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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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양심의 울음이자 운율, 세계의 평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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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2 ㅣ No.1032

[함께 가자, 평화의 길로] 양심의 울음이자 운율, 세계의 평화운동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반대하는 국제적인 반전행동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전 세계 곳곳 수백 개의 도시에서 같은 날 한 목소리로 거의 매주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고 규탄하는 시민 평화의 광장이 열렸다. 거대한 기획자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우연도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9·11 희생자의 가족들이 “우리 이름으로 전쟁하지 말라.”라는 호소를 세계로 전파하고 있었고, 이라크의 소녀들은 직접 인터넷을 통해 침공을 중단해 달라는 호소문을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서구 문화계의 스타와 거장들이 각국에서 자발적으로 반전의 메시지와 노래와 공연을 더했다.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물결이 지구촌을 뒤덮었다. 21세기 평화운동을 상징하는 큰 사건이었다.


전후 전쟁에 대한 반성

이러한 평화운동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반세기 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난 국제사회는 ‘전쟁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전쟁을 억제하는 여러 가지 장치를 유엔의 이름으로 고안해 내었고, 이를 여러 가지 국제법으로 제도화하였다.

여기에 버트런드 러셀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대학자들이 성명서로 또 길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핵무기의 반인륜성을 알리는 평화운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국사회가 그토록 잔인한 전쟁을 겪고서도 남북대결과 군비경쟁에 혈세를 퍼붓는 동안, 다른 많은 사람들은 고삐 풀린 군비경쟁이 가져올 대재앙을 예감하기 시작했다. 군사력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의 자각을 가져왔고, 이들은 평화의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평화운동은 어떤 국가의 도움없이 스스로 여러 평화의 길을 개척했다.

전쟁을 예방하는 길, 예방 외교, 핵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를 폐지하는 길, 군수무역 군수산업에 대한 통제, 비폭력의 평화 문화의 함양, 군복무를 거부할 수 있는 시민적 자유의 정립, 반인륜적인 무기의 폐지, 전쟁범죄 침략범죄 처벌 제도 등 이런 주제와 방법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동에 나서게 만들고 정교한 구상을 하도록 만들었다.


다양한 평화운동

평화운동은 각기 관심사에 따라 종교적 평화주의를 추구하기도 하고 유엔을 통해 전쟁을 억제하는 호소를 하기도 하며, 양심적 병역거부권이나 전쟁세 납부거부권을 확산시켜 이를 시민권으로 정립하기도 하고 군사주의의 본질로서 군사권력의 남성적 본질을 파헤치기도 한다.

동시에 여성주의 입장에서 남성들의 폭력문화를 비판하기도 하고, 호전적인 정치인의 낙선운동을 하기도 하고, 자연의 공생원리에 기초한 생태평화주의를 평화의 철학으로 전파하기도 한다. 평화교육과 분쟁조정교육은 여러 나라에서 공교육으로 제도화될 만큼 평화운동의 주요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핵무장 해체 직접행동으로서의 평화운동

영국의 트라이던트 핵잠수함의 해체를 목적으로 하는 ‘트라이던트 쟁기 만들기’라는 단체는 여러 나라의 반핵 평화운동과 함께 연대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평화단체다. 회원들은 핵무기의 보유 사용이 모두 불법이며, 반인도적이고 무책임한 정책이라는 데 가치관을 같이 하며 핵무기 체제를 파괴하는 직접행동을 수단으로 한다.

이들은 직접행동을 단순한 홍보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직접 군사시설에 타격을 주는 행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옮긴다. 또 행동만큼 법률적 대응 준비가 치밀해서 법정 소송 그 자체가 영국 군부를 긴장시킬 정도다.

지금까지 회원들은 2,000회 이상 체포와 수백 건의 재판과 투옥경험과 벌금형 경험을 갖고 있다. 이 단체는 해마다 두 차례 영국 북부에 있는 핵잠수함 기지를 둘러싸서 출입을 못하게 하는 평화적 봉쇄를 정례적으로 개최하는데, 여기에는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평범한 시민들이 수천 명씩 참여한다.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없애고자 하는 ‘핵무장해체운동(CND :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은 서구 평화운동의 대명사이자 현대 국제 평화운동의 산역사이기도 하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언론을 통해 영국의 저명인사들과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으며 수상관저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그 시위는 거의 CND가 벌인 반핵시위임에 틀림없다.

1980년대에 런던과 베를린에 100만 명이 모여서 핵무기 철폐를 주장한 거대한 평화시위의 많은 경우 이 단체가 주축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체의 목적은 정부가 핵전략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하는 것과 핵발전의 포기를 위한 사회의식 개혁이다.


