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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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21세기 새로운 칠죄종1: 환경파괴 - 너의 종(種)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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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2 ㅣ No.1028

21세기 새로운 칠죄종 (1) 환경파괴 - 너의 ‘종(種)’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를 일곱 가지 죄악의 근원 곧 칠죄종(七罪宗)이라고 가르쳐왔다. 2008년 3월에 교황청 내사원은 “1. 환경파괴 2.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는 유전자 조작 3. 과도한 부의 축적과 사회적 불공정 4. 마약거래와 복용 5. 윤리적 논란을 낳는 과학실험 6. 낙태 7. 소아성애”를 세계화 시대의 신(新)칠죄종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다달이 한 가지씩 다룬다. - 편집자 주


경북 영천군 화북면 오산리, 이 마을에 대안학교의 문을 연 지 10년 문지방을 넘었다. 본당신부가 아닌 단순히 이 마을의 주민으로서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면서 아이들에게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통합된 개념인 ‘평화생태학’을 몸으로 체득하도록 학교에서 동고동락한 지도 4년째 접어든다.

이 자연학교는 ‘자연에 맞서는 인간’이라는 기존의 교육제도에서 ‘자연 속의 인간’이라는 콘셉트로 교육을 혁신해 보려고 끊임없이 시도 중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올 미래는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존의 생활방식은 기존의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하는 세계관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교육도 그 선상에 놓여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느리지만 중세의 종교개혁만큼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있다. 곧 ‘사람 중심의 구원’에서 ‘온 창조물들 사이의 상호 구원’으로 지평이 확대되고 포용되기 시작한 종교혁신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평화 속의 생태,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

그러나 큰 문제는 서서히 교회 안에 빨간 불이 켜지는 불길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교회의 동력이 떨어져 세상의 빛이 되기는커녕 사회의 애물단지처럼 되어가는 데 비해, 많은 중산층 가톨릭인은 ‘풍요의 복음’이라는 낡은 생각을 향해 뒷걸음치고 있고, 사목자들은 확장주의 신학을 계속 교우들에게 써먹고 있다.

이제는 과학적 수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행성지구가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기후붕괴 위기, 생물 다양성의 위기 등으로 아이들도 북극곰의 슬픔을 알고 있는데, 교회가 생태계 위기에 대해서 눈을 감고 교회확장 프로젝트만 개발하고 구원의 과제만 몰두하고 있다.

반면에 교우들이 경제적 상황이 계속 악화되어 ‘자발적 봉사나 나눔’마저 위협받게 되면 그 즉시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지게 되고,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이익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지 않았던가!

역사적으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90년에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세계 평화의 날 담화 곧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를 발표하고, 2010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인류에게 주었지만, 아직도 교회의 ‘생태복음화’는 너무 더디고 인식과 실천의 괴리가 심하게 느껴진다.

그 한 예로 서울대교구의 2013년 사목 비전이나 대구대교구 100주년 사목 비전을 보면 여전히 사람 중심의 선교에 매달리고 ‘평화생태’라는 용어 자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평화 속의 생태라는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에 대해 우리 교회가 동반하지 않고 통합을 하고 있지 않음을 각 교구의 사목교서들이 보여주고 있다.


생태적 감수성, 생태적 회심과 각성

사목적으로 환경파괴를 ‘신칠죄종’이라고 정의했지만 사목현장에서 환경파괴 문제로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교회가 녹색평화를 창안하기보다는 오히려 사회로부터 거꾸로 녹색의 물결에 도전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강정마을이나 탈핵 같은 이슈보다 더 많은 해결책을, 더 많은 목표를, 더 많은 연대를, 더 많은 회개와 성찰이 먼저 요청된다. 그러므로 환경파괴의 개인적 고해성사적 윤리를 넘어서 사회적 성화의 변화까지 동반할 때 생태적 회심과 각성이 새로운 대안의 발판이 될 것이다.

인류가 탄생한 이후 처음으로 인간도 하나의 ‘생물종’이라는 사실을 점점 더 자각하고 있다. 이 깨달음은 참으로 ‘불안한 축복’이다. 교회가 지속가능한 생명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폭넓게 인식하여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효과적으로 다루도록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서 “너의 종(種)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교의 미래는 지구의 운명에 달려있다고 본다. 자연의 구원 없이 종교의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화성에서 물을 찾아 헤매는 것과 같은 짓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종교를 디자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행성지구에 대한 우리의 모든 종교적 전통에서 일어나야 할 새로운 ‘종교적 감수성’이다. 신칠죄종으로서 환경파괴도 윤리적 규범 이전에 생태적 감수성과 인간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살아있는 존재와 단일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 정홍규 아우구스티노 - 대구대교구 신부로 가톨릭 대안학교인 산자연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정홍규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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