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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회고와 전망: 공권력이 가장 먼저 솔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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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2 ㅣ No.1031

[경향 돋보기 - 회고와 전망] 공권력이 가장 먼저 솔직해야 한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동일한 헌법 아래서 여섯 번째 대통령이 탄생했다. 국민들은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찾아올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역대 선거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 무차별적으로 일어난 참으로 희한하고 해괴한 선거였다.


참으로 희한하고 해괴한 선거

첫째, 링 위에서 기량을 겨루는 선수들보다 링 밖에서 관전하는 사람이 판을 주도했다. 제1야당 후보가 사퇴한 장외 후보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참담한 일도 발생했다. 한마디로,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로 등장한 ‘안철수 현상’이 지배했던 선거였다. 하지만 새 정치에 대한 어젠다를 제시하고 주도했던 안철수 후보는 기성 정당정치의 벽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둘째, 산 사람보다는 오히려 죽은 사람이 주목받는 ‘유령 대선’이었다. 여야 후보는 사라지고 ‘박정희 대 노무현’ ‘독재자의 딸 대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비정상적인 구도가 힘을 받고 있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미래로 나아가야 할 대선이 ‘과거 대 과거’의 구도를 만들면서 거꾸로 갔다. 여야 후보들이 안고 있는 숙명과 운명으로 인해 이런 구도가 만들어진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가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박 후보는 권위주의에 매몰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이었던 민주성을 강화해 ‘민주적 박정희’로 거듭났어야 했다. 반면, 문후보는 대결의 정치에 앞장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취약했던 포용성을 강화해 ‘합리적 노무현’으로 탈바꿈했어야 했다. 두 후보의 과감한 변신이 없었기 때문에 새 정치를 모태로 하는 ‘안철수 현상’이 소멸되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 유력 대선후보들이 반성하고 무한 책임을 지는 모습보다는 자기모순과 무책임한 구호 정치에 빠졌다.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MB) 정부도 민생에 실패했다.”면서 “과거 정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과 정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심판하는 것이다. 현 정부를 민생 실패 정부로 규정하면 집권당 후보는 당연히 심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허물은 감추고 상대 후보에게 참여정부 실패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박 후보의 주장은 반성과 성찰이 없는 자기중심적 발상이었다.


박정희 패러다임과 김대중 패러다임

이번 대선은 한국 대선 사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보와 보수가 총결집해서 치른 선거였다. 후보들마다 국민 대통합을 내세우면서 실제 행동에서는 이념적 편가르기에 혈안이 되었다. 후보들의 말과 행동이 이렇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선거가 선거답지 못했다. 지난 대선은 20년 만에 총선과 같은 해에 치러졌다. 그런 의미에서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중대선거란 단순한 통상적인 선거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정하고 사회의 틀을 잡는 ‘주춧돌을 놓는 선거’이다.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구축을 위한 토대가 만들어지기를 학수고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이다.

그러나 어떤 집단이 갖고 있는 생각의 틀(방식)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한 개개인이 주어진 조건에서 생각하는 방식 또한 패러다임이라고 말한다. 이런 패러다임이란 말은 라틴어 ‘파라디그마’에서 유래한 단어로 원래는 과학용어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모델, 관념, 지각(知覺), 시각, 준거의 틀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좀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패러다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말한다.

패러다임이란 용어는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1962년)에서 처음 제시했다. 쿤은 패러다임을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 · 이론 · 관습 · 사고 · 관념 · 가치관 등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 또는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했다. 쿤에 따르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나타나면, 이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연구·탐구 활동을 하는데, 이것이 정상과학이다.

이어 정상과학을 통해 일정한 성과가 누적되다 보면 기존의 패러다임은 차츰 부정되고, 경쟁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난다. 그러다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한 시대를 지배하던 패러다임은 완전히 사라지고, 경쟁관계에 있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고, 항상 생성 · 발전 · 쇠퇴 · 대체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는 크게 두 개의 패러다임이 존재했다. 하나는 박정희 패러다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김대중 패러다임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핵심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하고, 이익집단의 활동도 억압되며, 언론활동도 통제되는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였다.

또한, 국가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국가는 원칙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가가 직접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본과 금융에 대해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민주주의 암흑 시기’를 맞이했었다.

김대중 패러다임은 박정희 패러다임의 대척점에 있었다. 민주주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인권이 존중되며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김대중 패러다임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였다. 그 과정에서 민주 대 반민주, 대중 대 재벌, 민족(통일) 대 체제(통일), 호남 대 영남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지속되었다.


