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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진정한 민주화: 경제민주화 없으면 양극화 해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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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2 ㅣ No.1035

[경향 돋보기 - 대선 이후의 진정한 민주화] 경제민주화 없으면 양극화 해소도 없다


현행 헌법 제119조 2항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 조항은 두 개의 핵심어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경제력 남용 방지이고, 다른 하나는 적정한 소득 분배다. 전자는 분배과정에서의 경제민주화 노력을, 후자는 재분배과정에서의 경제민주화 노력을 지칭한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전자와 후자를 합쳐서 경제민주화라 부르기도 하고, 전자만을 떼어내 경제민주화라 부르기도 한다.

국민들 사이에 경제민주화에 대해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 자신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소득 5분위 배율(하위 20% 계층과 상위 20% 계층 간의 소득 배율)은 3.7배에서 4.8배로 나빠졌다. 역대 정부들은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막으려고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상당히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역대 정부의 노력이 없었다면 같은 기간 소득 5분위 배율은 3.9배에서 6.0배로 나빠졌을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것은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한 양극화 해소 노력이 시장에서 형성된 양극화 심화 요인을 상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은 6배로 벌어질 뻔한 소득 5분위 배율을 4.8배로 줄여놓기는 했지만, 그것이 3.7배에서 4.8배로 벌어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양극화를 막으려면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시장의 소득분배 과정에서도 양극화 해소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최근 국민들 사이에서 그 요구가 분출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다.


경제력 집중과 일감 몰아주기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1년과 2011년 사이 30대 재벌의 계열사는 520개에서 1,088개로 2.1배 늘었고, 이들의 자산총액은 576조 원에서 1,721조 원으로 3배나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534조 원에서 1,398조 원으로 2.6배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13조 원에서 62조 원으로 4.8배나 늘었다.

경제력 집중이 가속화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일감 몰아주기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란 대기업 집단 내의 계열사들이 특정 계열사에게 일감을 몰아줘 일감을 받은 계열사가 이익을 얻고, 결과적으로는 일감을 받은 계열사의 대주주와 중소주주들이 특별한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재벌들의 편법적인 부와 경영권의 상속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현대글로비스다. 이 회사의 지분율을 보면 2010년 말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일가가 52%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 매출액은 2001년 1,985억 원에서 10년 후 5조 8,340억 원으로 무려 29배나 증가했다. 단기간에 매출액이 급증한 것은 현대차 그룹이 이 회사 매출액의 89%에 달하는 일감을 몰아줬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정의선 부회장이 이 회사에 출자한 것은 2001년과 2002년 각각 15억 원씩 30억 원을 출자한 것이 전부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2004년에 지분을 일부 매각해서 850억 원을 벌었고, 10년 동안 389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그리고 현재 그가 보유한 주식가치는 2조 원에 달한다. 고작 30억 원을 출자해서 2조 원에 달하는 부를 축적한 것이다.

같은 연구소에 따르면 29개 대기업 집단의 총수 일가 192명은 1조 3,200억 원을 출자해 9조 9,600억 원의 수익을 얻었다. 10년간의 수익률은 무려 755%였다. 일감 몰아주기에 힘입어 다른 사람들에 견줘 10배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한 것이다.


출자총액 제한제도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려면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출자총액 제한제도는 재벌 계열사가 순자산의 일정 비율 이상을 다른 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게 규제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1987년 경제력 집중 억제 대책의 하나로 처음 시행된 이래 규제 완화, 폐지, 부활, 다시 규제 완화 등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2009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이 제도가 이렇게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규제 대상인 재벌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재벌들의 줄기찬 요구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폐지된 적이 있다. 그러나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폐지되자마자 13대 재벌들의 계열사 출자 규모가 2년 만에 2.6배나 급증(14조 원→37조 원)해 결국 정부는 2001년 이 제도를 부활해야만 했다.

그러나 2001년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부활되자마자 재벌들은 또다시 규제 완화 요구에 나섰고, 결국 2002년, 2004년, 2007년 여러 차례 규제 완화를 해서 유명무실화됐다가, 2009년 공식적으로 완전히 폐지됐다. 그리고 그 결과 2012년 4월 기준 30대 재벌의 전체 계열사 수는 5년 전에 비해 66%나 급증했다.

출자총액 제한제도와 투자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재벌들은 줄기차게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투자를 억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경련이 발표한 대기업 투자 변화 추이를 보면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투자를 억제한다는 증거는 없다.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부활한 2001년 이후 전경련 통계를 보면 2003년과 2004년 전체 기업의 투자증가율이 각각 -2.7%, 3.6%로 나타날 때 600대 기업의 투자는 각각 12.4%, 18.7% 증가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04년 말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완화되자 600대 기업의 투자 증가율이 낮아졌다. 2005년에는 12.8%로 낮아졌고, 2006년에는 10.4%, 2007년에는 5.1%로 낮아졌다.

