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정을 위한 교서의 의미와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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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2-23 ㅣ No.317

“가정을 위한 교서”의 의미와 실천

 

 

시대의 징표에 대한 적절한 응답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대림 제1주일인 2004년 11월 28일에 “가정을 위한 교서”를 발표하였다.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의 인사말에 이어, 들어가는 말(1-6항), 제1장 참 가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7-31항), 제2장 무너져가는 우리나라 가정(32-44항), 제3장 사목적 대안(45-79항), 그리고 나가는 말(80-83항)로 이루어진 이 교서는 ‘시대의 징표(signum temporis)’를 제대로 읽고 응답하여야 하는 교회의 임무와 역할을 잘 보여준다. 교서 첫머리에 실린 주교회의 의장의 인사말처럼 이 교서는 “한국의 가정문제가 매우 심각하며 가정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국의 미래도 없다.”는 절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정이 어떠한 상황이기에 나라의 미래까지 위협하는가? 교서는 제2장 “무너져 가는 우리나라 가정”(32-44항)에서 “혼인과 출산을 삶의 ‘필수 요소’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여기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혼인의 유대는 ‘천생연분(天生?分)’이라기보다 인간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맺고 풀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 혼인 없이 동거하거나 이혼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가정 해체 현상은 자녀 부양과 교육, 노부모 봉양 등의 문제와도 맞물려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32항)고 지적하였다. 이에 따르면, 교서는 ‘혼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실천이 가정문제의 주요 원인이고, 문제 해결의 관건은 ‘혼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이라는 기본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혼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도전받는 ‘혼인 제도’

 

실제로 ‘독신’ 선호 경향만 보더라도, 교서에서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1990년에는 25-34세 여성 가운데 미혼자가 27%였는데 2000년에는 51%에 이르렀다(교서 각주 28 참조; 이하 ‘교서’ 생략). 더욱 심각한 이혼 문제의 경우, 인구 천 명당 이혼 건수를 가리키는 조이혼율이 “1993년 1.3건에서 1998년 2.5건으로 5년 만에 거의 두 배로 올라갔고, 2003년에는 다시 3.5건으로 높아졌다. 2004년 4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3년 총 이혼 건수가 1,671,000건(1일 평균 458쌍 이혼)으로 2002년의 1,453,000건보다 218,000건(15%) 늘어났다”(각주 29). 이혼의 피해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자녀와 노부모에까지 미친다. 가정문제의 여러 원인 가운데 ‘혼인’과 관련된 면을 특별히 부각시킨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이러한 인식은 제3장 “사목적 대안”에서 혼인 준비 교육의 강조로 연결된다. 

 

오늘날 혼인 제도는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서양 여러 나라에서 합법화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동성 결합(same-sex unions)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으로 결합하여 자녀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도록 한 창조주의 뜻을 명백하게 거스르는 것이다. 동성 결합의 합법화는 가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저해하고 가정의 붕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이 2004년 9월 29일 자신의 웹사이트(www.heritage.org)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1년에 동성혼이 합법화한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인구 가운데 이혼자 비율이 1992년 4.3%에서 2004년에는 6%에 육박하였으며, 전체 출생아 가운데 혼외 출생아 비율도 1992년 15%에서 2002년에는 30%에 근접하였고, 15-19세 임신 여성의 낙태율은 1990년 43.3%에서 2000년 62.7%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Patrick F. Fagan & Grace Smith, “The Transatlantic Divide on Marriage: Dutch Data and the U.S. Debate on Same-Sex Unions”). 그러므로 교서에서도 “동성 결합에 혼인 지위를 부여하고 동성 결합자에게 아이 입양을 허용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인 부모 아래서 양육받을 아이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인사말)임을 천명하며 동성 결합의 합법화를 분명하게 반대하고, 하느님께서 제정하시고 성사로 세우신 ‘혼인’ 제도의 수호를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혼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실천이 가정의 위기를 촉진한다고 볼 수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협력의 시대

 

