 복음을 선포하고 조선의 순교정신을 전세계에 알리는 또 다른 선교사가 되었다. 이 음악은 조선교회사의 일부를 이루었다.

 

 

조선을 향하는 선교사의 마음

 

‘파리 외방 전교회’는 박해시대 우리 나라에서 복음을 선포하던 선교회였다. 파리에 있던 이 선교회의 신학교에서는 조선과 베트남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파견될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는 이 선교사들이 그리던 마음의 고향이었다.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이 신학교의 성가집에는 달레(Dallet, 1829-1878년)가 작사했다고 전해지는 ‘선교사 출발 송가’가 있다. 이 노랫말을 지은 달레는 「조선천주교회사」를 저술하게 된 사람이다. 이 노랫말에는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는 선교사들의 마음과 그들을 위한 기도가 잘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도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 성가집에는 조선교회와 관련된 노래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그 성가집 44번의 노래 제목은 ‘조선을 향하여’로 되어있다. 이 노랫말을 우리말로 바꾸어보면 다음과 같다.

 

“오, 조선이여! 오, 나의 기쁨이여! 오, 나의 새로운 조국이여, / 나는 너를 보고야 말며 / 너를 위해 내 삶을 바치리라. / 큰 배가 흔들거리며 항구에서 나를 기다리도다. / 안녕, 프랑스여, 나는 너를 떠나노니, / 순풍이여 네 나래를 펴라. / 나는 거기에서 더욱 아름다운 해변을 찾게 되리라. / 그렇다. 나는 죽어도 살아도 조선인이다.”

 

이 노랫말에는 조선사람이 되고자 했던 선교사들의 각오가 서려있다. 그리고 그 성가집의 52번은 ‘한 조선 선교사의 귀향’이고, 53번은 ‘머나먼 조선’이란 제목의 노래이다. 그리고 60번은 1866년 병인박해 때에 순교한 아홉 명의 프랑스 선교사를 추모하는 ‘조선의 아홉 순교자’이다. 61번 성가는 그 박해에서 순교한 볼리외(Beaulieu, 1840-1866년) 신부를 특별히 기리는 노래였다. 그리고 브르트니에르(Bretenieres, 1838-1866년)나 도리(Dorie, 1839-1866년) 신부의 순교를 찬양하는 노래도 별도로 작곡하여 수록하고 있다. 이 노래들 가운데 후에 성인이 된 볼리외 신부의 순교를 찬양하는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쓰여있다.

 

“바다에는 깊이가 있고, 바람에는 보드라운 미풍이 있듯이, / 하늘엔 숭고한 불꽃이, 땅에는 순교자가 있다네. / 피의 강에서 붉게 피어나는 꽃이여, 조선의 순교자여, / 첫번째 반열에 오르소서.”

 

 

프랑스 작곡가 구노와 조선교회

 

노랫말이 아무리 좋더라도 좋은 곡이 없으면 음악이 아니다. 선교사들이 지은 가사에 좋은 곡을 붙여준 사람으로는 ‘프랑스 근대음악의 중흥자’로 불리는 샤를 프랑스와 구노(Gounod, C. F., 1818-1893년)가 있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Ave Maria)”는 오늘날에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이 곡에서처럼 구노는 신선하고 밝고 세련된 선율로 많은 성가곡을 지었다. 구노는 달레가 작사한 ‘선교사 출발 송가’를 1843년경에 작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노는 파리 음악원 출신으로 앞날이 촉망되던 청년 음악도였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1666년 이래 회화와 건축 등의 분야에서 젊은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최고 입상자에게 ‘로마 대상’을 수여하고 3년간 로마에 파견하여 고전·고대의 문화를 연구할 수 있게 하였다. 로마 대상의 음악 부분은 1800년부터 시작되었는데, 1839년에 구노는 이 상을 수상하였다. 이 상을 받은 프랑스 작곡가 중에는 베를리오즈·비제·드뷔시 등 프랑스 근대 음악사를 장식한 쟁쟁한 작곡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1843년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 성당의 악장(樂長)이 되어, 파리 외방 전교회와 인연을 맺었다. 구노는 신학교 성당에서 봉사하는 것을 계기로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고, 1847년에 성 슐피스 신학교에 파리 외방 전교회의 외부학생으로 등록하여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의 꿈을 접고 1848년 전교회를 떠났으며, 1850년에는 성 슐피스 신학교마저 자퇴했다. 그뒤 그는 음악에 전념하면서 스승의 딸과 결혼해서 살았다. 그러나 아마도 그의 마음 어디엔가 선교사의 꿈이 남아있었기에 그처럼 아름다운 종교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곡가 구노는 조선교구의 제5대 교구장이며 순교 성인인 다블뤼(Daveluy, 1818-1866년)와 같은 시대에 파리 외방 전교회의 신학교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서로 아는 사이였으리라. 그러므로 구노는 자신이 머물렀던 신학교에서 배출된 선교사들이 1866년 조선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더욱 격앙되었으리라. 이 격앙된 마음을 승화시켜 그는 1869년 조선의 순교자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했다. 구노가 곡을 붙인 우리 성가곡 ‘무궁무진세에’(「가톨릭 성가」, 284번)는 자신이 친애했을 선교사 다블뤼를 비롯하여, 신학교 시절의 동료와 후배들의 순교를 기리는 송가였다. 그 순교자들은 구노가 한때 그렸던 선교와 순교의 꿈을 실현시켜 준 이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구노는 「조선천주교회사」를 쓴 달레와 서로 교감하면서, 달레의 시를 성가로 만들기도 했다.

 

 

맺음말

 

구노가 신학교를 마치고 선교사가 되었다면, 조선 선교사로 파견되어 우리 교회사의 일부를 장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구노는 이제 아름다운 곡들을 남긴 음악의 거장이 되어 우리와 만나고 있다. 그는 조선 선교지를 밟지는 않았지만, 그의 음악은 조선을 노래했고, 순교자를 노래하며 그 믿음을 밝혀주었다. 구노는 노래를 통해 조선 선교사의 순교에서 받은 자신의 감동을 전이시켜 주었다.

 

선교사들의 순교는 후배들의 모범이 되어 노래로 읊어졌다. 그들이 남긴 감동은 아름다운 음악을 내었고, 그 음악은 오늘의 우리 가슴까지도 벅차게 한다. 구노 음악의 선율과 조선 파견 선교사들이 불렀던 노랫말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 가슴의 떨림을 되살릴 수 있다.

 

[경향잡지, 2003년 2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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