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순교자, 그들이 남긴 것 (하) 진목정 순교 성지를 가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9-19 ㅣ No.841

[순교자 성월 기획] 순교자, 그들이 남긴 것 (하) 진목정 순교 성지를 가다


“순교 정신 영원토록 이어가겠습니다”

 

 

진목공소를 지나 700여 미터 묵상 길을 따라가면 허인백·이양등·김종륜 세 순교자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묘지(가묘)를 만날 수 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많은 신자들이 묘지를 찾았다. 순교자성당이 완공되면 세 순교자의 유해는 성당에 안치할 계획이다.

 

 

“발 닿는 곳곳에 순교자 숨결 느낀다.”

 

경주 건천읍을 지나 청도로 넘어가는 단석산 자락에 발이 닿으면 진목정 순교 성지(담당 이창수 신부, 경북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산 284)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24위 시복시성 대상자이기도 한 허인백(許仁伯 야고보·1822~1868), 이양등(李陽登·베드로·?~1868), 김종륜(金宗倫·루카·1819~1868) 세 순교자들이 박해를 피해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바위굴(범굴)에 숨어 살았던 옛 신앙의 터전이며, 처형된 이들의 시신을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가 옮겨 묻어 그들의 피로써 은총의 성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마치 그때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소태골 피정의 집에서 범굴로 향하는 길에 조성돼 있는 십자가의 길 14처.

 

 

“성녀 바르바라를 기억하라!”

 

1868년, 병인박해 당시 경주 단석산 자락 깊은 골짜기에서 박해를 피해 이양등, 김종륜 등과 함께 숨어 지내던 허인백은 신자촌을 급습한 포졸들을 보며 담담하게 말한다.

 

“오늘에서야 세상일을 모두 마쳤구나.”

 

그리고 끌려가기 직전, 아내 박조이에게 당부했다. “성녀 바르바라의 순교 행적을 기억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

 

성녀 바르바라(Barbara)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세계 여러 성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하고 또 기구한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며칠 뒤인 9월 14일 울산 장대벌에서 군문효수(목을 베어 군문에 매달던 형벌) 당하던 날.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킨 바르바라 성인을 기억하며 마지막 순간에도 성호를 긋고 성모 마리아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순교자 영혼 살아 숨 쉬는 곳

 

세 순교자들의 묘지(가묘)로 향하는 신자들의 모습.

 

 

2010년 순교자 성월, 아직 더위가 꼬리를 물고 있는 무더운 날에 진목정 순교성지를 찾았다.

 

세 순교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진목정은 생활 현장인 범굴, 시신을 묻었던 무덤(가묘), 오랜 사목현장 진목공소 등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내일1리 마을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소태골 피정의 집이 보이는데,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십자가의 길 14처를 지나면 순교자들이 살았던 범굴로 통하게 된다. 조금은 가파른 산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그들의 숨결을 느낀다. 옛 교우들이 목을 축였을 법한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이 길은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이다. 박해를 피해 여러 곳을 다니다가 정착한 이곳에서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그런 힘든 생활에서도 단 하루라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꾸만 깊고 험한 곳으로 몸을 숨겨 왔던 세 분 순교자들의 절절한 신심이 온몸으로 전해 오는 순간이다.

 

막상 세 순교자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범굴에 다다르면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이제는 무너져 내려 그 원형을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 대신 진목공소를 거쳐 묘지로 이어지는 묵상 길에서 고통 속에 정화되는 영혼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2시간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다소 험했던 길들을 헤쳐 지나오니 오래된 공소가 보인다. 진목공소. 이곳은 1858년 경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사제인 ‘땀의 순교자’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지방을 순회하며 전교하던 때부터 교우촌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사시사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옛 공소 안을 들여다보면 성모상과 예수성심상이 제대를 지키고 있는 모습으로, 아직까지도 깨끗하고 아늑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공소를 지나 700여 미터 묵상 길을 따라 가면 세 순교자들의 묘지(가묘)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은 그 유해가 옮겨져 대구 복자성당에 모셔져 있지만, 병인박해의 수난지로 그들의 성혈이 뿌려진 이곳은 순교자들의 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외로운 묘지이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오히려 그들의 영혼이 세상사에 찌든 우리들을 위로하고 정화시켜준다. “나의 순교가 너의 신앙으로….” 나지막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가는 길

 

· 승용차 이용 : 경주에서 20번 국도를 타고 건천을 지나 산내면으로 진입한 후 언양 방향으로 약 4km를 달리면 왼편에 ‘진목정 성지’ 표지판이 나온다.

 

· 대중교통 이용 : 경주시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산내면으로 가는 버스(청도방향). 산내면(의곡리)에서 언양방향으로 가는 차편을 얻어타고 내일리로 가야한다.

 

※ 문의 054-751-1571 대구대교구 경주 산내본당

 

 

성당 · 피정의 집 등 건립 추진 … 신자들 관심 절실


순교자 현양 중심지로 도약

 

 

진목공소 전경.

 

 

대구대교구 진목정 순교성지(담당 이창수 신부)는 순교자 현양을 위해 성당, 피정의 집 건립 등 대대적인 성지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진목정 순교 성지는 그동안 신앙적·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신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 또한 진목정 성지의 세 순교자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은 지난해 교황청에 심사를 의뢰한 124위 시복시성 대상자로서, 신자들의 간절한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이에 대구대교구는 경주 산내본당에서 성지에 이르는 도보 순례길을 조성하고, 진목공소와 순교자들의 묘지 인근에는 개인, 가족 등을 위한 소규모 피정의 집 10여 채를 만들 예정이다. 특히 묘지 위에는 세 순교자들과 함께 안치를 원하는 사제·수도자·신자들의 유해를 모시는 유해 안치소를 겸하는 순교자성당을 건립하고자 한다. 순교자들을 비롯해 1000여 기의 봉안함이 안치될 예정인 순교자성당은 매일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순교자 현양과 함께 죽음 뒤의 삶에 대해 묵상할 수 있는 신앙 공간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성지는 유해안치소 시설 이용을 원하는 신자들의 신청도 꾸준히 받고 있다.

 

이창수 진목정 순교 성지 담당 신부는 “건립 예정인 순교자성당은 세 순교자들을 비롯한 선배 신앙인들의 넋을 기림과 동시에 내 훗날의 터전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곳으로, 순교자와의 통교를 이루는 데에 더 없이 좋은 기도 공간이 될 것”이라며, “세 순교자들의 신심을 본받고, 시복시성을 기도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신자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9월 한 달 간 매일 오전 11시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성지는 앞으로도 이곳을 순례하고자 하는 본당 등 단체를 대상으로 미사와 성지순례, 피정 등을 안내할 계획이다.

 

※ 문의 010-9584-0996 이창수 신부

※ 진목성지 조성 후원계좌 : 351-0060-0027-43 농협 예금주 이창수

 

[가톨릭신문, 2010년 9월 19일, 우세민 기자]



70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