하느님의 선물인 자녀를 거부하는 부부의 수가 늘어나는 것 또한 오늘날의 심각한 가정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서에서도 밝혔듯이, 통계청의 연도별 인구주택 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부부만 단 둘이 사는 가족이 1990년 9.3%에서 2000년 14.8%로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한국여성개발원 2004년 “전국가족조사 및 한국가족보고서(2003년 기준)”에 따르면, ‘자녀 없는 부부 가구’는 15.0%에 이른다(각주 32 참조). 이러한 상황이 되고 보니, 1960년대부터 인구 억제 활동을 전개해 왔던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가 2004년 6월에 이르러서는 출산 장려를 위하여 ‘저출산 대응 인구정책 표어 공모전’을 실시, 입상작을 발표하기도 했다(대상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금상 “한 자녀보다는 둘, 둘보단 셋이 더 행복합니다”, 은상 “하나의 촛불보다는 여러 개의 촛불이 더 밝습니다”).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 이래, 교회와 정부는 인구 문제 또는 출산 조절 문제와 관련하여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대립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라는 공동 과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정부와 협력하여 문제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며(여기에는 낙태를 사실상 무제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의 폐지 문제도 포함되어야 한다.), 교서에서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그리스도인 가정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가정을 초대”(인사말)하고, “교회는 정부의 가족 복지 정책의 올바른 시행을 위해서 조언하며, 정부와 협력하여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71항)고 밝힌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사실, 가정문제는 한국의 문제를 넘어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는 2004년 8월 17일부터 23일까지 우리나라(대전가톨릭대학교와 정하상교육회관)에서 아시아 20여 개 국가 18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8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최종 문서 “완전한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을 발표하였다.

 

 

천주교 신자 가정의 성화가 먼저

 

교서에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실은 언급을 회피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지만),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지닌 가정 의식, 혼인 의식, 생명 의식 등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에서 생명과 가정문제에 대한 사목적 대안을 마련하고자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주)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하여 일반인(가톨릭 신자 포함)과 가톨릭 신자 각각 1,000명을 대상(15세 이상)으로 실시한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조사”(자료수집기간: 2003년 11월 18일-12월 19일)에 따르면, ‘생명과 가정’에 관한 가톨릭 신자들의 의식과 실태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혼인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일반인보다 신자가 약간 낮았다(일반인 30.6%, 신자 28.6%). 이혼 불가라는 의견을 가진 비율은 신자가 높았으나(일반인 44.7%, 신자 54.2%), 신자의 가정에 이혼한 사람이 있는 비율은 일반인의 가정에 견주어 거의 비슷했다(일반인 10.6%, 신자 9.3%).

 

· 일반인의 34.6%, 신자의 36.3%만이 어떤 어려움에도 노인을 부양하겠다고 응답하였다.

 

· 청소년(15-19세) 중에서 신자의 가출 비율이 일반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일반인 7.9%, 신자 8.1%). 학교 폭력 등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공통적으로 높았으며, 이러한 청소년 탈선의 가장 큰 원인은 ‘가정 교육 잘못’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일반인 57.6%, 신자 58.4%).

 

· 혼전 성관계의 경우 신자는 찬반 의견이 비슷한 것에 견주어 일반인은 3분의 2 정도가 긍정적인 의견을 보여, 일반인이 신자보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혼전 성경험은 신자와 일반인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일반인 33.6%, 신자 28.6%). 또한 육체적, 정신적 외도 경험도 일반인과 커다란 차이가 없었다(일반인 38.9%, 신자 37.7%).

 

· 결혼 후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절반에 가까웠다(일반인 52.1%, 신자 52.6%).

 

· 낙태를 부분 또는 완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일반인 94.5%, 신자 87.6%였으며, 실제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은 일반인 40.1%, 신자 34.2%였다.

 

위의 조사 결과에 나타나 있듯이, 혼인과 가정문제에 관한 한,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일반인에 견주어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주교회의 “가정을 위한 교서”는 먼저 천주교 신자 가정을 위한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가정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천주교 신자 가정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서 생명을 전달하고 자녀를 가르치며,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교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 발전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여야 한다(22항 참조). 특히 신자 부부는 혼인성사의 힘으로 부부생활은 물론 자녀 출산과 교육을 통하여 성덕에 나아가도록 서로 도와 주어야 한다(19항).

