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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선조들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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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17 ㅣ No.368

선조들과 성경

 

 

성경의 재발견

 

우리 선조들에게 성경이 있었는가? 우리 선조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연중 주일과 축일의 독서에 해당하는 복음을 수록한 “성경직해광익”을 갖고 있었다. 이 책에 실린 복음성경의 분량은 4복음의 31%에 불과하지만 이 책으로 선조들은 복음 말씀대로 살았다. 물론 이 책은 한국교회가 스스로 편찬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여온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을 번역하여 재편집한 책이었다. 그러나 선조들은 이 책으로 신심을 길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활로 보여주고 숭고한 순교의 길을 걸었다.

 

글쓴이는 순교자들의 수기와 법정 증언록 그리고 많은 신앙의 유산을 읽으며, 성사라고는 세례성사밖에 받지 못하였고 종교교육도 거의 받은 일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신학적인 내용을 간단한 금언적(金言的)인 깊이있는 말로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그 지혜에 경탄하였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지은 달레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강의를 준비하려고 “성경직해광익”을 열독하다 보니, 늘상 순교자들에게 갖고 있던 궁금한 해답이 그 책 안에 있었다. 선조들의 성경인 “성경직해광익”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다.

 

선조들이 어떻게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소화하였는지 살피는 것이 순서였으나 이 방법을 가르쳐줄 교과서는 없었다. 다만 조상들이 성서로 접했던 “성경직해광익”의 원자료인 한문본 “성경직해”와 “성경광익”, 그리고 이 책을 전통적으로 읽어오던 구교우들의 신앙생활에서 간접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책들을 공부할 수 있었던 신도들이 양반 지식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학을 공부하던 방법을 성서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하였다.

 

 

성경을 어떻게 인식하였나

 

한문본 “성경직해”는 성경의 어원을 ‘에왕겔리온’이라 하고 이것을 복음(福音)으로 번역하였고, “성경직해광익”은 ‘복된 소식’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성경은 “천주께서 강생하신 후 사람들에게 친히 가르치시고(전하시고) 보여주신 것”, “주님의 성덕과 행적을 서술한 것”이라 하여 성경은 독서용 책이 아니라 예수의 삶 읽기, 신앙의 역동성을 강조하였다.

 

왜 성서라 하지 않고 성경이라 하였을까? 중국에서 성인이 저술한 것을 경(經)이라 하고 현인의 저술은 전(傳)이라 하였다. 여기서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 거룩한 하느님의 말씀을 높여 불러 성경이라 하였다.

 

이처럼 선조들은 하느님과 관계되는 것은 예사로 선택하지 않았다. 무엇이 신앙의 의미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거룩한 품위를 보존할 수 있는지 숙고하며 가려서 사용하였다.

 

“성경직해광익”은 성경을 영혼을 밝히는 빛, 횃불, 양식, 약, 불 등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영혼을 기르는 양식, 풍성한 잔치, 먹는다, 맛본다, 씹는다, 삼킨다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 만약 영혼이 살아있으면 강건하여 말씀을 즐겨 받아들이지만 병이 들면 거룩한 하느님의 말씀도 맛이 없고, 기쁘게 들리지 않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쁘지 않다고 하였다. 이 말은 유학에 잔뼈가 굵어진 지식인 신도들에게 익숙한 말이었다.

 

 

성경을 어떻게 공부하였는가

 

성경을 공부한다고 해서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을 그대로 연장하였다. 조선시대 어린이 교육을 위한 우리 나라 최초의 교과서인 “동몽선습”에서는 서당에서 글을 배우는 어린이들에게 독서법을 가르치고 있다.

 

* 책은 상세하게 천천히 글자를 보면서 글자마다 밝은 소리로 분명하게 읽어라.

* 한자의 뜻[訓]과 글자도 외울 것.

* 한 글자라도 빠뜨리지 말고 읽으며 억지로 외워서도 안된다.

* 여러 번 읽어 자연히 입에 오르면 오래되어도 잊혀지지 않는다(연송 암기).

* 천 번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문리가 통한다).

* 건성으로 읽지 말고 마음을 모아 집중할 것.

* 많은 책을 섭렵하려 하지 말고 한 권의 책이라도 정독하여라.

*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곧 사색하여라. 사색해도 통하지 않으면 작은 공책에 베껴두었다가 자주 읽고 생각하여라.

* 책을 눈이나 입으로 읽는 것은 손으로 베끼는 것만 같지 못하다. 대체로 손이 움직이면 마음이 반드시 따라간다. 그래서 스무 번을 읽더라도 한 번 베끼는 것만 같지 못하다(성서 쓰기 운동).