‘한국정치 4.0 시대’를 열자

이제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박정희 패러다임과 김대중 패러다임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대체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 정치를 위한 문이 열리고 길이 보일 것이다. 분명 새 대통령은 정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 ‘한국정치 4.0 시대’를 열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정치 1.0’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권위주의 체제’이다. 무소불위의 대통령이 ‘짐은 국가다.’라는 망령 속에서 사회를 지배했다. ‘한국정치 2.0’은 YS와 DJ로 상징되는 ‘권위적인 민주주의 체제’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군부 독재체제와 저항하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행태를 유지했다. 민주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보다는 청와대가 모든 정치과정을 주도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를 보였다. 곧, 제도화된 권력보다는 여전히 ‘개인화된 권력 구조’가지배적이었다.

‘한국정치 3.0’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보여준 ‘대결적 민주주의’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 관용은 실종되었고,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주를 이루었다. 이런 대결 정치 속에서 여당은 철저히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무력화되었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치중했다. ‘한국 정치 4.0 시대’는 ‘합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힘(Power)’에만 의존하고, 진보와 보수 간 ‘양극단(Polarization)’의 대결에 매몰되고, 종종 ‘포퓰리즘(Populism)’에 의존하는 ‘3P 정치’였다. ‘한국정치 4.0 시대’에서는 ‘타협(Com-promise), 협조(Co-operation), 합의(Consensus)’ 등 ‘3C 정치’가 토대가 된다. 그런데 ‘한국정치 4.0 시대’를 열어가려면 새 대통령은 무엇보다 은폐와 거짓말로 불신과 불화가 판을 치는 사회 분위기를 일소하고, 정의와 공정 그리고 평화가 넘치는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

이를 위해 첫째, 새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국정에 힘써야 한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 완전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것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상대방과 대화해서 더욱 완전한 것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 요소인 관용은 절대로 시혜가 아니다. 내가 맞고 옳지만 양보하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상대방의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국정에 실패한 근본 이유는 이런 민주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만과 탐욕에 빠졌기 때문이다. 국민을 가르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는 ‘계도 민주주의’와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자신은 선이고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극단과 대결의 정치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둘째, 새 대통령은 모든 것을 힘으로 몰아붙이려는 수직적 리더십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과 리더십에 대한 차이를 명확하게 깨달아야 하다. 권력은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지도자)이 추구하려는 목적만이 중요하며 영향을 받는 사람(구성원)의 의견은 무시된다. 곧, 지도자와 구성원 간에 공동으로 추구하려는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성원의 자발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물리적 강제력과 지시만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권력에서 지도자와 구성원 간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사자의 용맹성에 기초로 하는 영향력의 행사이다.

반면, 리더십은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지도자와 구성원 간에 공동으로 추구하려는 목표가 존재한다. 따라서 리더십에서는 지시와 처벌보다는 설득과 자발성이 지배한다. 다시 말해, 리더십에서는 지도자와 구성원 간의 관계는 쌍방향성을 띠고,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여우의 총명성을 기초로 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권력은 리더십이 행사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며, 따라서 권력이 없어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곧, 권력에만 의존하는 리더십은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국민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한국의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권력만 행사했지 리더십은 발휘하지 못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셋째, 새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논리적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특히, “최고 권력자의 의지만 있으면 개혁이 가능하다.”는 오류이다. 권력자의 의지에만 의존하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권력자의 의지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물리적 강제력과 같은 권력에만 의존하는 개혁은 필연적으로 개혁 저항 세력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곧, 이러한 개혁은 설득과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리더십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권력의 힘이 빠지면 용두사미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집권초기에는 권력이 천년만년 지속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자신이 구상한 개혁을 세차게 밀어붙이지만 5년 단임의 구조적인 한계 속에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권력 누수는 필연적으로 대두되고 개혁은 미완으로 끝이 난다.


공권력이 가장 먼저 솔직해져라

“개혁의 주체와 객체는 분리될 수 있다.”는 논리적 오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이러한 논리는 보통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항상 개혁의 주체이고 나머지는 개혁의 대상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대 정치는 한마디로 ‘대의 민주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다. 국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출해 국정 운영을 담당하게 한다.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국가에서 대통령과 의회는 국민 대표의 두 축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의회는 국민과 지역의 대표자들이 모여 법을 만드는 기능을 담당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국민들로부터 대표로서의 권리를 위임받은 것이다.

만약에, 유권자인 국민이 대통령은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국회의원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면 이는 자신들이 뽑은 대표자들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이는 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지나치게 승자의 편에 서서 펼치는 논리일 뿐이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국민과 대통령도 개혁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 될 수 있어야 개혁은 설득력을 갖고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권력이 겸손하고 가장 먼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 김형준 다니엘 - 명지대학교인문교양학부 교수.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미국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선거 및 의회 전공)학위를 받았고, 한국선거학회 회장과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김형준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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