 

 

교서 내용의 실천

 

교서 전체(총 83항)에서 제3장 사목적 대안(35개 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이상으로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제3장을 통하여 제시되는 사목적 대안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들의 교육, 특히 성·생명교육, 혼인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였다는 점이다(45-47항, 49항, 51-54항 참조). “교육은 부모의 기본 권리이고 의무이기 때문에(『가톨릭 교회 교리서』, 2221항 참조), 가정과 교육 기관에서 언제나 부모들과 긴밀한 협력을 이루는 가운데 실시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회는 보조성의 원리를 재확인하며, 학교는 부모와 함께 같은 정신을 가지고 성·생명 교육에 협력할 때에 올바른 양육이 가능하리라고 확신한다”(45항).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가 실제로 움직이지 않으면 가정의 위기는 극복할 수 없다. 이를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이, 2004년 12월 7일에는 10대 중학교 중퇴자 K군(15세), J군(13세), C군(15세) 세 사람이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 동안 절도, 폭행, 강간, 날치기 등 네 가지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들은 모두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드러났다(K군은 이혼한 노점상 어머니와 살다 2주 전 아동상담소에 맡겨졌고, C군은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어머니마저 가출해 2001년부터 보호시설에서 지냈으며, J군 역시 이혼한 부모가 모두 집을 떠나 보호시설에서 생활해 왔다고 함). 

 

둘째, 혼인 준비 교육을 대단히 강조하였다는 점이다(50-60항 참조). 교서의 내용은 교황청 가정평의회의 “혼인성사 준비”(Preparation for the Sacrament of Marriage, 1996.5.13.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제4호, 67-102면)를 주로 활용한 것이지만, 먼 준비, 중간 준비, 가까운 준비로 나누어 사목자와 부모가 담당할 교육 내용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셋째, 가정 중심의 통합적 사목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61-66항 참조). “사목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존하고 일치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전례를 거행하고 신자들을 사랑으로 인도하고 활기 있게 만드는 교회 활동 자체이다. 이 사목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면모를 갖추려면 가정이 교회 활동을 통합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부분적이고 개인적인 기준으로 사목 활동을 이끌어 왔지만 이제는 노인, 청소년, 어린이 등 특정 계층과 개인을 포함하는 가정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 사목 의식을 지닐 필요가 있다”(61항). 각 교구에서 활성화에 힘쓰고 있는 소공동체 사목도 무엇보다 가정들의 참여와 활동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교서는 가르친다(67항 참조).

 

이 밖에 가족 치료와 상담을 위한 전문인 육성, 가정사목을 위한 기관과 시설 운영, 매스미디어의 활용 등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방안이 ‘실천’되어야 비로소 가정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실천 없이는 가정 위기의 해결도 없다.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주교회의가 발표한 “가정을 위한 교서”는 한국의 심각한 가정 위기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며, 이 위기 극복을 위하여 천주교 신자 가정을 비롯한 한국의 모든 가정을 초대하였다. 천주교에서 제시하는 가정문제의 해법이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다. 

 

이혼이나 낙태를 적극 반대하는 천주교의 입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반인도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교서의 내용에 따라 천주교 신자들과 사목자들이 노력한 결과, 신자 부부들의 애정과 신의가 두터워지고 자녀들이 부모를 더욱 공경하며 자녀들 간의 우애가 돈독해지고 사회와 이웃에 적극 봉사하고 이바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일반인들도 천주교에서 제시하는 가정 위기의 해법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가정문제 해결의 여정에 모든 가정을 초대하는 일은 천주교 신자 가정들이 성화(聖化)된 삶을 살아갈 때에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천주교 신자 가정은 “2000년 전에 팔레스티나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익명과 침묵 속에 이루어진 거룩한 가정, 가난과 박해와 망명의 시련을 겪은 가정, 매일매일의 의무에 충실하고, 삶의 걱정과 시련을 견디어내며, 타인의 요청에 개방적이고 관대하며, 이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기쁘게 완수한 가정, 곧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으로 이루어진 성가정”(83항)을 본받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사목자들은 가정들의 그러한 노력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아울러 우리 교회의 오랜 숙원인 모자보건법 제14조 폐지를 위해서도 다시 한번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사목, 2005년 1월호, 이창영(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 윤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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