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홍)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2-1224...성탄 밤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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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12-24 ㅣ No.1334

성탄대축일 전야[1224] - 성탄전날 밤미사

이사야 9,1-6         티토 2,11-14       루카 2,1-14

2012. 12. 24.   ,    21:00.   등촌3

주제 : 우리에게 실현돼야 할 성탄의 참 의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오늘은 성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최근 현대사를 대하면서 귓속에 박힌 말이 한 마디 있습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표현이 그것인데, 즐겨 쓸 말은 아니면서도, 퍼뜩하니 그 말이 생각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성탄을 기념하는 전례를 거행하는 이 시간도 밤중입니다. 세상의 달력에 따르면, 1224일의 밤이지만, 전례력에서는 오늘 전례를 25일 것으로 계산합니다. 이런 특징이 히브리민족의 전례를 따르는 것인지, 구약성경의 첫째권인 창세기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하루의 계산법을 따르는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밤 시간은 많은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시간입니다. 시간의 길이가 낮보다는 짧다고 느끼는 시간이고, 침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우리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시간이 또한 밤 시간이기도합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사람이 갖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 밤 시간은 낮 시간에 비해서 그 길이가 짧은 것도 아니고, 시간의 속도가 빨리 흐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삶에는 아주 큰 영향을 가져오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대부분이, 부모님들의 밤일(?)을 통해서 그 삶을 시작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이 밤 시간에 대해서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지도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태안에 품고, 남편의 조상들이 살았던 베들레헴을 찾아가야만 했던, 마리아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저는 아무래도 세상에서 남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여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안타까움과 한계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안다고 말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理論)입니다. 제가 남자라서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경험은 바로 그 당사자가 아니라면, 다른 여자나 남편이라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특정한 한 사람, 세상에 유일한 한 사람, 마리아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이것 역시도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질문을 대신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2000년 가까운 시간 전에 마리아가 느꼈을 그 긴박한 순간의 느낌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었던 요셉을 따라서, 베들레헴에 갔던, 마리아 앞에 펼쳐진 상황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녀를 통해서 세상에 이루어진 일을 행복의 시작으로 삼으니,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게 어찌된 일이겠습니까? 세상에 일어난 일들에는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의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내게 지금 힘겨운 일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혹시 우리들 모두가 저마다 자기 행복만 바라기에 다른 사람의 행복은 생각할 줄 모르고, 내 것을 나눌 줄도 모르고, 내 손이 닿는 곳에 재물을 쌓아놓을 생각을 하면서 또 한 번 잘 살아보세(!)’라고 노래하는 것은 아니겠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의 뜻을 새롭게 해석해서, 잘 살아보세(!)’하고 노래하는 이 구호가, 경제문제만 얘기하고 돈을 그저 많이 벌어서 남들 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면서 써보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는 이웃이 느끼는 아픔도 함께 보듬는 것이 될 수 있다면, 그것보다도 더 좋은 해석은 따로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고는 했습니다만, 혼전임신으로 아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남편 요셉을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여인 마리아의 입장에서 오늘의 일은 고통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일로부터 시작된 일을 기쁨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니, 우리가 세상에서 드러내는 어떤 일로, 내 가족, 내가 아는 사람, 나와 함께 이 성당에 나오는 사람, 나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만들겠느냐는 것입니다.

 

행복은 나 혼자 누리는데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야 말로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한다고 해도 다르게 알아들어야 진실이 될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고, 내가 그들보다 조금 더 낫다고 할 때 가질 수 있는 감정이지, 다른 사람은 삶이 힘들어서 원망과 탄식만 쏟아내고 있는데, 나는 지키고 감출 것이 많아서 시간을 써야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올해 성탄절에는, 내가 이웃과 무엇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올바로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그 행복의 시간을 아주 짧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그 행복은 1분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고, 하루가 가기 전에 끝날 수도 있으며, 1달이나 1년이 되기 전에 끝날 수 밖에 없다면, 이 얼마나 허탈한 행복이고,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습니까?

 

하느님의 천사는 하늘에서 소리쳤습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다(!)’고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나만 그렇게 알면 충분하다는 것일까요? 하느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일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일이면서도, 한편으로 나와 우리에게 두려움과 위협으로 남아서는 곤란한 일이고, 누구도 바랄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 당신의 자비로 세상에 시작된 당신의 구원과 은총이 저희를 통하여 훌륭한 결실을 맺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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