전문가들의 평화운동 : 미과학자연맹

평화운동에서 전문가들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온갖 군사작전과 수백 가지의 무기, 그리고 군부-군수산업의 문제를 자세히 파헤치고 싶으면 미과학자연맹의 웹사이트(www.fas.org)를 찾아보면 된다.

미과학자연맹은 1945년 원자폭탄 제조 계획에 반대하던 과학자들이 만든 핵물리학자연맹에 기원을 둔 오래된 평화운동단체다. 주요활동은 국제안보에 관련된 과학기술 정책과 공공정책의 분석과 대안 제시다.

이 단체의 후원위원회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55명이나 망라되어 있다. 이 단체의 ‘평화와 안보’ 자료실에는 군수무역감시, 생화학 무기, 군사정보관련 자료, 군사전략 분석, 핵관련 자료, 핵확산금지와 군축, 우주개발 정책 항목으로 나뉘어 정보가 담겨있다.

온갖 잔혹한 무기들의 성능, 배치, 제조 회사, 제조와 판매실적과 계획 등을 알 수 있고, 미국과 동맹국들의 군수무역과 군사협력 관계에 관한 자료도 많이 있다. 과학자들이 왜 평화운동을 하는지는 이 단체의 모토에 잘 나타나 있다. “무기는 사용되기 전부터 사람들을 죽인다!”


여성 관점의 평화운동 : 평화와 자유를 위한 국제여성연맹

1915년 1,300여 명의 선구자적 여성들이 결성한 이 단체는 여성운동이 평화, 군축문제를 적극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는 전쟁 불가피론에 반대하는 여론활동을 적극 펼쳤으며, 그 결과 대표를 역임한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25년부터 군축을 주장해 왔으며, 강대국의 약소국 점령이나 침략시에 대표단을 현지 파견해서 항의하고, 각국의 여성운동과 연대해 평화운동의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분쟁지역에는 분쟁조정단을 보내고, 유엔 안보리에는 참관단체로 참여해서 안보리의 민주화를 역설하고 있다.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운동의 모범이다.


평화교육운동

평화교육운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여 학교로까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주로 구미에서 1960-1970년대에 구조적 폭력과 핵전쟁의 야만성이 사회적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이다.

여기에는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서 킹 등의 평화사상, 그리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버트런드 러셀, 일본의 원폭피폭자들의 반핵 평화운동 등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핵무기와 군비경쟁의 비윤리성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교육자들 사이에서 아동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평화 교과과정과 교재가 개발되었고, 평화교육의 인식지평이 확대되고 교사들의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전쟁과 일상적 폭력문화, 개인과 사회 수준의 차별과 배타성이 폭력적 분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이 교육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평화교육자들의 국제적인 교류가 활성화되고 평화학과 평화교육학이 발전하고 체계화되었다. 국제기구에서는 유네스코가 평화교육의 필요성을 적극 수용하여 세계로 보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평화운동의 파장

이렇게 세계화된 평화운동의 물결과 다양성에는 단순히 어떤 간단한 이념이나 반발에서 나왔다고 볼 수 없는 깊이와 파장이 있다. 물론 강대국의 의도와 군사력에 대한 깊은 불신과 우려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이유있는 불신이 존재한다. 현재 지구촌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날마다 경험하는 절박한 문제, 곧 기아, 빈곤, 빈부격차, 자원독점, 환경파괴와 같은 삶의 위기는 대책이 절실하다. 허나 그 어떤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희생되는 엄연한 현실인데도 대책이 별로 없다.

더구나 이런 문제에 자칭 선진국들이 진지한 관심이나 해결의 지도력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조차 근저에서 무너지고 있다. 한편에서 강대국, 선진국들은 ‘국익’의 이름으로 거대한 비용을 들여 군사력을 과시하는데, 다른 편에서는 실질적이고 절박한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국제법 파기가 자행된다. 강력한 군사력이 우리 지구촌을 지켜준다는 점을 믿기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현재 세계화된 반전평화 물결은 운율을 담은 깊은 파도와 같다. 20세기를 지배해 온 ‘군사력을 통한 질서’에 동참할 수 없다는 양심의 울음이자 운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평화운동이 제시하는 ‘공생과 다양성의 삶’이라는 세계관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큰 호소력을 갖는다.

현재 우리가 평화운동의 세계화를 통해서 보는 지구촌의 모습은 거대한 군사력을 차지한 채 어쩔 줄 모르는 슈퍼파워와 사람들의 마음속을 차지한 윤리적 슈퍼파워의 대결이다.

* 이대훈 프란치스코 -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겸임교수로서 평화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유엔 아시아태평양여성평화안보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이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이대훈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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