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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순교자, 그들이 남긴 것 (상) 교우, 가족들에게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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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9-05 ㅣ No.837

[순교자 성월 기획] 순교자, 그들이 남긴 것 (상) 교우 · 가족들에게 남긴 말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요”

 

 

순교한 이들의 ‘순교’는 따라죽을 순(殉)과 가르칠 교(敎)자를 쓴다. 죽음으로 자신의 하느님을 증거하고, 목숨을 바쳐 사람들에게 ‘나의 하느님’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 놓인 순교자 성월 9월, 순교자들이 목숨을 내놓기 전 남긴 말과 행적의 향기를 맡으며, 그들의 걸음을 따라 우리도 ‘나의 하느님’을 만나보자.

 

 

부모가 한세상을 살며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주고자 하는 것처럼, 신앙선조라고 부르는 순교자들 역시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겼다. 그들이 남긴 말은 때로는 책과 서한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으로 면면히 우리에게 이어져왔다.

 

사제로서 목숨을 다한 순교자는 교우들의 마음에 가르침을 아로새겼고, 순교를 앞둔 평신도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게 자신의 믿음을 남겼다. 자신을 재판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보인 순교자와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하느님을 증거한 사람들. 그들이 남기고 떠난 보배로운 말과 행적은 지금까지 ‘순교의 향기’로 남아 우리 신앙 앞에 우뚝 선다.

 

 

교우들에게

 

김대건 신부가 1846년 8월 말 옥중에서 작성한 ‘마지막 회유문’. 김 신부는 죽음을 앞두고 교우들에게 힘을 다하고,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극진히 조심하기를 당부했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은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배은 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께 득죄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김대건 신부(1821~1846)의 ‘마지막 회유문’은 1846년 8월 말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쓴 것으로 그가 남긴 서한 가운데 스물한 번째 편지다.

 

김대건 신부는 회유문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하느님을 이해시키고, 사랑을 전하고 있다. 그는 하느님을 ‘밭을 심는 농부’에, 우리들을 ‘벼’에 비유한다.

 

“주 땅을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으로 벼를 삼아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구속하여 피로 우리를 물주사 자라고 염글도록 하여 계시니, 심판날 거두기에 이르러 은혜를 받아 염근 자 되었으면 주의 의자로 천국을 누릴 것이요.(중략)”

 

곧 목숨을 바칠 사제는 남은 교우들과 미래를 사는 우리들에게 할 말이 많다. 그는 아이를 조심시키는 부모와 같이 죽음을 눈앞에 두었으면서도 우리와 이별하는 것을 애통해하고, 앞으로 세속 마귀를 치고, 힘을 다하고,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극진히 조심하라고 이르기를 잊지 않는다.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 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어머니와 가족에게

 

치명자산 성지에 있는 이순이 순교자의 묘소. 순교자들은 이처럼 하느님을 증거하는 순교 정신뿐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도 두터웠다.

 

 

자신의 하느님을 증거하며 떳떳이 나아가는 순교의 길에도 가장 눈에 밟히는 인물은 어머니일 것이다. 이경도 가롤로(1780~1801,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는 자신의 사형 판결문에 서명을 마친 날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어머니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는 자식의 말은 비장하다.

 

“다만 이 세상에서 어머니께 자식 노릇을 못하고 조금치도 뜻을 받들어 모시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애달프고, 뉘우쳐도 돌이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이 세상을 영영 떠나게 되니, 어머니 자식 노릇을 할 수 있는 날이 없사옵니다.”

 

여동생인 이순이 루갈다(1782~1801,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 또한 어머니에게 순교를 앞두고 편지를 쓴다. 서한에는 섬세한 이별의 정한과 함께 순교에 대한 당당함이 나타나 있다. 그는 순교는 ‘부족하고 못난 자식을 참되고 보배로운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라며 ‘순교의 열매를 맺기도 전에 붓을 드는 것은 경솔한 짓이나 어머니가 걱정돼 위로를 삼으시도록 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전주 숲정이 성지. 어머니에게 편지를 남긴 이순이 순교자는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순교의 끝에서도 어머니는 자식들의 마음을 애달프게 하는 ‘가장 소중한 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 엎드려 정말 간절히 바라오니, 제발 마음을 너그러이 가지시고 자식 잃은 슬픔을 이겨내셔요. 하늘나라에서 우리 모녀의 정을 다시 이어 영원히 함께 살아요. 올케 언니, 너무 서러워 마셔요. 오라버니가 비록 돌아가시더라도 언니는 정말 남편다운 남편을 두었다는 말을 들을 테니까요.”

