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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을사추조 적발사건과 가성직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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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1 ㅣ No.23

[신유박해 200주년 특강 지상중계] 을사추조 적발사건과 가성직제도


이승훈 인호없이 성사집전…사제 영입, 복음전파에 큰 기여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신유박해 200주년(2001년)을 앞두고 매달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신유박해 200주년 특강'을 마련하고 있다. 3일 세 번째로 열린 '을사추조적발사건과 가성직제도'에 관한 여진천(원주교구 배론성지) 신부의 특강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1785년 3월 이벽, 이승훈, 권일신,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등이 장례원 앞에 있는 김범우의 집에 모여 기도하던 중 관헌에 의해 적발된 사건이 일어났다. 조선후기 박해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정리한 '벽위편'에 보면 사건의 진상이 잘 드러나있다.

 

이벽은 푸른 두건을 어깨까지 드리우고, 이승훈과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권일신 부자를 제자라 일컬으며 책을 옆에 끼고 앉아있었다. 이벽이 설법하는 것이 유가의 스승과 제자간 예법보다 엄격했다. 추조(형조의 별칭)의 금리가 술 먹고 노름하는 것인가 의심하여 들아가보니 모두가 푸른 수건을 쓰고 거동이 이상스러워 체포했다. 당시 추조판서 김화진(1728∼1803)은 그들이 양반의 자제로서 잘못 들어간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 중인 김범우만 가두어 유배시키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이 사건으로 한때 표면화됐던 서학실천운동은 일대 타격을 받았다. 천주교를 공격하는 통문들이 돌려졌으며 신자들은 배교를 강요당했다.

 

1786년 봄 이승훈을 위시한 교회지도자들은 모임을 갖고 고해성사를, 가을모임에서는 미사와 견진성사를 집전키로 결정했다. 우선 이승훈이 신부로 선출됐고, 그는 권일신, 홍낙민, 유항검, 이존창, 최창현 등 10명을 신부로 임명해 함께 성사를 거행했다. 그들이 집전한 성사는 기대했던 대로 신자들의 열성을 촉진시키고 신앙전파에 새로운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유항검은 성사에 관한 교리서를 숙독한 결과 그들이 집전하는 성사의 유효성에 관해 중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사제직에 인호가 필요하고 따라서 인호가 없는 사람은 사제직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는 이승훈에게 사제직은 인호를 박아주는데 이승훈은 그 같은 인호를 선교사들로부터 받지 않았으므로 다른 사람을 사제직에 올릴 수 없으며, 따라서 사제품을 받지 않고 인호가 없는 성사를 집전하고 있으니 독성죄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성사를 중단하고 북경 선교사에게 밀사를 보내 필요한 지시를 구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이승훈은 성사를 거행한 지 2년만에 이를 중단했다. 그러나 북경교회에 밀사를 파견해 필요한 지시를 얻는 문제는 계속되는 정부의 감시와 신자들의 가난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교회의 밀사인 윤유일은 1789년 말 북경선교사들에게 보내는 이승훈의 서한을 갖고 갔다. 이승훈은 자신이 영세하고 귀국한 이래 새 공동체가 형성돼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동안 성사를 집행해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음을 고백하고, 성사가 중단돼 실의에 빠진 한국교회에 구원의 손길을 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에 선교사들은 신자들이 범한 독성죄를 무지로 돌려 책망도 않고, 신자들이 상등통회(참회의 동기가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는 '완전한' 통회)를 통해 구원받도록 노력할 것과 사제를 영입하는 확실한 방법을 강구할 것을 권고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국교회는 1790년 7월 윤유일을 또 다시 북경에 파견했다. 이승훈은 윤유일 편에 전한 서한에서 선교사들이 지시한 데 대해 교우들이 상의한 결과 상등통회에만 의지할 수 없어 선교사 영입이라는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면서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다. 이에 북경 주교는 이듬해 선교사 파견을 약속했고, 그 결과 1794년말 주문모 신부가 입국했다.

 

가성직 제도는 비록 그 자체가 불법이고 또 성사도 세례성사를 제외하면 모두 무효였다고 할지라도 사제를 영입하고 신자들의 신앙에 대한 열의를 북돋워 복음을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평화신문, 2000년 5월 7일, 여진천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정리=박주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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