 

지식인 신도들은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공부 방법으로 성경, 교리 신심 서적을 읽었다. 이러한 공부 방법 중 어느 것은 오늘날의 성서공부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전통은 결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삶의 지혜를 주고 있다.

 

 

“성겸직해광익”를 어떻게 읽었는가

 

선조들은 성경과 신심 서적을 읽거나, 의무적으로 바치는 기도뿐 아니라 심지어 무엇을 기원하려고 바치는 기도까지 모두 신공(神工)으로 하라고 하였다. 신공은 신앙심의 단련, 영적인 단련, 신앙심의 노력을 뜻하였다. 성경을 읽거나 영적 독서를 하거나 교리를 공부하거나 기도하는 모든 일이 신심을 단련하고 함양하는 데 뜻을 두었다.

 

“성경직해광익”은 교우들이 성경을 묵상하고, 성인의 수양방법인 피정을 일상화하기 위한 책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이 세상을 태평성대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지식인 교우들은 자신들이 교육받아 온 대로 성경구절은 물론 성경의 주석과 강론 부분까지 암기하였다. 교우들이 옥중에서 보낸 편지에 복음의 강론 부분의 구절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직해광익”을 통째로 암기했다는 증거이다.

 

“성경직해”는 신앙의 규준인 성경과 성전(전통 : 교부들의 말씀)에 가장 충실한 책이었다. 그래서 어느 한 구절도 흘려버릴 수 없었다. “성경광익”은 “성경직해광익”을 묵상하는 사람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 영혼의 공부[神工]를 함에는 마땅히 천주 성은(聖恩)의 인도를 진실한 염원으로 기꺼이 따를 것.

2. 모든 세속일을 떠나야 하며 다른 생각으로 분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3. 성교회의 책을 볼 때는 반드시 묵상과 마음 공부와 서로 연결지어야 한다.

4. 당일의 공부는 미루지 말고 그날에 다할 것.

5. 묵상할 때 깨달아 알게 되어 마음이 움직이면 그 움직이는 생각에 따라 힘을 다하여 찾아 구하고, 거룩한 맛이 충만하여 마음과 정신이 기쁨에 이른 뒤에 다른 조목을 생각할 것.

6. 말씀이 나타내고 있는 내용의 속뜻을 얻지 못하면 중지하지 말고 인내를 다하여 천주께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기구할 것.

7. 영적인 노력은 말로 그치지 않고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8. 묵상할 때 좋은 생각을 얻으면 이를 빠뜨리지 말고 모두 마음에 둘 것.

9. 취침할 때는 마땅히 다음날 생각해야 할 묵상 제목을 준비할 것.

 

그리고 8일 동안 피정하는 방법으로 매일 세 차례 묵상하며 매번 모두 사각(四刻, l각은 15분, 4각은 1시간)씩 하는데 처음 1각은 준비하고, 다음 l각은 자기가 묵상해야 할 묵상 자료를 준비하여, 나머지 시간에 묵상하며, 그것이 끝나면 다시 1시간을 그와 같은 방법으로 반복한다.

 

이러한 피정 방법은 매일 할 수 없을 경우 가능한 한 자주 하도록 노력하였고. 사순시기와 대림시기에는 산속으로 들어가 고신극기를 하며 피정을 즐겼다. 이렇게 말씀의 쫀득쫀득한 맛을 만끽하며 살았다.

 

 

글 읽기와 삶 읽기

 

하느님의 말씀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대상이었다. 선조들은 성경 말씀을 깨닫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삶에서 체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 한 예로 정약종은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의 원초적인 사랑의 체험인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으로 깨달았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모든 것을 고루 갖춘 뒤 자식을 낳는 부모처럼, 모든 조건을 마련하시고 맨 나중에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선조들의 묵상법은 대화식이었다. “묵상지장”은 교우들에게 묵상법을 이렇게 가르쳤다. “묵상이란 하느님과 마주하여 하느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요긴한 것을 기도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친밀하게 내왕함이 마치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하는 것”이라 하였다. 선조들은 성경을 부자가 마주앉아 대화하듯 읽었다. 그러나 성경은 글이 아니라 곧 현존하여 계신 그리스도였다.

 

1880년대부터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의 입국이 활발해지면서 성직자의 성사 중심으로 신도들의 신앙이 유지되었다. “성경직해광익”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한국교회의 기억 속에는 성경 말씀이 위주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던 시대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먼 옛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그 시대에는 신앙생활 따로 일상생활 따로 분리되는 현상이 적었는데 말이다.

 

[경향잡지, 1998년 11월호, 김진소 대건 안드레아(전주교구 신부 · 천주교 호남교회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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