 

이 밖에도 이순이 순교자는 두 언니에게 복잡한 심경을 전하는 긴 서한을 보냈으며, 막내 동생 이경언 바오로(1792~1827, 전주 감옥에서 순교) 또한 어머니와 가족, 아내, 명도회 회원들에게 마지막 서한을 남겼다. 특히 그가 5월 15일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는 절절히 사무치는 아내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가 혼인한 후 13년 동안 우리는 둘이 단 하루도 편안한 날을 지내지 못하고 가지가지 곤경을 겪었소. 내 일평생의 행동과 수많은 죄를 생각해 볼 때 당신에게 대하여 잘못한 모든 것을 특히 뉘우치오. 용서하여 주시오. 내가 죽은들 당신을 잊을 수가 있겠소.(중략)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주님 대전에서 영원히 다시 만납시다. 나를 출두시키라고 명령하는 소리가 들리오. 그러면 여기서 붓을 놓겠소.” [가톨릭신문, 2010년 9월 5일, 오혜민 기자]

 

 

서울 약현본당, ‘…서소문 순교성지’ DVD 발매


영상으로 만나는 순교사

 

 

약현성당 입구에 자리한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에서 한 신자가 디지털정보 디스플레이를 통해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다.

 

 

서울 서소문 순교성지(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는 한국교회 내 최다 성인 탄생지다. 무엇보다 정하상 바오로와 강완숙 골룸바 등 수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한 터로 의미가 크다.

 

새남터와 더불어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었던 이곳에선 103위 성인 중 44위와, 현재 시복시성을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 27위가 순교했다.

 

또한 서소문 순교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에 이어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위상에 비해 서소문 순교성지는 다른 성지에 비해 덜 알려지고, 순례객도 적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이곳 서소문 순교성지를 배경으로 한 순교 역사를 동영상으로 생생히 전하는 영상물이 발매돼 눈길을 끈다.

 

순교자 성월, 성지를 찾아 순교 신심을 다지고 싶지만 바쁜 일상에 쫓겨 아쉬움만 안고 있는 이들에겐 더욱 반가운 소식이다. 온 가족 시청용, 혹은 자녀들의 교육용으로도 유용할 듯하다.

 

서소문 순교성지를 관할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중림동 약현본당(주임 정훈 신부)은 최근 ‘44위 성인이 탄생한 서소문 순교성지 -순교자의 거룩한 피로 신앙의 꽃을 피우다’라는 제목의 DVD를 제작, 배포 중이다.

 

DVD는 2011년 본당 설정 120주년을 앞두고 성지 개발과 홍보에 더욱 큰 힘을 싣고자 특별 제작했다.

 

DVD에는 서소문 순교성지 모습을 비롯해 박해의 참상과 순교자들의 의연한 신심을 만나볼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을 실었다.

 

TV 다큐멘터리 영상과 각종 역사 자료 등을 골고루 편집해 선보인 덕분에 누구나 쉽게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엿볼 수 있게 구성했다.

 

박해 시기 별로 순교자들을 소개하며 묵상내용도 실어 실제 순례지를 찾아 기도하듯 시청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본당은 성당 입구에 자리한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에 터치스크린식 디지털정보 디스플레이를 설치, 전시관을 찾는 이들이 자유롭게 영상물과 사진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단체 성지순례객들이 DVD 등을 시청할 수 있는 미디어센터도 운영 중이다.

 

본당 주임 정훈 신부는 “서소문성지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은 성인, 특히 평신도들이 순교한 곳이지만 다른 성지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고 성역화 사업도 폭넓게 진행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앞으로도 순교 역사와 성지의 의미에 대해 올바로 알리고, 보다 많은 이들이 순교신심을 본받도록 돕기 위해 본당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가톨릭신문, 2010년 9월 5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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