물론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경제력 집중을 해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야당이 내놓은 출자총액 제한제도 부활 방안은 계열사 순자산의 30% 이상을 다른 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경우 현재 출자 비율이 8.4%여서 30%로 규제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대차그룹도 현재 출자 비율이 14.5%여서 30%로 규제해 봐야 별다른 소용이 없다. 20개 그룹 가운데 12개 그룹이 야당의 출자총액 제한제도 규제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 제한제도로 경제력 집중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면 보완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가장 실효성 있는 보완책은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이다. 순환출자란 A, B, C라는 세 기업이 있다고 할 때 A가 B에게, B가 C에게 출자하고, 다시 C가 A에게 출자해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출자 행태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재벌들이 가공 자본을 만들어 계열사를 확장하고 급기야는 빵집, 자전거 가게, 라면이나 순대를 파는 분식집까지 침투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극단적인 경우 기업 A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B와 C를 지배할 수 있다. 예컨대 A가 B에게 100억을 출자하고, B가 C에게 100억을 출자하고, 다시 C가 A에게 100억을 출자하면 결과적으로 A는 고스란히 100억을 회수하기 때문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게 되는데, 여하튼 A가 B와 C에게는 출자를 했기 때문에 이 기업들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도 순환출자가 존재할까. 일본, 독일, 캐나다 등의 일부 기업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45년 패전 직후 재벌이 해체됐고, 또 우리와 달리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잘돼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독일도 1930년대와 1940년대 나치 체제에서는 기업 간 상호 소유로 엮인 콘체른(법률상으로는 독립되어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통일된 지배를 받는 기업 집단)의 비중이 컸지만, 1945년 패전 뒤 콘체른이 해체되고, 독점방지법 등이 제정됐으며, 이원적 기업 지배구조가 발달해서, 일부 잔존하는 순환출자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안전장치들이 부재하거나 부실해서 재벌들로의 경제력 집중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순환출자는 서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순환출자는 재벌들이 적은 돈으로 엄청난 가공자본을 형성하게 해 종국에는 빵집에까지 침투하게 한다. 곧 공정거래법이 순환출자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재벌들이 무차별적으로 계열사를 늘리고 지속적으로 서민 경제 영역에 침투해 동반성장을 저해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재벌들이 지속적으로 서민 경제 영역을 잠식할 경우 성장과 복지를 모두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론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이 대기업 방패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다. 현재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 사건은 반드시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공소가 가능하다. 이를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라 한다. 이 제도 때문에 중소기업은 아무리 억울한 피해를 당해도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스스로 가해 기업을 검찰에 고발할 수 없고, 또 검찰이 스스로 범법행위를 찾아내도 기소할 수 없다. 따라서 개혁론자들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대기업이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을 위반해 중소기업에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보다 더 많은 과징금과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이 제도의 적용 영역이 다방면으로 확장되고 최근 수십 년 사이에 현저한 증가 경향을 보여 현재는 일부 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징벌적 손해배상을 널리 인정하고 있다. 국내 시민단체들은 미국에서처럼 ‘3배 손해배상’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 규제론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방이 중소기업을 고사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1990년대의 급진적인 유통업 개방은 경제 성장과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990년대의 급진적인 유통업 개방으로 대형마트의 점포수는 1999년 116개에서 2010년 437개로 3.8배나 늘어났다.

그러나 도소매업 경제성장 기여율은 1990년대에는 연평균 8.8%였으나, 2000년대에는 5%로 추락했다. 전체 일자리 중에서 도소매업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1999년 18.3%에서 2010년 15%로 내려앉았다. 수많은 중소상인들이 일자리를 잃은 결과다.

재벌들은 대형 마트에 대한 규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해 경제효율성을 해치고 경제성장률을 낮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유럽 사례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것이 경제효율성을 해치고 경제성장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세나 환율 같은 수입 억제장치는 국내 생산자를 보호하려고 국민들의 소비선택권을 제한하는 제도다. 그러나 남유럽의 경우 통화통합 등으로 환율이라는 수입 억제장치가 사라진 결과 소비선택권은 최대한 보장받았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돼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도래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정책 전망

지난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진보진영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경제민주화 요구’ 중 상당 부분을 수용하여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재벌개혁론자들의 주장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그는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부활에는 반대했지만 신규순환출자는 금지하겠다고 했고,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도 동의했다. 또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대형 유통업체 규제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이 재벌개혁론자들의 개혁 방향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하여, 그 개혁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벌써부터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정책에서 후퇴하는 모습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말 여야는 대형마트 휴무일을 월 3회로 하고, 심야와 아침 영업시간을 4시간 줄이는 법률안에 합의한 바 있고, 이 법률안은 국회 상임위까지 통과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직후 새누리당은 태도를 바꾸었다. 휴무일을 2일로 줄이고 영업시간을 2시간 줄이는 것으로 후퇴한 것이다. 새누리당이 이렇게 후퇴한 것은 물론 박근혜 당선인의 의지 변화에 따른 것이다.

많이 바라지 않는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가 그의 공약에 상응하는 정도만이라도 경제민주화를 이루어내기를 기대한다.

* 홍헌호 -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으로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서울시 정책자문위원(재정)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맥쿼리의 빨대는 누가 뽑을 수 있을까?」가 있다.

[경향잡지, 2013년 2월호, 홍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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